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근 의장, 지난해 "빠르게 안정화" 입장서 1년 만에 "한계" 내비춰SK하이닉스 뺀 주요 계열사 실적 줄줄이 악화"현상 유지는 사실상 도태되는 것... SK號 방향 잡아야할 선장 없어"
  • ▲ 최태원 SK그룹 회장 ⓒSK그룹
    ▲ 최태원 SK그룹 회장 ⓒSK그룹

    오늘로 부재(不在) 652일 째를 맞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빈자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총수 공백 초기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중심으로
    공백을 메우는 듯 했지만, 2년여가 다 되어가는 현재, 수펙스의 한계점이 드러나는 상황이다.

    김창근 수펙스 의장은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SK행복김치 담그기' 행사에서 "오랜 경험과 경륜, 역량, 리더십을 가진 계열사 CEO들이 수펙스 6개 위원회에서 일상적인 그룹 일을 논의하는 것은 일견 잘 해나가는 모습"이라고 평가 하면서도 "하지만 외부환경의 변화가 극심한 현재 대규모 투자를 하거나, 업의 본질을 바꾸고 사업 게임의 룰을 바꾸는 일은 온전히 오너의 몫"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최 회장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노력한다고 메워지지는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펙스가 일상적인 그룹의 업무를 진행하는데는 무리가 없지만 대규모 투자나 사업의 큰 방향을 잡는 등 큰 그림을 보는 것은 오너의 의사결정이 가장 중요한만큼 최 회장의 빈자리가 크게 아쉽다는 얘기다. 김 의장이 최 회장의 부재에 대한 의견을 직접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창근 의장의 이같은 발언은 1년 전 열린 'SK 행복나눔 김장행사' 때의 발언과 미묘한 온도차가 난다.

    지난해 11월 19일 김 의장은 "경력이 30년 이상 된 훌륭한 역량의 CEO(최고경영자)들과 힘을 모아 그룹 전체를 함께 운영하다보니 참으로 빠르게 안정돼 왔다"면서 최 회장의 부재로 그룹이 어려움에 처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시킨 바 있다.

    그러나 총수의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수펙스 중심으로만 돌아가기에는 오너의 결정이 절대적인 한국 기업의 특성상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사실상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SK 한 관계자는 "최 회장이 수감 중이기 때문에 현재 경영진과 최 회장의 커뮤니케이션은 굉장히 제한적인 상태"라면서 "이슈가 있을때 마다 공유를 하고 중간 중간 최 회장이 의견을 주기도 하지만, 사안에 따라 밖에서 주요 결정을 먼저 내린 뒤 경영진이 면회를 가 최 회장에게 사후 보고를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같은 제한적 현재 상황에서 최 회장이 대규모 투자나 신사업 발굴과 같은 굵직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 회장의 부재로 직격탄을 맞은 것은 SK 주요 계열사의 실적이다.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은 실적 악화를 거듭하다 올 3분기 흑자 전환에는 성공했으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5% 급감했다. SK하이닉스를 제외한 SK 주요 계열사의 실적은 모두 정체되거나 하락하고 있다.

    또한 최 회장의 공백 이후 SK그룹은 지난 2012년 SK하이닉스 인수와 같은 대규모 인수·합병(M&A)이나 과감한 투자, 연구개발(R&D) 등에서도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SK그룹이 '현상 유지'에만 머무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 ▲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각 위원회 위원장 및 관계사 CEO 등이 지난달 29일 전날부터 1박2일 일정으로 경기 용인시 SK아카데미에서 진행된 ‘2014 CEO 세미나’에서 2015년도 경영방침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SK그룹
    ▲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각 위원회 위원장 및 관계사 CEO 등이 지난달 29일 전날부터 1박2일 일정으로 경기 용인시 SK아카데미에서 진행된 ‘2014 CEO 세미나’에서 2015년도 경영방침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SK그룹

     

    이런 상황에서 SK그룹은 내년도 경영키워드를 '전략적 혁신'으로 내세웠다. SK그룹은 지난달말 1박2일 일정으로 '2014 SK그룹 CEO 세미나'를 열고 30여명의 CEO들이 모여 "전략적 혁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자"고 뜻을 모았다. CEO 세미나는 한 해를 마치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출발점을 논의하는 자리이다 보니 구체적인 전략 방안이나 사업 계획 등은 전해지지 않았다.

    사실상 교과서적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수펙스의 한계가 총수 공백이 길어질 수록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형국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수펙스의 경우 사실상 유지하는 기능 이외에는 아무것도 결정을 할 수 없는 조직으로 보면 된다"면서 "기업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현상유지만 한다면, 이는 사실상 죽은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큰 틀에서 조직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투자 등의 경우 수펙스가 아닌 철저히 오너인 선장이 판단해야할 사안인데, 10만여명의 직원들이 탄 SK호에는 안타깝게도 키를 잡아야할 선장이 없는 셈"이라고 아쉬워했다.

    한편 SK그룹은 현재 수펙스를 중심으로 계열사 평가에 들어갔으며 오는 12월 중순께 정기 인사가 예정 돼 있다. 
    SK는 먼저 각 사별로 '전략적 혁신'을 위한 조직 개편에 들어가며 새로운 조직 개편에 맞춰 인사를 단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