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3호법’ 발의..5조 이상 재벌, 신규 순환출자 금지-기존 의결권 제한
  •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는 전면 금지한다. 기존 순환출자로 생긴 가공의결권은 행사할 수 없다”
     -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 대표발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경제민주화 3호 법안)’ 중 일부

    “순환출자 규제는 외국 투기자본 앞에 국내 대표기업들을 먹잇감으로 내 놓는 결과를 초래 할 것”
     - 재계

  • ▲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가공의결권 제한 등을 골자로 한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한 재계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2010년 중국 베이징에서 있었던 현대차 중국 제3공장 기공식.ⓒ 연합뉴스
    ▲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가공의결권 제한 등을 골자로 한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한 재계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2010년 중국 베이징에서 있었던 현대차 중국 제3공장 기공식.ⓒ 연합뉴스


    대선을 앞두고 여당인 새누리당이 기업의 순환출자를 근본적으로 막는 ‘경제민주화 법안’을 내놓으면서 재계에 파란이 일고 있다.

    재계에서는 남 의원의 ‘경제민주화 3호 법안’이 통과되는 경우 삼성, 현대, LG 등 국내 대표적인 기업들의 의결권 축소가 불가피해, 그룹의 해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순환출자 관련 사항에 대한 공시 ▲자산 합계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 신규 순환출자 금지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등이다.

    법안에 대한 재계의 반응은 신중론이 대세다. 재계의 우려표시가 자칫 재벌 이기주의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기업들은 이 법안이 한국 경제의 근간을 뿌리 채 흔들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으면서 여론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순환출자 금지 법안에 재계가 이처럼 크게 긴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재계의 입장은 간단한다. 순환출자 금지가 결국 국가 경쟁력의 퇴보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순환출자 금지 및 의결권 제한→국내 대표기업들의 지배구조 약화→투자여력 감소 등의 연쇄작용이 일어나면서 기업 경쟁력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편에서는 기업들의 약해진 경쟁력이 외국 투기자본의 유입을 야기해 국내 대표기업들의 지배구조가 넘어갈 수도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1. “순환출자 관련 사항 모두 공시” vs “적대적 M&A에 악용될 수 있는 지나친 규제”


    법안은 ①순환출자 형태 ②순환출자를 구성하는 계열회사  ③각 순환출자의 시기 및 지분비율-출자금액 ④순환출자를 구성하는 계열회사의 他 계열회사에 대한 출자 시기, 지분비율, 출자금액 등을 모두 공시토록 하고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성 보장을 위해서는 순환출자와 관련된 모든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재계는 국내 우량기업들을 외국의 투기자본에 먹잇감으로 내 주는 것과 같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의 취약점이 쉽게 노출돼, 해외PEF 등에 의한 적대적 M&A가 용이해 질 수 있다”

    “기업의 회계 투명성이나 지배구조 개선은 기업집단 현황공시,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비상장회사의 중요사항 공시를 통해 규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2. “신규 순환출자 전면금지” vs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해치는 역차별”


    경제민주화 3호 법안은 자산 총계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를 전면 금지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신규 순환출자를 전면 금지해 기존 대기업 소유주의 지배권 유지 및 확대를 막겠다는 취지다.

    법안의 핵심을 이루는 사안인 만큼 재계의 우려와 반발도 여기에 집중돼 있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가 기업의 투자방식을 제한하는 것과 같아 해외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재계는 내다보고 있다.

    순환출자는 기업이 경영환경에 가장 적합한 최적의 출자방식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금지하면 그만큼 기업의 사업전략 추진에 차질을 빚게 된다는 것이다.

    국내에 진출한 해외기업과 비교할 때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해치는 역차별이란 반응도 있다.

    재벌해체와 순환출자 금지 찬성론자들의 논거에 대해서도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반박이 나오고 있다.

