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그룹은 30개 계열사 사장단 50여명의 인사를 12월 첫째주 단행할 예정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6개월째 장기입원 중인 가운데 이뤄지는 이재용 부회장의 첫 인사인데다 삼성그룹 전체 매출의 60~70%를 차지하는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실적 악화까지 겹치면서 이번 삼성 사장단 인사에 업계의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집중되고 있다.
장기입원 중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실질적인 삼성의 수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의 회장 승진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꼽혔으나 이 회장이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은 '시기상조(時機尙早)'라는 의견이 대내외적으로 우세한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이건희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부회장 승진설로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다.
이 사장은 외모뿐만 아니라 강한 추진력과 똑부러진 경영 스타일 등이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과 쏙 빼닮아 '리틀 이건희'로 불린다. 이 사장은 지난 2010년 호텔신라 사장 승진 직후부터 이재용 부회장과는 차별화된 경영 능력을 나타내며 매년 유력한 부회장 승진자로 거론되고 있다.
삼성이 지난 2009년 이후 매년 두 명씩 부회장 승진자를 배출해오다 지난해에는 부회장 승진자를 발표하지 않았다는 점도 올해 이부진 사장의 부회장 승진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
이부진 사장은 1995년 삼성복지재단에 입사한 뒤 15년 만인 2010년 호텔신라 사장 겸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 경영전략담당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부진 사장은 사장 승진 당시 부사장을 거치지 않고 2단계 진급하며 삼성그룹 사상 첫 여성 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 사장과 두 살 터울이 나는 이재용 부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 사원으로 입사한 뒤 19년 만인 2010년에 사장 자리에 오르고 사장 승진 2년 만인 지난해 45세의 나이로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1970년생인 이부진 사장의 올해 나이는 45세로 이재용 부회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던 나이와 같다. 이번에 부회장으로 승진하게 될 경우, 삼성그룹 사상 첫 여성 부회장 타이틀을 갖게 된다.
이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1973년생) 제일모직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은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해 11년만인 지난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같은 배경은 차치하더라도 이부진 사장이 그간 보여준 경영 능력과 행보는 부회장 승진설에 충분한 근거가 되고 있다.
▲이부진 사장 경영 스타일 "승부사 기질+실리주의" -
이부진 사장이 이끄는 호텔신라는 올 3분기 매출액 7922억200만원, 영업이익 578억1600만원, 당기순이익 368억7000만원을 기록하면서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특히 이 사장이 강력하게 추진해 온 면세점 사업 매출이 고성장을 기록하면서 전체 실적을 견인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호텔신라 주가는 최근들어 주춤하기는 했으나 올 7월에는 상장 이후 처음으로 10만원을 넘어서고 시가총액 4조원대를 돌파하는 등 이부진 사장이 경영을 맡은 4년 동안 꾸준한 상승세를 지속해왔다. 호텔신라 주가는 2010년 말 2만원대에서 현재 10만원대에 육박한다.
이부진 사장은 전 세계 최초로 공항면세점에 루이비통 매장을 입점시켜 전세계 유통계를 깜짝 놀라게하는가 하면 호텔신라가 글로벌 면세점 업체로 도약하는데도 큰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면세유통사업은 호텔신라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주력 사업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실적도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면세사업에서 특유의 추진력과 승부사 기질을 보여준 이 사장은 최근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실리경영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호텔신라는 지난 6월 지분을 100% 출자해 자회사 '신라스테이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호텔신라의 호텔사업은 그동안 줄곧 적자를 면하지 못했고 면세점 사업이 이를 보충해왔다. 그러나 이부진 사장이 의욕적으로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뛰어들며 호텔신라의 호텔사업은 3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고급호텔이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 주변의 우려가 많았으나 이 사장은 강단있게 밀어부쳤고 '호텔신라가 운영하는 고급 비즈니스호텔'이라는 차별화 전략은 시장의 요구와 딱 맞아 떨어졌다. 호텔신라는 신라스테이역삼과 신라스테이동탄을 포함 오는 2016년까지 총 10개의 비즈니스호텔을 오픈할 예정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부진 사장은 추진력이 강하고 승부사 기질이 있어 이건희 회장의 경영 스타일과 많이 닮아있다는 평을 받는다"면서 "이 사장이 4년 간 이끌어 온 호텔신라의 경영 실적 변화가 이를 증명해준다"고 평했다.▲이부진 사장이 보여 준 '책임경영'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부진 사장이 그간 보여 준 '책임경영'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경영인으로서의 귀감(龜鑑)으로 꼽히고 있다는 점도 부회장 승진설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부진 사장은 지난 2011년부터 삼성 오너 일가 중 유일하게 등기이사를 맡고 있다. 등기이사는 이사회에 참여해 기업경영상 필요한 중대한 의사결정을 논의할뿐 아니라 법적인 책임까지 지는 중요한 위치다. 이 부회장은 삼성 오너 일가 중 가장 먼저 등기이사를 맡음으로써 '책임경영'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일컫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인사로도 항상 거론되고 있다.
이 사장은 올 3월 초 신라호텔 회전문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 총 4억원의 피해액을 변상해야 하는 택시 운전기사 홍모씨(82)의 변상 의무를 면제해줬다. 이 사장은 당시 택시 운전기사의 집안 형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변상 의무를 면제하도록 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8월에는 전국적으로 이슈가 된 아이스버킷챌린지에도 이 사장은 기부로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시 이 사장을 지목한 당구선수 차유람은 "(이부진 사장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도움을 주는 선행들을 많이 해왔고 현재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를 지목하게 된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건희 회장이 5월 초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삼성서울병원에서 장기 입원중인 점과 현재 이부진 사장이 임우재 삼성전기 부사장과 이혼 조정 중인 점 등은 그의 부회장 승진에 다소 부담이 될 여지로 남아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와병중인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의 회장 승진설과 이부진 사장의 부회장 승진설이 계속 제기돼 양측 모두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면서 "이 사장이 부회장 승진을 하더라도 삼성그룹 내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또 "이혼은 어디까지나 개인사이기 때문에 이 사장의 부회장 승진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