"이대론 안돼, 교육과 훈련으로 이긴다"
  • 이병철(李秉喆)의 29년 전 예언: "일본을 앞설 자신이 있다." 
      
    "교육과 훈련으로 이긴다"

    趙甲濟   
     
    며칠 전 교보문고에서 7월호 일본 종합잡지 <문예춘추(文藝春秋)>를 샀다.
    '애플, 삼성에 이기는 비책(秘策)-미증유의 위기에 발탁된 '이색(異色) 톱' 51세(소니 새 사장)의 개혁선언'이란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 기사 앞에는 '모노츠쿠리 일본의 영광과 좌절'이란 제목의 좌담회 기록이 실렸다. 副題(부제)는 '일본기업은 왜 애플, 삼성에 졌는가'였다. 일본을 상징하는 소니 등 전자산업이 삼성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업계에 진 이유를 자성(自省)하는 글이었다. 
     
    한국은 흔히 '일본을 우습게 보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로 불린다.
    축구에서 한국이 일본에 이겼다고, K-POP이 일본의 기(氣)를 꺾었다고, 삼성이 소니를 젖혔다고, 그래서 종합 국력(國力)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서기 시작하였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토요다 자동차 회사가 리콜 사태로 망한 줄 아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작년의 3.11 쓰나미로, 특히 원자력 발전소 50개를 전부 폐쇄한 것으로 일본은 끝났다고 착각하는 이들도 많다.
    일본을 우습게 보는 것보다 더한 착각이다. 일본 언론이 삼성의 성공사례와 소니의 실패사례를 연구한다는 것은 머지 않아 그들의 반격이 시작될 것임을 예고한다.
    원전(原電)의 전기 생산량이 25%였는데, 이를 몽땅 문 닫게 하고도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일본의 저력을 놓치면 안 된다. 실패에서 배우는 데는 한국보다 훨씬 뛰어난 감각을 가진 이들이다.
     
    일본은 국가 근대화를 우리보다 80년 먼저 시작하였다. 명치유신이 1868년, 대한민국 건국(建國)이 1948년이다.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시절에도 국부(國富)를 축적해갔다. 18세기 도쿄는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 당시 세계 최대 도시였다. 수백 년 동안 쌓인 일본의 국부(國富)와 60년밖에 되지 않는 한국의 국부(國富) 축적량은 비교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앞으로 100년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여 일본의 종합 국력(國力)-법치(法治), 정직성, 국민교양 등 포함-을 앞지른다면 이건 기적이다. 한자(漢字)말살 풍조를 중단시켜 한자-한글 혼용(混用)에 의한 한국어(韓國語)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런 기적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 ▲ 삼성 창업자 이병철.
    ▲ 삼성 창업자 이병철.

    2010년은 삼성(三星)그룹 창업자 이병철(李秉喆) 탄생 100주년이었다. 그가 만든 회사들의 매출액은 2,000억 달러를 넘었고, 100만 명을 고용하였다. 특히 삼성전자(三星電子)는 2009년에 매출액이 1,000억 달러, 이익이 100억 달러를 넘어 휴렛 패커드를 젖히고 세계 최대의 전자(電子) 회사가 되었다.
     
    1983년 12월 초에 <월간조선(月刊朝鮮)>은 1984년 1월호에 실을 이병철(李秉喆) 삼성회장-선우휘(鮮于煇) 조선일보 논설고문 대담(對談)을 마련하였다. 두 사람은 신라호텔에서 약 4시간, 점심 식사를 하면서 폭 넓은 이야기를 나눴다. 필자는 이 대담(對談)을 기록하였다.

    최근 다시 읽어보니 이(李) 회장의 통찰력과 선견지명(先見之明)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국민성을 비교하면서 한국인의 가능성을 강조한 부분을 소개한다. 이(李) 회장의 사투리 발음을 그대로 적었다.
     

  • ▲ 삼성 창업자 이병철.

