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 "현실과 동떨어져 다툼 소지 많고, 법 체제 심각한 손상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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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데일리경제 최종희 기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둘러싼 '직업병 갈등'을 풀겠다고 나선 조정위원회가 최근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권고안을 발표한 가운데, 이 권고안 내용 중 상당 부분이 현실과 동떨어져 되레 논란만 부추기고 있다.
특히 일부 항목의 경우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근로자 편만 드는 등 부실하게 만들어졌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29일 노동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조정위가 지난 23일 발표한 권고안의 핵심은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기부해 공익재단 설립한 뒤, 공익재단이 임명하는 옴부즈맨들로부터 내부 점검을 정기적으로 받으라는 것이다. 공익재단 구성은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7개 단체가 참여한다.
하지만 이번 권고안은 곳곳에서 허점을 노출했다.
권고안은 직업병으로 인정되는 범위를 규정하면서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볼 만한 개연성 또는 의심이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범주에 한해 직업병으로 간주,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게제했다. 그런데 여기서 '의심'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모호해 모든 질병을 보상해준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서울 시내 한 중견 변호사는 "문제의 문장을 법률가 입장에서 풀이해보면 의심이 있다는 주장만 해도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면서 "이렇게 되면 지나치게 근로자에게만 유리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문맥 자체도 법률가가 만들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며 "법적 잣대에 따른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이 아예 없는데다 말 자체도 논리적으로 상당한 모순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만약 권고안이 요구한 대로 업무관련성과 무관하게 보상이 이뤄진다면 법 체제는 심각한 손상을 입을 전망이다.
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제재와, 그 연장선에서 민사상 책임을 지게 된다. 이때 현행 법에서 정한 업무관련성 여부가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나 두 가지 법적 조치를 모두 마무리한 기업에게 또 다시 업무관련성 없는 질병까지 책임지라고 한다면 법이 존재하는 이유가 흔들릴 수 있다.
권고안은 또 직업병 종류를 언급하는 대목에서도 이렇다 할 결론 없이 얼버무렸다.
권고안에 따르면 직업병에 해당하는 질환은 백혈병을 비롯해 림프종과 유방암, 뇌종양, 난소암 등 12가지다.
하지만 이 내용만 봐서는 열거된 질환 12가지만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직업병을 나열해둔 예시이기 때문에 다른 질환에 걸려도 보상금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해당 규정이 예시의 목적이라면 12가지라는 표현을 빼는 게 맞다. 반대로 질환을 열거 한 경우라면 추가적인 질환이 더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의존명사 '등'을 삭제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