    “순환출자를 금지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불이익을 상쇄할 만큼 순환출자의 부작용이 커야 한다”

    “그러나 순환출자의 부작용으로 거론되는 가공자본 형성, 소유와 지배의 괴리 등은 폐해가 입증되지 않았고, 실체가 불분명하다”

    “순환출자로 인한 부작용 발생 가능성은 공정거래법이 정하고 있는 기존 제도를 통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




    #3.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vs “외국 자본이 현대와 삼성 등을 지배하게 될 것”


    법안의 두 번째 쟁점은 기존 순환출자로 생긴 가공의결권의 제한이다.

    법안을 발의한 남 의원과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은 가공의결권을 제한해 기업 소유주의 부풀려진 권한행사를 막겠다는 입장이다.

    가공의결권이란 대주주가 직접 주식을 갖고 있지 않지만 자회사 등을 통해 지분을 소유한 결과 생긴 의결권을 말한다.

    이에 대해 재계는 한국적 특수성을 전혀 고려치 않은 불합리한 입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 대기업들의 순환출자 관행은 외환위기 후 정부정책에 순응하면서 이뤄진 구조조정과 적대적 M&A로부터의 경영권 방어과정에서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것”

    “순환출자를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 마련이 곤란하다”

    가공의결권 제한이 우리 대표기업들을 외국의 적대적 M&A세력에 무방비로 노출시켜, 소유권 자체가 넘어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삼성그룹을 예로 든다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48%를 비롯 삼성물산, 삼성화재 지분 등 12% 정도가 순환출자를 통해 만들어진 가공의결권이다(2012년 1분기 보고서 기준).

    가공의결권을 제한할 경우 삼성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불과 5% 남짓으로 줄어든다.

    삼성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삼성생명이 보유한 1,101만2,709주를 타 계열사에 매각할 경우 매각비용은 13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삼성은 물론이고 국내 기업 중 13조원을 투자할 수 있는 회사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현대차를 중심으로 현대모비스에서 현대차로 이어지는 지분 4,578만2,023주(20.78%)를 해소하는 데만 10조원이 필요하다.

    이만한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국내 기업은 없다.

    외국자본이 삼성전자나 현대차를 지배할 수 있는 상황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한다고 해도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순환출자 해소와 경영권 방어에 있는 돈을 모두 쏟아 넣은 상황에서 대규모 신규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중국 등 현지에 공장을 세워 글로벌 경영 시스템을 구축, 독일-일본-미국 등의 자동차 선진국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현대의 자동차 신화도 더 이상 지속하기 힘들게 된다.

    일본 경쟁사에 늘 한 발 앞선 대규모 신규투자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삼성의 반도체 신화 역시 빛 바랜 과거의 추억이 될 수 있다.



    #4. 해외자본의 우리 기업 경영권 장악..제2, 제3의 ‘론스타’ 사태로 이어질 수도


    해외자본이 경영권을 장악하는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들의 목적은 단기적인 이윤의 극대화다. 신규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해 저배당을 실시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과는 인식 자체가 다르다.

    외국 투기자본의 해악은 ‘먹튀’ 논란을 일으킨 론스타의 예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한국GM의 경우도 국내상황과는 관계없이 GM의 글로벌전략에 따라 주요 경영사항이 결정되면서 해외기업의 한국지사로 전락했다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5. 도요타는 순환출자, 포드는 차등의결권..국내 기업은 무장해제?


    가공의결권 제한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한다는 반론도 있다.

    해외 글로벌대기업들도 순환출자나 차등의결권 등의 경영권 보호장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기업들이 갖고 있는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과 같은 경영권 방어장치는 인정하면서, 우리 기업에 대해서만 가공의결권마저 제한한다면 사실상 무장해제나 다름없다는 비판이다.

    실제 일본의 도요타, 인도의 타타, 독일의 도이치뱅크 등은 모두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고 있다.

    미국의 포드자동차는 차등의결권을 인정받아 보유 지분은 7%에 불과하지만 40%의 의결권을 갖고 있다.



