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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싸움까지 불사하며 공정위에 맞서던 간 큰 기업들이 영악해지고 있다. 사회적인 지탄은 물론 법인과 개인에게도 과태료를 물리고 형사처벌까지 이어지자 '맞짱'의 방법이 달라졌다.
자진신고 감면제도인 리니언시를 이용해 과징금을 줄이고 소송을 통해 과징금을 되돌려받는 세련된 방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몸싸움은 사라진 반면 깍고 줄이고 되돌려주기 일쑤인 공정위 과징금은 어느새 도루묵 신세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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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2년 간 컸던 '삼성전자-LG전자-SK C&C-포스코건설'
공정위와 몸싸움까지 벌였던 간 큰 기업들은 굴지의 대기업들이었다.
2011년 1월 CJ제일제당은 밀가루와 설탕 등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현장조사시 부사장의 진두아래 외장디스크와 USB 숨기거나 삭제했다.
같은 해 3월 삼성전자는 수원사업장에 찾아온 공정위 조사관들을 몸으로 막아서며 육박전을 벌였다. 전무와 상무의 지휘아래 몸싸움을 벌이며 시간을 버는 동안 내부에서는 관련 자료를 삭제하고 폐기했다. 1년뒤 당시로는 가장 큰 금액인 3억여원의 과태료가 부과됐고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가 이뤄졌지만 당사자는 지난 4월 슬그머니 부사장으로 승진해 재등장했다.
LG전자와 SK C&C는 2011년 3월과 7월, 계열사 부당지원혐의에 대한 조사시 자료제출을 거부하거나 숨기고 폐기처분까지 하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당시 SK C&C는 공정위가 영치한 자료까지 탈취하고 파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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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건설은 가장 최근인 2012년 9월 인천도시철도 2호선 입찰담함 조사에서 기업 윤리그룹에서 사전 검열을 마친 바뀐 하드디스크를 제공해 빈축을 샀다.
하지만 2012년을 이후로 대기업들의 겉으로 드러난 조사방해는 일단 자취를 감췄다. 사회적인 비난여론이 거세고 처벌 수위도 한층 높아진데다 리니언시나 소송을 통한 실익챙기기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서울고검은 이례적으로 올해 초 삼성전자와 LG전자, SK C&C 등 임직원 13명이 공정거래위 조사를 방해한 시민단체의 항고사건에 대해 수사를 다시 하도록 서울중앙지검에 재기수사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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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묵이 된 과징금...불복-소송 줄이어
공정위 과징금이 도루묵 신세로 전락했다. 2005년부터 10년간 4조원이 넘게 부과됐지만 깍고 줄이고 돌려주고 취소하기 일쑤다. 언론에 공표되는 과징금 액수를 그대로 믿는 사람도 적지만 부과된 과징금을 고스란히 내는 기업은 더욱 드물다.20일 열린 공정위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의원 모두 도루묵 신세가 된 과징금에 대한 질타를 퍼부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은 최근 10년간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4조525억원 가운데 87.7%인 3조5571억원이 행정소송으로 제기됐다고 밝혔다. 10년간 담합관련 행정소송은 모두 162건이었으며 계류중인 54건을 제외한 총 108건 가운데 25.9%인 28건은 패소했다. 과징금을 재산정 중인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소송패소에 따른 과징금 환급액은 2557억원에 달했다.
같은 정무위 이상규 의원은 공정위의 100억 이상 고액소송 패소율이 70%가 넘는다며 우려했다. 2011년 공정위는 잇단 패소로 한화생명 486억원과 LG디스플레이 314억원의 과징금을 고스란히 되돌려 줘야 했다. 모두 대형로펌의 작품이었다.이 의원이 최근 5년간 공정위 소송을 대리한 로펌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체 397건 중 4분의 1인 94건을 김앤장이 수임했다. 태평양과 광장, 세종, 율촌, 화우 등을 포함한 6대 로펌의 총 수임건수는 전체의 70%가 넘는 282건.
이들이들 로펌이 대리한 과징금 총액은 2조2000억원이었으며 수임료를 1%로 가정해도 그 규모는 220억원을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반면 공정위를 대리하는 로펌들은 정부법무공단을 비롯한 중소 법무법인이 대다수로 공정위가 5년간 법률 대리인에게 지출한 수임료는 52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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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유의동 의원도 최근들어 공정위 시정조치에 대한 기업들의 불복률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며 우려했다. 유 의원은 지난 한해 공정위가 총 377건의 시정조치를 내렸는데 이 가운데 기업이 불복해 소송으로 이어진 건수가 46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2010년 이전 평균 6~7% 수준이던 소송 제기율은 2010년 이후 60% 이상 급증해 12%를 넘어섰다.
유 의원은 "최근 5년간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이 연평균 7831억원씩 모두 3조9615억원이었다"며 "엄청난 금액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대형 법무법인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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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언시 악용 먹튀 속출 ...불납결손액 188억
공정위가 자진신고자 감면제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유의동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공정위가 적발한 담합사건 133건 중 77.4%인 103건이 리니언시 적용을 받았다. 리니언시 없이 자체적으로 적발한 담합사건은 2011년 2건, 지난해 5건에 불과했다.리니언시 적용 103건의 과징금 부과액은 최근 5년간 무려 1조7843억원이었다. 이중 38건은 감면액이 최종 부과과징금을 초과했으며 8건은 아예 과징금을 면제받았다. 처벌도 낮추고 과징금도 깍을 수 있다보니 리니언시를 악용하는 먹튀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떼이는 불납결손액과 임의체납 과징금도 매년 증가세다. 올해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하고도 징수하지 못해 소멸된 금액은 188억원으로 지난해 8억6000만원 보다 22배가 늘었다. 서비스업과 건설업의 소규모 업체들이 5년이 넘도록 과징금을 내지않아 소멸시효가 완성된 금액이다.
임의체납 과징금도 300억원이 넘는다. 공정위는 8.5%의 가산금을 부과하고 있지만 출국금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없어 독촉장 발부 등 간접적인 조치에 그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은 "과징금 부과는 기업의 법위반 정도가 중할 때 이뤄지는 경고나 주의조치의 상위 제재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임의체납, 불납결손 등 미수납 과징금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