    선우(鮮于): 李회장님께서도 일본 학생들하고 같이 공부하셔서 잘 아시겠지만 그때 한국 학생들은 일본 학생들을 대수롭게 보지 않았지 않습니까?
    아세아에서 일본과 경쟁할 민족은 우리밖에 없다고도 합니다만, 문제는 이러한 우수한 자질과 사람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경영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개인으로는 우리가 우수한 것 같은데 사회의 돌아가는 분위기랄까, 그런 데서는 불리한 점이 있는 것 같아요. 개성이 너무 강해서 융합이 잘 안 된다든지, 분단 상황, 정치적 바탕도 그렇고…
    李회장님께서는 이 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장차 노력하면 일본과 능히 경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李):‥노력이 절대 필요할 깁니다. 지금 이 정도로 가선 안됩니다.
    제가 1950년에 일본에 해방 후론 처음 갔십니다. 패전(敗戰)한 지 5년째 됐는데 새 옷 입은 사람이 하나도 안 뵈. 전부 옷이 다 떨어졌고… 정무총감 하던 다나카 다케오씨도 나왔는데 다 떨어진 옷 입고 식산(殖産)국장하던 호즈미씨도 마찬가지고 영양이 전부 실조해 있십디다. 7,000만 일본 국민들은 옛날 군부에 대한 원망, 원한, 정부에 대한 불신,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불안을 안 느끼는 사람들이 없었십니다.

    맥아더 사령부는 그 때 일본을 等外國(등외국)으로 만들어 버리기로 방침을 딱 세우고 있었십니다. 3등국도 아니고 등외국(等外國)입니다. 그래서 중공업도 해체하고 가와사키 중공업은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해 버리고 했십니다.

    그때 영국 사람들이 시찰단을 만들어서 한 50명이 됐습니다만, 일본을 둘러보고 가면서 말했습니다. 참, 유명한 이야기를 했제.

    일본은 부흥한다, 했습니다.

    선우(鮮于): 그 이유는요?

    이(李): 정부에 대한 원망, 불신은 있지만, 그 오야붕 꼬붕 있지요? 그런 의리, 신의(信義)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살아있다, 이것이 일본을 살리는 길이다, 그거지요.
    그 신문 지금도 있을 깁니다.

    선우(鮮于): 그, 정말 날카롭게 봤군요.

  • ▲ 생전의 이병철 회장 모습. 독서를 즐겼다.
    ▲ 생전의 이병철 회장 모습. 독서를 즐겼다.

    이(李): 일본은 암만 혼란된 전국(戰國)시대에도 국민들이 정부로부터 도움을 안 받은 때가 없었십니다. 물론 일본은 독일처럼 지방마다 정권(政權)이 성주(城主)처럼 독립해 있었으니까 국민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정권도 유지하기가 곤란했던 점도 있었을 깁니다.

    정부로부터 피해를 안 받았으니까 정부 얘기라 하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정부 시키는 대로 하니까 이익이 되더라, 이겁니다.
    그런데 중국을 한번 보십시오. 국민들이 정부를 믿는 시기가 암매 거의 없었을 깁니다. 밤낮 정부로부터 피해만 당하지 않았습니까?
    한국은 어땠십니까? 세종대왕 때 정도가 국민들이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그 이후로는 별반 없었을 깁니다. 수탈만 당하고 이순신(李舜臣) 장군 같은 사람을 중상 모략해서 잡아넣기도 하고……역사가 그랬는데 일제(日帝) 시대가 되니 이번엔 단결심을 분산시켜야겠다고 해서 조직, 집합, 단체를 못하도록 분열만 조장했십니다.
     
    오랜 역사가 그렇게 맹글었고 일본이 또 그렇게 맹글었십니다.
    해방 뒤가 되니 군정(軍政)이 도덕 정리를 했십니까? 도덕에 대한 교육을 시켰십니까?
    6·25사변 때는 또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은 전부 다 데리고 올라가서 죽이고 이만저만 악순환이 아닙니다.
    일제(日帝) 36년 동안 우리 사람들이 어디 교육이나 제대로 받았십니까. 10퍼센트, 15퍼센트로 머리수를 제한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이 인도에서 똑 마찬가지로 했잖십니까?
     
