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 에쓰-오일 이어 SK에너지까지 담합 누명 벗고 '과징금+이자' 돌려 받을 듯공정위, 이자+소송비용까지 부담해 업계에 돌려줘야할 판보복형 혹은 보험형 리니언시 속출 등 의미 무색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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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니언시(Leniency. 담합자진신고자감면제) 제도운영을 통해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해 오며 승승장구 해왔던 공정거래위원회가 결국 이 제도로 망신을 사게 됐다.

    최근 대법원이 정유사 원적지 답합과 관련한 공정위의
    담합과징금 부과에 대해 잇따라 정유업계의 손을 들어주면서 그동안 업계에 부과했던 과징금에 이자까지 더해 되돌려 줘야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12일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SK,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등이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취소하라'며 공정위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SK와 에쓰-오일, 현대오이랭크 등에 내린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이 취소됐다.

    대법원의 결정으로 공정위가 손쉽게 담합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리니언시 제도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11년 '주유소 원적지 담합'을 했다며 정유4사에 과징금 4300억원을 부과한 공정거래위원회 처분에 대한 것으로, 당시 공정위는 GS칼텍스의 자진신고를 기반으로 정유사들이 주유소 유치 경쟁을 자제하자는 담합을 통해 경쟁을 제한했다며 정유4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각 정유사별로 GS칼텍스 1772억원, SK이노베이션 1337억원, 현대오일뱅크 753억원, 에쓰-오일이 438억원을 부과받았으나,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한 GS칼텍스는 리니언스 적용으로 과징금 전액을 면제받았다.

    대법원의 판결로 사실상 원적지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했던 GS칼텍스에 대한 업계의 불만과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리니언시 특성상 이번 사안이 최고 경영자에까지 보고될 수 밖에 없는 사안인데, 대법원에서 자진신고 내용을 뒤집어 버렸기 때문이다.

    시 GS칼텍스가 공정위에 정유업계 담합 사실을 신고하자 정유3사는 원적지 담합 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 및 과징금납부명령 취소 청구 소송에 나섰다.

    업계 한 관계자는 "리니언시로 인한 이점보다 폐해가 더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부 기업들은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해 '함정형' 리니언시를 제출하기도 한다"면서 부작용을 꼬집었다.

    이처럼 리니언시 제도는 경쟁사를 견제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될 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9년 12월 당시 공정위는 국내 LPG 업체 6개사가 약 6년간 충전소 판매 가격을 놓고 담합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6689억원을 부과한 바 있다.

    당시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한 SK에너지와 SK가스는 각각 1987억원, 1602억원을 부과 받았지만, 1, 2위를 차지하며 과징금을 면제 받았다.(1차 신고자는 100% 면제, 2차 신고자는 50%. SK가스의 경우 현재 계류중).

    LPG담합으로 GS칼텍스는 55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에 앞서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등 합성수지에 대한 담합에 이어 잇따라 과징금 철퇴를 맞은 업계에서는 리니언시를 통한 과징금 면제에 혈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GS칼텍스가 또 다시 과징금을 때려 맞을 것을 우려해 원적지 담합을 무리하게 시고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보복형 리니언시거나 혹은 눈치를 보다 먼저 질러버린 것이 결국 탈이 났다는 것이다.

    리니언시가 업체 간 담합 적발에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은 이같은 적발 사례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리니언시로 인해 동종업계간 불신이 팽배해져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양상을 보이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담합을 주도하거나, 담합에 큰 역할을 한 기업들이 실제로는 자신이 가장 많은 과징금을 내야함에도 불구하고, 리니언시를 통해 전액 감면받는 것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리니언시가 보복 성향을 띠면서 업체 간 '막장 폭로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LPG 과징금 사건과 이번 원적지 담합 사건으로 인해 정유사들끼리의 접촉이 거의 사라졌을 정도로 업계간의 골이 깊어졌다"며 "서로 신뢰가 없어 담합은 커녕 정유업계가 다같이 힘을 모아야 할 때도 나 몰라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