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대표·최경환 부총리 등도 고인 마지막 가는길 추모

범(汎)삼성가 모두가 모였지만, 故 이맹희 CJ 명예회장의 진짜 마지막 가는 길에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재계 안팎에서 '화해'라는 단어가 오르내리던 이 명예회장의 장례 7일간 동안, 사실 그룹 등 내부에서는 화해보다는 '화합'의 분위기가 강했다. 우려의 시각과는 다르게 온 가족이 그를 찾았기 때문이다.

20일 7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서 이 명예회장의 발인은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엄수됐다. 

발인식에는 이 명예회장의 동생이자 상주인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와 이 회장의 자녀 이경후·이선호 씨 등이 자리했다.

7시 30분경 고인을 운구하는 차량은 평소 불교 신자였던 이 명예회장의 마지막길을 네 명의 스님이 치는 목탁과 요령, 염불 외는 소리와 함께 인도됐다.

정각 발인을 마친 이 명예회장의 운구 차량은 서울시 중구 필동에 위치한 CJ인재원에 8시 정각에 도착했다. 

고인의 장남인 이 회장은 서울대병원과 장례식장 외부로 이동이 불가할뿐더러 감염 등 건강상 이유로 참석이 불가하면서, 영정은 이 회장의 손녀사위인 정종환 씨가 들게 됐다. 차남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의 아들인 이호준 씨는 위패를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CJ측은 "영결식은 직계가족들과 범삼성가 일가친척들과 추모를 위해 참석해주신 외빈들이 모이신 가운데 오전 8시에 시작되어 약 50분간 예정된 식순에 따라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 故 이맹희 CJ 명예회장 장례식부터 영결식까지…
이재용·이부진·이서현 등 범삼성가 한 자리에 

과거 상속분쟁 문제로 범삼성가 내부 관계가 틀어진 것 아니냐는 일각의 해석이 무색하게 이 명예회장의 장례식동안 CJ-삼성가의 행보는 불편해보이지 않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홍라희 여사와 이재용 부회장이 법원에 이재현 회장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한 일만 보더라도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장례식장이 마련된 지난 17일부터 이 명예회장을 애도하는 범삼성가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이 명예회장의 동생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과 그의 장남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또한 이명희 회장의 배우자인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 그의 딸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 빈소를 찾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이건희 삼성 회장을 대신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늦은 밤 이 명예회장을 애도했다.

이 명예회장의 큰누나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새한그룹 이영자 회장, 이재관 부회장과 더불어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과 홍라영 삼성미술관 부관장 등도 조문했다.

특히 이부진·이서현 사장은 지난 18일 빈소를 찾은 데 이어 19일 8시경 이 명예회장을 다시 방문, 3시간이 넘도록 유가족을 위로한 뒤 자리를 떠났다. 이서현 사장은 남편인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과 함께 1시간동안 빈소에 머물렀다.

이에 일각에서는 고인의 장지를 여주로 결정한 것에 대해 삼성 측이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묻힌 경기 용인 에버랜드 내 삼성가 선영으로 옮길 것을 권유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CJ 측은 "장지는 여주"라며 일축했다.

이부진·이서현 사장은 빈소를 두 번 방문한데 이어 영결식도 함께했다. 

이튿날 진행된 발인에는 함께하지 못했으나, 이재용 부회장과 두 사장은 7시 50분께 영결식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가 일가친척 외에도 고인의 영결식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 정대철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손병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임태희 전 대통령실 실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이 참석하며 이 명예회장의 마지막을 추모했다.


  • 다음은 CJ그룹 이채욱 대표이사의 조사 전문이다.


    <弔辭>


    존경하는 이맹희 명예회장님, 

    지금 이 자리에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과 당신을 존경하는 임직원들, 그리고 당신을 추도(追悼)하는 수많은 벗들이 명예회장님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뵙기 위해 모였습니다.

    비록 몸은 가까이 하지 못했어도 항상 마음만은 우리와 함께 하셨던 명예회장님을 떠나 보내야 하는 우리의 마음은 한없이 슬프고 비통하기만 합니다. 

    오늘 우리는 당신을 보내 드리기 전 당신께서 남기신 크고 뚜렷한 발자취를 되돌아 보며 함께 했던 추억을 가슴 깊이 새기려 합니다. 

    명예회장님,
    명예회장님께서는 가문의 장자로 태어나, 부친의 곁에서 회사를 키우고 사업보국의 기틀을 세우셨습니다. 

    일에 대한 뜨거운 열정, 꿈을 이루기 위한 끝없는 도전으로 치열한 삶을 사셨습니다. 

    부단한 실험과 헌신적인 연구로 지금의 제일제당을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식품기업의 반열에 오르게 한 토대를 쌓으셨습니다.   

    당신의 열정, 당신의 꿈, 당신의 도전은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던 이 땅의 당면문제를 해결하고 지금의 경제강국 대한민국이 있게 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또한 선대회장님을 도와 식품, 전자 등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다양한 사업의 기반을 닦으셨으며,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특별한 애정으로 국가 문화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기셨습니다. 

    CJ 그룹은 명예회장님의 이러한 모습을 본받아 事業報國을 경영철학의 근간으로 삼고 흔들림 없이 정진(精進)할 수 있었습니다. 

    명예회장님,
    명예회장님께서는 각종 궂은 일을 자처하시며 열정적으로 일을 사랑하셨지만 한 순간 그 모든 공적과 영화를 내려 놓으시고, 가족과 회사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그렇게 고독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수많은 억측과 오해에도 개의치 않고 의연함을 잃지 않는 기개와 담담한 모습으로 오히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힘과 교훈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명예회장님께서 이루시지 못한 꿈과 열정을 아드님이신 이재현 회장과 함께 이루어 나가겠습니다. 

    우리 CJ 그룹은 꿈과 열정을 실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초일류 문화기업이 되고자 합니다. 

    부디 하늘에서 저희를 保佑(보우)하시고,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고 이재현 회장과 우리가 그 과업을 이루어내는 날 부디 당신의 그 환한 웃음을 보여주십시오.

    사랑하는 명예회장님,
    홀로 견뎌야 했던 외로운 시간들, 남아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 그리고 그룹의 미래에 대한 염려, 이제 그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끝으로 저희는 당신의 여정이 시작되었던 이 곳 필동 인재원에서 생전에 들려주신 당신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자 합니다. 

    생전 당신의 저서에 소개된 말씀입니다. 

    "우리는 힘들어도 한번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무언가 해내야 하고, 꼭 해낼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아무도 나의 일을, 나의 길을 대신할 수 없었다"

    삼가 故 이맹희 명예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편안히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