    교육받고 그나마 남은 사람은 해방 뒤에 반민특위(反民特委)라 해서 또 잡아가고 자유당, 공산당 싸워서 또 죽고 6·25때 전부 납치되고는 지도자가 어디 남아 있고, 교육자가 어디 있십니까? 4·19가 되니 처리, 5·16 후에 또 처리되고….

    인재(人材)가 되려 해도 거세되고 배척당하고 제한되고….
    문제는 일치 단결입니다. 정부가 도덕 교육에 철저를 기해야 합니다. 국가를 위한 교육을 시켜야 됩니다. 도덕 교육만 시키면 재주가 있으니…. 단결해서 손해 본 게 뭐냐, 분열해서 득 본 게 뭐냐, 이런 걸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국민도덕 운동, 서로 협조…헐뜯지 말고, 그리고 단합하면 일본 따라가는 게 아니라 더 가지 싶습니다.
    나는 그런 생각 갖고 있십니다. 내가 해 봤시니까, 조선도, 반도체도, 트랜지스터도 해봤시니까…. 반도체도 이것만 일본 정도로만 뒷받침해 주면 절대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설탕, 제일제당이 비록 오래된 공장이지만 세계 입찰 경쟁에서 아직 한 번도 일본 사람들이 이겨 본 적이 없십니다. 생산 코스트가 싸니까.
    한국 비료도 마찬가집니다. 20퍼센트가 싸게 돼 있어요. 일본 차관으로, 일본 기술로 만든 공장인데 일본이 절대로 안 됩니다, 한국 비료한테는.
    그건 역시 경영을 잘 해서 그런 깁니다. 정부가 사들이는 비료값이 한국 비료가 톤당 65불로, 다른 데서 사는 것보다 30불이나 쌉니다. 

    선우(鮮于): 제가 사숙(私淑)하던 분이 있었는데, 지금은 돌아가신 탄허 스님입니다만, 그분 말씀이 개인에 운(運)이 좋으면 대통한다고 하는데 민족에도 그런 운(運)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 운이 몇백 년에 한번 일어나는 때가 있다는데 한국 민족에도 없으란 법이 없지 않느냐, 그러시면서 그런 기운(氣運)이 나타나고 있다고 해요.

    제가 지금 남북(南北)이 갈려 이러고 있는데, 하니까 그 분 말씀이 그건 괜찮다는 겁니다. 북쪽은 음의 기운이고, 남(南)은 양의 기운이라는 거죠. 그분께선 보인다는 겁니다. 어린 아이들의 눈이 빛난다든지. 지금 우리 국민들이 해외에 나가서 활동한다든지, 학문, 과학, 예술, 하다 못해 스포츠에서 저희들이 생각 못했던 자질을 나타내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끓어오르는 국민의 에너지를 한 흐름으로 모아 정말 역사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본 사람들을 보면 두뇌가 좋은 사람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은데 소수의 그런 사람들한테 많은 사람들이 순종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개성이 강해서 그런지 누가 우향우(右向右)하면 반드시 몇 사람은 좌향좌(左向左)를 하거든요. 이런 것이 좋게 평가되기도 합니다만 어떤 중요한 경우에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힘을 한데 모아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제국 일본처럼 전쟁을 향해 나간다든지 해선 안 되겠지만.
    우리가 단결만 할 수 있다면 오히려 일본보다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학교, 사회, 기업, 가정에서의 공공(公共) 교육이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보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는데 지금처럼 발전한 것은 역시 명치(明治) 1백년 동안의 기초 교육이 잘되어 꽃을 피운 게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요즘 기업체에서 사원들을 재교육하는 일에 투자를 많이 하는 것을 저는 좋게 보고 있습니다. 삼성(三星)에서 하고 있는 교육은 지금 어느 정도 되고 있습니까?
     