    #6. 학계 “순환출자 금지, 우리 경제에 악영향”


    재계의 동요가 커지면서 학계에서도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순환출자가 금지되면 기업이 경영권 방어에 집중하느라 신규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고 일자리 창출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결국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
    -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

    법률적 측면에서 법안의 문제를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경제민주화의 근거로 제시되는 헌법 119조는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경제의 기본질서로 하고(1항), 필요한 경우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것(2항)”

    “1항을 뒷전으로 미루고 2항만을 앞세워 경제민주화로 ‘네이밍(naming)’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7. 새누리 경제통들 “과연 순환출자 금지가 해결책이냐”


    사실 새누리당 전체가 경제민주화 법안 처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의 경쟁력을 훼손시킬 수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을 포퓰리즘 경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은 것.
     
    새누리당 내에서 ‘좌향화’ 된 경제민주화를 주도하는 이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라면, 재벌의 지배소유구조는 건드리지 않고 재벌의 경제력 남용 및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 거래 행위를 철저히 근절해 재벌개혁을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온다.

    이한구 원내대표가 대표적이다. 사실 새누리당 내에서 ‘재벌개혁’ 카드를 가장 먼저 꺼낸 인사도 이한구 원내대표였다.

    그는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로 인한 폐해를 어떤 방식으로든 고쳐야 하지만 경제민주화를 너무 과하게 해서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경제학 박사’ 출신인 만큼 선지자적 입장에서 급격히 무너지게 될 대한민국 경제를 우려하고 경제민주화 논의가 지나치게 급진적(progressive)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중을 품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당내 경제통인 유일호 의원 역시 “대기업 위주의 성장과 불공정 행위로 인한 폐해 등은 어떤 방식으로든 고쳐져야 하고 개선돼야 할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위한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순환출자 금지가 과연 유일한 해결책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8. 박근혜 “기존 순환출지 금지, 바람직하지 않아!”

    김종인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주장과 이한구 원내대표의 절충적 경제민주화 주장이 대립각을 세우자 옥스퍼드 경제학 박사 출신인 나성린 정책위부의장이 교섭에 나섰다.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나성린 정책위부의장의 주요발언 내용이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대기업이 편법 증여를 한다든지 중소기업에 대해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이 아직 있으니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하자는 생각이다. 김종인 위원장도 야당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결국 중간 지점에서 타협안이 나올 것이다.”

    당이 양측으로 갈려 팽팽한 대립을 거듭할수록 박근혜 후보의 대선가도에 그리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나성린 정책위부의장은 “박근혜 후보는 반드시 경제민주화를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경제를 망가뜨리거나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으며 사회적 약자를 돕는 측면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결국 박근혜 후보의 의중대로 경제민주화 논란을 일단락하자는 것. 

    실제 박근혜 후보는 대기업 순환출자 문제와 관련해 “지배구조 고리를 다 끊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투자를 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었다.

    “기존 순환출자 금지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기업의) 경우에 10조원 이상이 들어야 한다면 그 10조원을 일자리에 주는 것이 국민에게 더 도움이 된다.”

    기존 대기업의 순환출자의 가공의결권까지 금지해야한다는 당내 일각의 주장에 ‘신규’에 한해서로 못을 박은 것이다.

    결국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 순환출자 논의와 관련, ‘절충-합의’ 차원의 방향을 택한 만큼 남경필 의원이 내놓은 ‘기존’ 순환출자 가공의결권 행사금지 법안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신규’ 순환출자 금지의 경우,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는 만큼 법안이 나오는 대로 조속히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 이슈를 새누리당에 빼앗겼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치공세에 매달리는 모습이다.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해야 한다는 박근혜 후보에 대해 “재벌옹호론자에게는 진일보한 것이겠지만 이는 엉거주춤한 타협안을 제시한 것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박근혜 후보의 주장은 기존 순환출자에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죽도 밥도 아닌 대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