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우리법상 잊혀질 권리 인정문제와 법제화 방향 토론
  • 온라인상 개인과 관련된 정보의 삭제 요청권, 이른바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를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란은 스페인 변호사 코스테하 곤잘레스가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면 사회보장채무와 그에 따른 부동산 강제 경매에 관한 신문 기사가 구글 검색엔진을 통해 지속 검색됨에 따라 스페인 개인정보 보호기구(AEPD)에 2가지 요청사항을 진정하면서 시작됐다. 

    곤잘레스는 신문사측에 온라인상 공표된 신문기사를 삭제해 줄 것과 구글측에 구글 검색결과를 삭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자신이 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데다 오랜 시간이 지나 현재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AEPD는 신문사에 대한 삭제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구글측에 대해서는 삭제 요청을 받아들였다. 

    구글은 해당 판결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고 스페인 법원은 이 사건이 EU 개인정보지침의 새로운 인터넷기술 환경에서의 해석에 관한 사항이라 판단, ECJ에 판결을 맡겼다. 

    이에 ECJ는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며 시효가 지난 부적절한 개인 정보에 대해 삭제 명령을 내렸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6일 '2014 온라인 개인정보보호 컨퍼런스'를 개최, EU법원의 '잊혀질 권리' 판결을 짚어보고 우리나라 현행 규정에 대한 적용과 향후 법제화를 위한 주요 과제 등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토론 자리에서는 언론보도 등 표현의 자유나 공익을 위한 정보 보존의 필요성, 기술적·경제적 한계 등 '잊혀질 권리' 실현에 있어 고려해야할 쟁점들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유럽사법재판소(ECJ)의 '잊혀질 권리' 판결이 갖는 의의에 대해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정찬모 교수는 "잊혀질 권리를 직접 독립된 권리로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당 개인정보의 적절성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판결에 대해 △신문 언론 활동에 비해 검색엔진 활동은 보호가치가 낮은 것으로 판단한 것은 아닌지 시간이 경과했다는 이유로 쉽게 무의미한 정보로 취급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지 개인정보보호 이념에 집착해 표현의 자유, 알권리 등 다른 법익과의 균형을 무너뜨린 것은 아닌지에 대해 검토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의 잊혀질 권리 도입은 신중해야 하며 현행 정보통신망법상 사생활침해 정보에 대한 삭제요청(제44조2) 운용을 재점검하는 수준에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변호사는 ECJ가 판결한 잊혀질 권리의 국내 법 적용 여부에 대해 이야기 하며 "ECJ 판결은 본질적으로 적법한 이익들의 비교형량이 핵심 요소였다"며 "정보주체의 이익과 그 정보에 접근하는 일반대중의 이익을 비교형량해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정보통신망법 30조 2항 정정권을 적용해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검색엔진에 대한 이용자성을 해결해야 하는데다 ECJ 판결은 이익충돌 및 이익형량이 전제되지 않은 무조건적인 정정권을 인정하고 있어 잊혀질 권리 근거조문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며 "새로운 조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개인정보보호법 36조, 37조의 삭제·처리정지권을 ECJ가 인정한 잊혀질 권리 근거 조문으로 볼 수 있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만큼 새로운 명문의 입법을 통해 명확한 근거 규정이 도입하는게 필요하다"며 "잊혀질 권리 문제점인 한계 설정이나 이익형량 요소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잊혀질 권리 보장을 위한 향후 과제에 대해 한국인터넷진흥원 백수원 박사는 "표현의 자유에 반할 경우에는 공중 보건 분야에서 공익을 위한 경우, 연구 목적으로 필요한 경우, 타 법률에 의해 보관해야 하는 경우 등의 예외 사유가 명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온라인상 사생활 침해에 대한 판단은 전문기관이 인정하는 경우여야 하며 해당 결정에 불복할 경우 사업자측과 정보주체측이 대처할 수 있는 처리 절차가 명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한국인터넷진흥원 황성원 단장은 "맘에 들지 않는 정보를 국가 힘을 빌어 지우고자 하는 쪽으로 생각하는데 이용자 스스로 책임의식을 갖고 글을 올릴 때 이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적법한 정보라 해서 무조건 지워달라고 해서도 안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법무법인 태평양 이상직 변호사는 "잊혀질 권리 대상이 되는 것이 사생활 침해라고 여겨지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며 "적법한 정보인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한데 적법한 정보가 시간이 지났다 해서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적법한 정보가 잊혀질 대상인지에 대한 판단이 명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자 입장에서 보는 잊혀질 권리에 대해 SK커뮤니케이션즈 김태열 팀장은  "사업자 입장에서 망자에 대한 잊혀질 권리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자연인이 아니기 때문에 삭제를 요청하는 경우 유족에게 사망 진단서, 관계 증명서를 받아 삭제하는데 사망자가 비실명으로 글을 작성했을 경우에는 사망자와 동일한 사람인지 알 수 없어 지워주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지성우 교수는 "개념 자체를 법으로 규정하고 그를 바탕으로 판례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적절성에 대해 법으로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헌법 명확성 원칙에 있어 문제가 있다"며 "잊혀질 권리가 공인들의 과거 세탁하고자 하는 수단으로 남용되거나 오용될 수 있다는 점과 기억할 권리와 기억될 권리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소비자 시민모임 윤주희 부위원장은 "이용자 입장에서 잊혀질 권리 판결에 아쉬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원치 않는 정보가 네이버, 구글, 다음 다 올라가 있다면 모든 곳에 다 삭제 요청을 해야 한다"며 "이는 권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이어 "본래 기사가 검색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