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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내리는 11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 세계를 빛내는 한국의 쓰리 테너 그룹 '뜨레 아미치(Tre Amici)'가 클래식과 크로스오버를 넘나드는 열정적 무대를 선보였다.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으로 펼쳐진 28일 콘서트에서 테너 이동명, 김동원, 김기선 등 한국의 쓰리테너는 최고 난이도의 아리아와 메들리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1부는 오페라, 2부는 가곡과 뮤지컬 등 크로스오버 곡들로 짜여진 이 날 공연은 각 연주자들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이 날 공연은 세계가 주목하는 여성 지휘자 김봉미의 지휘와 파밀리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연주됐으며 미녀 오페라 평론가 손수연의 해설과 진행으로 이어졌다.
1부에서는 도니제티, 베르디, 푸치니 등 오페라 역사 100년을 아우르는 대표 작곡가별로 쓰리 테너와 정상급 소프라노들이 주옥 같은 아리아와 듀엣곡들을 선보였다. 도니제티 오페라는 김동원-이명희, 베르디 오페라는 김기선-이은희, 푸치니 오페라는 이동명-김지현 팀이 각각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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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무대를 연 테너 김동원은 도니제티 오페라 ‘연대의 딸’에 등장하는 아리아 'Ah Mes amis(오늘은 기쁜날)'를 불러 강렬한 존재감을 관객들에 각인시켰다.
이 아리아는 하이C가 무려 9번이나 등장해 세계 정상급 테너들도 연주하기를 두려워하는 곡으로 유명하다. 김동원은 가슴을 파고드는 미성(리리코 레제로)의 색채로 고난이도 아리아를 최고의 연주력으로 소화해내는 것은 물론 모든 테너들이 두려워하는 하이C를 특유의 감성으로 깔끔하게 완성시켜 박수를 받았다.
‘영혼의 심연을 울리는 목소리’라는 평을 받아온 소프라노 이명희는 도니제티의 오페라 ‘샤무니의 린다’ 중 ‘내 영혼의 빛’을 연주해 관객들의 가슴을 적셨으며 이어 김동원과 함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아! 나의 한숨은 바람에 실려'를 듀엣으로 선보였다. 김동원-이명희는 가을에 어울리는 서정적이면서도 섬세한 연주로 관객들의 낭만을 한껏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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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김기선은 베르디의 오페라 아리아 가운데 스핀토 테너 색채가 가장 뚜렷하게 부각되는 오페라 '일트로바토레' 만리코의 아리아 '저 타는 불꽃을 보라'를 강렬하면서도 화려한 목소리로 연주해 눈길을 끌었다. 남성적 카리스마가 강한 곡에 김기선 특유의 미성이 어우러져 깊은 여운을 남겼다.
한국의 최정상 리릭-스핀토 소프라노로 평가받고 있는 이은희는 갈라 무대임에도 불구,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중 '신이여, 평화를 주소서'를 완벽하게 연주했다. 때로는 속삭이듯 여닐게, 때로는 강렬한 호소력으로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이어 김기선과 이은희는 베르디 오페라 중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빛나고 행복했던 어느 날'을 듀엣으로 소화해내며 베르디 오페라 무대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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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칼라프'로 불리는 테너 이동명은 테너 아리아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네순 도르마(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러 독보적인 음색과 성량으로 무대를 압도하며 스핀토 테너로서의 위용을 보여줬다.
한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소프라노 김지현은 풍부한 호흡과 완벽한 발성으로 다져진 감미롭고도 화려한 표현력으로 오페라 '토스카'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연주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릭 소프라노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이동명과 김지현은 듀엣곡으로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의 '오! 사랑스런 그대'를 선보였다. 이동명의 무게감있고 풍부한 음색에 김지현의 청아하고 힘있는 목소리가 겹쳐지며 로돌포와 미미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무대에 고스란히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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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는 가곡과 이탈리아 칸초네, 뮤지컬 넘버 등 쓰리 테너의 색다른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크로스오버 무대로 채워졌다.
익숙한 우리 가곡 '거문도 뱃노래'와 '내맘의 강물'로 테너 김기선과 김동원이 2부 무대를 열었으며 이어 이동명은 드라마틱한 이탈리아 칸초네 '위대한 사랑'을 선보였다.
김기선과 이은희가 오페라 '유쾌한 미망인' 중 '입술은 침묵하고'를, 김동원과 이명희는 오페레타 '마리자 백작부인' 중 '함께 바리스틴으로 갑시다'를, 이동명과 김지현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중 '내가 내게 바라는 모든 것'을 안무와 함께 선보이자 분위기는 더욱 흥겹게 무르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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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무대는 쓰리 테너가 함께 ‘무정한 마음’, ‘아침의 노래’, ‘오 나의 태양’, ‘여자의 마음’ 등 우리 귀에 익숙한 4곡을 연이어 불렀다. 솔로 파트에서는 각자의 기량과 색채를 가감없이 뽐내면서도 합창을 할 때는 하나의 목소리로 어우러지며 절묘한 하모니를 이뤘다.
이 날 앵콜 곡으로는 흔한 듯 하면서도 빠지면 왠지 섭섭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가 6명의 화음으로 울려 퍼졌다. 모든 공연이 끝난 뒤에는 쓰리 테너와 쓰리 소프라노가 관객들과 한 목소리로 ‘사랑으로(해바라기 노래)’를 합창하며 마지막 가을 밤을 따스하게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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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뜨레 아미치' 공연은 국내외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는 세계 정상급 테너 3명의 기량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동시에 이들 각자의 특색과 강점을 골고루 비교해가며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감동과 재미를 선사했다.
또한 클래식 관객들에게는 도니제티와 베르디, 푸치니를 아우르는 오페라의 매력을, 클래식이 생소한 관객들에게는 크로스오버를 통한 음악의 매력을 전파하며 깊어가는 올해의 마지막 가을밤을 낭만적으로 물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