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승기] 쌍용자동차는 수십년 간 'SUV 명가'로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왔다. '한국인은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담은 코란도로 시작한 명성은 고급형 SUV의 자존심을 지킨 무쏘와 렉스턴으로 이어졌고, 이 계보는 액티언과 카이런, 로디우스로 그대로 전해졌다. 날렵한 디자인과 강력한 힘, 좀처럼 고장나지 않는 튼튼함. 쌍용 SUV의 특징이다.
그러다보니 쌍용차에는 자연히 '남성적인' 이미지가 굳혀졌다. SUV 매니아들의 마음을 잡아끌 수 있다는 강력한 장점을 가졌지만, 여성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는 다소 어렵다는 한계도 함께 있었다.
이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놓은 쌍용의 야심작이 '티볼리'다. 기존 쌍용 SUV의 장점은 그대로 품고 있지만, 다가가기 결코 어렵지 않은 차. 사회초년생이나 여성 운전자들이 첫 차로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는 SUV. 이런 매력을 가진 티볼리는 가솔린 모델을 먼저 선보인 후, 디젤 모델도 출시됐다. 이 디젤 모델을 타고 서울 흑석동에서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까지 왕복 시승했다.
사진으로, TV 화면으로, 혹은 실물이라도 멀리서 바라본 티볼리는 "저게 SUV야, 승용차야?"라고 갸우뚱거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SUV 치고는 앙증맞은 디자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보니 비로소 SUV라는 점이 실감났다. 차체는 높고, 시선은 탁 트였다.
시동을 걸기 전에 운전석을 살펴봤다. 왼쪽 레버 끝의 버튼을 누르니 비상등이 세 번 깜빡이더니 꺼진다. 운전을 하다보면 뒷차에 미안, 감사, 경고 등의 메시지를 보내야 할 경우가 많다. 이 때 참 유용하게 쓰일 듯하다. '남성스러운' 줄만 알았던 쌍용 SUV가 지닌 의외의 세심한 매력이다. 라이트·와이퍼 등의 작동 방식도 레버 자체를 돌리는 방식에서 레버에 설치된 스위치를 돌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다만, 손이 큰 남성 운전자에게는 이 방식이 오히려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쉽다.
시동을 걸고 중앙대 정문에서 후문으로 오르는 고갯길로 차를 몰았다. 보통의 승용차는 다소 버거워하는 길이다. 대형버스들도 한여름에 에어컨을 꺼야 겨우 올라가는 길을 티볼리는 거침없이 잘 올라간다. 놀라운 건 소음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RPM 게이지는 1500~2000rpm대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 주행에서 가장 빈번하게 활용되는 1500~2500rpm 구간에서 최대 토크를 발휘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쌍용차 측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차는 어느 새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다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옮겨서 계속 달린다. 차량 성능을 시험해보기 위해 속도를 시속 150km까지 높여보았다. 상당한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도 차 안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동승자와 대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을 정도다. RPM 역시 2000대 중반을 유지하고 있었다.
괴산IC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수안보로 넘어가기 위한 8km 가량의 고갯길을 넘었다. 고갯길은 오르는 것만큼이나 내려가는 것도 중요하다.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의 작동이 시원찮다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도 있는 일이다. 티볼리의 브레이크 응답성은 이 같은 우려를 지워버리기에 충분했다. "스마트 유압조정장치(HECU)로 전자제어브레이킹시스템을 구축해 최소 제동거리 41.7m, 젖은 도로에서 제동거리 44.1m로 제동 응답성이 좋아졌다"는 것이 쌍용차 측의 설명이다.
쌍용차 특유의 강인함을 품은, 하지만 앙증맞은 디자인과 곳곳에 스며든 세심함을 선보이는 '어렵지 않은 SUV' 티볼리. 이 티볼리의 디젤 모델은 강력함과 조용함을 한꺼번에 갖추었다. '어려울 것 같아서' SUV 구입을 망설이던 사회초년생·여성운전자의 마음을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