    이(李): 세계에서 제일 철저할 깁니다, 이거는. 사원(社員) 전체에 비해서 교육에 쓰이는 시설의 평수가 일본의 배, 미국의 3배, 구라파의 4배가 될 깁니다. 그리고 훈련의 비용이 또 일본의 배나 됩니다. 미국의 세 배, 구라파의 네 배.
    왜 그러냐, 이유가 있십니다. 회사에 들어오면, 지 자신을 그대로 두면 교육이 안됩니다. 비틀거려서 안되고, 도덕 교육도 안되고, 또 회사의 역사가 짧아서. 일본 같은 데 가보면 선배 사원이 있어서 뒤에 들어온 사람을 아르키는데… 또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실력도 모자란다, 이겁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 아닙니까.

    회사 교육도 필요하지만, 새마을 교육하는 식으로 도덕(道德) 교육을 하면 될 깁니다. 데모, 이 데모 없어질기고. 교육도 옳은 교육이 안 되겠느냐…표창도 하고 가정 교육도 하고, 온 국민이 서로 협조하도록, 단결해야 이 일이 되지, 하면 가능성이 있단 말입니다.

    鮮于: 일본 사람들이 조직 속에 들어가서 일하는 자세하고 한국 사람들이 조직 속에 들어가서 일하는 자세하고 어떻게 비교하십니까?
     

    이(李): 세밀하게 분석을 해보면 그건 미미한 차이라고 저는 보고 있십니다.
    일본 사람들은 웃대 저거 아부지가 덴뿌라 하면 나도 덴뿌라 하겠다, 아주 온건하고 소극적입니다.
    한국 사람은, 나 여러 번 듣습니다. 나는 국회의원 하고 정치 했지만 아들은 정치 안 시킨다, 나는 교육자 됐지만 자슥 교육자 안 시킨다, 내가 무엇을 했으니 자슥도 똑같이 그렇게 해야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 아직 못 들어 봤어요.
    왜 그러냐. 국민성이 달라 그런 거 아니죠? 일종의 관습 아니냐, 관습. 나는 관습이라고 보고 있지, 아매. 일본에선 데모하고 야스다 강당에 불을 지르고 하고 있지만은 핵교 막 졸업하고 나가면 백팔십도 변해버린다, 아주 온건한 사회인이 되고 만다, 으레히 회사 들어가면 사규(社規)를 지켜야 되고 선배의 말에 순종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본 국민 아니냐, 그것이 사회의 관습이 아니냐, 그렇게 보고 있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케일도 크고 건전한 생각을 갖고 있고, 얼마나 좋으냐 이깁니다. 이해를 시켜도 우리나라 국민한테 이해시키는 게 더 빠르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선우(鮮于): 얼른 그 말씀 듣고 생각하는 게 제 자식한테 신문기자 하라고 시키겠느냐…못할 것 같아요(웃음). 이것도 관습인지. 이 뭐인가, 자기가 해보니까 힘이 들어서 그것을 안 시키려고 하는 모냥이지요.

    저는 이런 낙관론은 가지고 있습니다. 사기꾼이 많이 있다, 형편없는 교육자가 많다, 뭐 이렇게 말합니다만 대부분의 교육자는 견실하게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사람이 나쁘지 대다수 국민들이야 모두 착한 사람들 아닙니까.
    제가 지방에 자주 내려가서 사람도 만나고 돌아보곤 하는데 지방에 있으면 아주 좋아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서울로 가까이 오면 올수록 초조, 불안하거든요(웃음). 물론 그것은 수도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학(自虐), 自侮(자모)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겸손은 좋은 건데 이게 나쁜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작년에 우리 사회에 지도자 되시는 분께서 강연을 하시는데, 물론 일종의 유머로 그러셨겠지만, 이러신단 말예요.

    서울에 사람이 얼마나 사느냐, 천만 명이 삽니다. 그 사람들이 뭘 하고 사느냐, 서로 속여 먹고 삽니다. 이런 식의 대화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저런 분이 아무리 반(半)농담이지만 저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李): 그러면 자신도 속여먹는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