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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배출권 거래제 시행이 반년여 지난 시점에서 철강업계의 시름이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국내 철강사들의 경영환경은 수년 째 악화일로를 걷는 중이다. 조선·해양플랜트 등 전방산업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는 물론 중국발 공급과잉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이같은 상황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강행하는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철강사들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달성 중인데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사실상 생산량 자체를 감축하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기본적으로 탄소 배출 할당량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발전, 석유화학, 시멘트 등 타 업종 또한 비슷한 상황이라 탄소배출권 거래 자체가 미미한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배정받은 할당 자체도 크게 모자란 데 이를 시장에 내놓고 팔 기업이 어디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기업들은 눈물을 머금고 고액의 과징금을 물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는 자연스레 제품 가격에 반영될 것이고, 결국 기업 경쟁력 하락으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에 처했다는 지적이다. -
◇과소전망된 탄소배출 전망치…소송도 불사
22일 정부 및 관련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환경부로부터 2015~2017년까지 3년 간의 탄소배출권 할당량을 통보받은 기업은 총 525개에 달한다. 이들 기업은 할당받은 각 배출권 중 남는 부분은 주식처럼 한국거래소를 통해 시장에 팔 수 있고, 모자란 부분은 사들일 수도 있다. 문제는 배출권을 사려는 기업은 넘쳐도, 팔려는 회사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추가로 배출권을 구하지 못하면 끝내 과징금을 물어야만 한다. 배출권의 시장가격은 t당 1만원 수준이지만, 과징금의 경우 t당 3만원에 달해 기업들의 부담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석유화학, 시멘트 등 각 업계 50여개사는 정부와의 소송도 불사하고 있다. 탄소배출 허용 총량이 당초부터 잘못 산정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의 탄소배출 허용 총량이 지난 2009년 과소전망된 온실가스 배출전망치를 기준으로 설정 됐다고 설명한다. 2010년 이후로 수많은 설비 신증설이 이뤄졌지만 이 같은 상황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철강업계에서는 현대제철이 비철금속업계에서는 고려아연, 노벨리스코리아, 영풍 등 18개 업체가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현대제철은 지난 2013년 9월 연산 400만t 규모의 당진제철소 3고로 가동에 들어간 바 있다. 그러나 배출권 할당 과정에서 이를 인정받지 못해 예상되는 누적 부담액이 상당하자 불가피하게 소송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철금속업계도 기업존폐가 걸린 문제라는 각오로 적극 대응 중이다. 비철금속협회 소속 16개 업체가 할당받은 배출 총량은 올해부터 3년간 2000만t 수준. 이는 업계 매출을 유지할 수 있는 배출량보다 700만t이나 적다는 것이 이들 설명이다. 알루미늄 제조 및 재활용 업체 노벨리스코리아의 경우 최근 4000억원을 투자해 증설한 대규모 설비도 가동하기 버거운 형편이다. 이 회사는 향후 3년간 배출권 구매에만 50억원 이상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철강업계 최대 9500억 추가부담 예상
철강업계는 배출권 구매 부담으로 최대 9500억여원의 재무적 부담이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철강업계가 2015~2017년까지 할당 받은 탄소배출 총량은 3억600만t인데, 업계는 2100만t 정도가 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남는 배출권을 시장에서 구하지 못해 과징금을 지급해야 할 경우에다 전기요금이 크게 오를 수 있음을 감안하면 작게는 3166억원 크게는 9498억원까지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철강사들은 전통적으로 전력소비가 높은 기업들 중 하나인데, 탄소 배출이 많은 발전회사들이 배출권 매입비용을 전기요금에 전가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이에 따른 우려도 지속 확산되는 분위기다. -
한국철강협회는 배출권 할당부족으로 향후 3년간 최소 1400만t의 조강생산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1400만t은 국내 2위 철강사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의 3개 고로(각 연산 400만t 규모) 총 생산량 보다도 많은 양이다.
낮은 가격을 무기로 국내 기술 수준을 바짝 뒤쫓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에서도 지속 뒤처질 것이라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세계 최고 에너지 효율을 달성해 추가적 (탄소배출) 감축 여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해외 철강사와 공정 경쟁을 저해하는 우리 만의 강력한 온실가스 규제로 중국산과의 경쟁열위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탄소배출권 거래 자체가 극히 부진한 가운데, 시장가격이 1만원대로 너무 높게 형성되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경제계 부담을 고려해 시장안정화 기준 가격을 2013년 이후 EU 배출권 평균 가격인 t당 6000원 수준으로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