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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연봉제 도입 문제가 금융권 불완전판매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성과연봉제로 인해 실적 위주의 영업평가 방식이 강화되면서 금융소비자를 위한 영업활동보다는 직원 본인의 목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금융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노조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한 달 동안 판매된 ISA 계좌 유치 결과를 성과주의 폐해로 지목했다.
◆1만원 이하 깡통계좌 양산한 ISA
23일 업계에 따르면 은행권에서 개설된 ISA는 출시 후 지금까지 136만2800여개 계좌가 개설됐다.
이중 74.3%에 해당하는 101만3600여개 계좌의 가입 금액이 1만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같은 기간 증권사에서 개설된 ISA는 14만2800여개로 은행보다 1/10 수준이지만 1만원 이하 계좌는 5만2000여개에 불과했다.
결국 같은 유형의 상품을 팔면서 은행과 증권사가 극명하게 나뉜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노조는 실적 위주의 경영방식이 결국 깡통계좌를 양산했다고 주장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ISA를 안정적인 고수익을 보장하는 금융상품인 것처럼 포장하고 은행 경영진은 직원들에게 할당량을 배정하고 실적경쟁을 부추긴 결과”라며 “이에 앞서 금융당국과 은행연합회에 개인별 목표부여 금지, KPI 반영 및 별도 캠페인 금지 등 ISA 과당경쟁을 진정시켜야 된다고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고 말했다.
은행원들도 불만이 쌓여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원은 “실적 마감일이면 영업본부장, 지점장이 ISA뿐만 아니라 펀드, 카드 등 목표 할당량을 독촉한다”며 “영업 기반과 노하우가 부족한 신입 직원들은 결국 부모에게 손을 빌리며 실적을 채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선진 금융시장에선 오히려 성과주의 폐지 수순
미국과 영국 등 우리가 선진 금융시장이라고 칭하는 곳에선 실적만 추구하는 성과주의 문화를 실패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성과주의에 따른 폐해가 극심했다.
2000년 이후 불완전판매 등에 따른 벌금과 보상으로 총 385억 파운드(약 68조원)을 지출했다.
은행을 신뢰한다고 응답한 영국인도 7%에 불과할 정도로 은행에 대한 신뢰가 추락했다.
이에 따라 영국 금융청은 4대 은행과 성과급 규제를 합의했다. 또 EU 국가들은 2015년도부터 금융권 임직원에 대한 성과급 상한제와 성과급 회수제를 도입했다.
미국도 2009년부터 과도한 성과급을 제한하는 ‘성과보상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이 외에도 미국의 어도비, 마이크로소프트, 주니퍼 등이 직원 평가제도를 폐지했으며 지엠코리아는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고 호봉제로 돌아섰다.
일본의 경우 미쯔이, 후지쓰 등 세계 유수의 기업이 성과주의를 폐지했다.
맥킨지도 보수와 승진을 결정하는 성과관리 상대평가제에 대해 “시간만 잡아 먹고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동기를 부여하기보다는 동기 잃게 한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성과연봉제는 반쪽짜리
정부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이유는 과도한 급여수준의 평준화,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직원의 합당한 대우 등이 목적이다.
이를 성과에 반영해 인사와 급여로 보상해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밝힌 59개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 상황을 살펴보면 직급 간 성과연봉제 차등폭과 평가 등급에 해당되는 인원 비율만 있을 뿐 정확히 어떤 평가를 시행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또 성과연봉제를 시행하기 위해선 기본급 하향 조정이 불가피한 데 상당수는 기본급이 그대로 유지되고 각 종 수당만 성과급으로 변경되는 꼼수를 부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성과 평가에 대한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 단독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공공기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최근 국내 대기업도 성과연봉제를 개선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성과연봉제와는 확연히 다르다.
LG전자는 성과평가와 관련해 현행 S·A·B·C·D 등 5등급으로 이뤄지는 상대평가제에서 S, D등급은 상대평가제로 유지한 채 A, B, C 등급은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직원들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기준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한편 정부는 기한 내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는 기관에 대해 임원 성과급을 50% 삭감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밝혀 논란은 더욱 확대될 조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