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이런 쌩뚱맞은 권고안이 나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둘러싼 '직업병 갈등'을 풀겠다고 나선 조정위원회가 최근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권고안을 발표한 가운데, 이 권고안 내용 중 상당 부분이 현실과 전혀 맞지 않아 오히려 논란만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창종 광장노무법인 대표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재해보상에 대한 직접적 책임을 다한 기업에게 근거도 없이 1000억을 내놓으라는 권고안은 어불성설"이라며 "현행 법 체제를 정비하는 것만으로도 문제 해결이 가능한데, 법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이 납득하기 어려운 얘기만 써놨다"고 비판했다.
공인노무사로 활동하고 있는 현창종 대표는 현재 국민권익위원회와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전문 상담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조정위가 지난 23일 발표한 이번 권고안의 핵심은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기부해 공익재단 설립한 뒤, 공익재단이 임명하는 옴부즈맨들로부터 내부 점검을 정기적으로 받으라는 것이다. 공익재단 구성은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7개 단체가 참여한다.
현창종 대표는 먼저 이번 권고안에 포함된 '1000억원에 대한 산출근거가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삼성이 부담해야 할 산업재해 보상금은 한 사람당 2억원 안팎이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은 산재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근거를 제시한다.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보상이 제때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담보 역할을 하는 것이 산재보험 제도다. 삼성은 이 법에 따른 보상 의무를 법적으로는 다 한 상태다.
근로자가 산재를 인정받게 되면 민사상 잘잘못을 다시 한 번 따질 수 있다.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다. 만약 사법부가 근로자 손을 들어주게 되면 회사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이미 납부한 보상액을 뺀 나머지 금액만 근로자가에게 지급하면 된다. 보상액이 중복 지급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다.
이처럼 민사상 책임까지 모두 진다고 해도 회사가 근로자에게 지불하는 금액은 2억원 안팎이라는 게 현창종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근로자가 산재 사고로 중증장애를 앓거나 사망해 유족 보상금을 지급하더라도 3억원엔 못 미친다. 이 같은 근로자가 50여명이라고 가정해도 100억원을 넘기 어렵다"면서 "결국 권고안은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삼성에게 1000억원을 보상하라는 의미인데 지나치게 과도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선례로 남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현창종 대표는 '산업재해 인정 범위를 넓히면 직업병 갈등을 풀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산재사고는 보상금액 크기로 다투는 경우가 무척 드물다. 대부분은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노동관청과 대립각을 세운다"면서 "반도체에 한해 산재 인정 폭을 확장한다면 갈등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제언했다.
반도체 업종에 대한 산재 인정 범위를 키우게 되면 자연스럽게 산재 사례도 늘어나게 된다. 이와 비례해 보상금 명목으로 지급되는 비용은 물론 근로자 한 명이 받는 수령액도 올라간다. 보험재정이 커져야 하는 셈이다. 반도체 업종 전체 산재보험 요율을 상승시키면 이 부분을 메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 문제를 한솥밥 먹는 같은 업종이 함께 부담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기업이 합심해 스스로 안전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셈이다.
산재보험 요율은 산업별로 다르게 해마다 책정된다. 고용노동부는 보험 수지율에 따라 업종별 요율을 계산한다. 사업주로부터 걷어들인 금액과 근로자에게 지급한 지출 규모를 비교해 요율을 결정한다.
현창종 대표는 조정위 권고안에 담긴 공익법인 설립 조항 역시 여러 부작용을 안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삼성이 이번에 공익법인 설립이라는 선례를 남길 경우 제2, 제3의 공익법인이 탄생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현행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기업을 옥죄는 민간 감시자만 활개 치게 만드는 꼴"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공익법인이 추천하는 민간 전문가들이 반도체 공장을 점검하도록 규정한 조항에 대해서는 "산업보건법이 존재하는데 굳이 민간에 같은 일을 맡겨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필요가 전혀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미 고용노동부가 산업보건법에 따라 정기적으로 기업을 점검 및 감독하고 있기 때문에 권한이 없는 민간 단체가 나서 똑같이, 중복으로 기업 내부를 들여다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현창종 대표는 "공익법인 설립은 사실상 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삼성을 공격하겠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면서 "산업보건법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법을 강화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번 직업병 갈등은 법 테두리에서 얼마든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면서 "근로기준법과 민사상 책임을 무리하게 뛰어넘는 요구를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순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