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제품에 '마일드·라이트' 등 문구 표기 금지, 술은 제한 없어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 흡연보다 높아전문가 "술에 대한 국민 인식 개선 시급… 광고·판매시간 제한 등 정부 규제 필요"
  • 우리가 눈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적 자극은 어떠한 사물의 전체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디자인과 포장, 광고와 홍보 등을 통해 갖춰지는 하나의 이미지는 소비자들에게 제품 정보를 전달하는 일종의 보증서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잘못된 보증서는 소비자들에게 오해와 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다. 술과 담배를 중심으로 소비자들이 자칫 간과하기 쉬운 제품 표기와 관련된 맹점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 ▲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뉴데일리경제DB
    ▲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뉴데일리경제DB


    "순해요, 부드러워요"

    주류에는 가능하지만 담배 제품에는 절대로 써서는 안되는 대표적 표현이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담배의 경우 '건강에 덜 해롭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제품명에 이같은 단어들을 쓰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지만 술에는 별다른 규제가 없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담배와 주류 제품은 모두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 문구를 표시하고 있다.

    담뱃갑에는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 일단 흡연하게 되면 끊기가 매우 어렵습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표시됐다.

    주류제품엔 술은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특히 청소년의 정신과 몸을 해칩니다',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특히 임신 중의 음주는 기형아 출생률을 높입니다',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키며, 운전이나 작업중 사고 발생률을 높입니다' 등 3가지 문구 중 하나를 선택해 술병 라벨에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제품을 대표하는 제품명 표시 기준은 각기 다른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월 22일부터 담뱃값 포장지에 '라이트(light)', '마일드(mild)', '저타르(low)', 순(純)' 등의 수식어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을 기호나 도형, 그림 등으로 표시하는 문구나 용어, 상표 등도 쓸 수 없다. 소비자에게 '덜 해롭다', '순하다' 등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마일드세븐'은 '메비우스'로, '던힐 라이트'는 '던힐 6mg'로 이름을 바꿨다. '말보로 골드(전 말보로 라이트)', 에쎄 프라임(옛 에쎄 라이트), 에쎄 수(전 에쎄 순), 타임미드(옛 타임 라이트), 팔리아먼트 아쿠아(전 팔리아멘트 라이트) 등도 모두 새로운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보헴시가 쿠바나 6mg(옛 보헴시가 모히또)'와 '레종 프레소(옛 레종카페)' 또한 제품 명에 음식과 음료, 향 등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이름을 바꿔야했다.

    담배 업계 관계자는 "수십년 간 사용해 온 제품명을 바꾼다는 것은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도 있어 상당히 큰 부담이었다"면서 "이름을 바꾼 시기와 담배가격이 인상된 시기가 맞물려 제품명 변경이 실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국내 판매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 ▲ 메비우스(옛 마일드세븐). ⓒJTI코리아
    ▲ 메비우스(옛 마일드세븐). ⓒJTI코리아


    반면 주류 제품은 '마일드'는 물론 '순하다, 부드럽다' 등의 표현을 제한없이 쓸 수 있다.

    지난해부터 저도 과실주가 주류업계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순하리', '순하리 소다톡', '이슬톡톡', '부라더소다', '트로피칼이 톡소다'와 같이 제품명만으로는 주류임을 인지할 수 없는 제품들이 잇따라 출시됐다. 

    '클라우드 마일드', '블랙조커 마일드', '주피터 마일드 블루', '밀러 맥스라이트', '카스 라이트' 등 '마일드', '라이트'와 같은 문구가 제품명에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품 등의 표시 기준에 따라 주류 제품 또한 일반 식품과 똑같은 기준이 동일하게 적용된다"면서 "'마일드' 같은 경우에는 '부드럽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를 규제할 명확한 기준이 없고 '라이트'를 제품명에 쓰기 위해서는 제품 100ml당 열량이 30kl 이하를 충족시키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주류 제품명을 정할 때 별다른 규제는 없으며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관할 세무서에 신고하는 것 외에 별도의 신고 절차는 없다"면서 "제품명에 이같은 단어를 쓰는 것은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 특별히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담배 업계의 한 관계자는 "'라이트', '마일드' 등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정부의 의견에는 동의한다"면서 "오해를 살 수 있는 똑같은 단어인데 왜 담배에는 쓰면 안되고 주류 제품에는 써도 되는지 그 기준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단 표기뿐만 아니라 술은 다양한 홍보나 마케팅도 할 수 있고 예쁘고 귀여운 제품 디자인, 톱스타를 기용한 TV광고도 가능하지만 담배는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담배보다 술이 야기하는 사회적 비용이 큰 것으로 아는데 술에는 너무 관대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올 초 흡연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비용을 추산한 결과 7조1000억원, 음주는 이보다 많은 9조4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술이나 담배로 인해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발생하는 의료비와 조기사망, 생산성 손실액 등을 모두 합산한 금액이다.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2조원 가까이 크지만 대부분의 규제는 술보다 담배에 집중돼 있는 것이 국내 실정이다. 이를 주관하는 기관 또한 다르다.

    현재 담배사업법과 관련한 사항은 기획재정부에서, 주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담당하고 있다. 담배와 달리 주류 제품은 '식품 등의 표시 기준'의 적용을 받지만 주류만을 따로 규제하는 법안은 없고 전체 식품에 대한 기준이 동일하게 적용 돼 사실상 주류 제품명을 정하는데 별다른 제한이나 기준이 없다.



  • ▲ (왼쪽부터)클라우드 마일드, 카스 라이트, 이슬톡톡. ⓒ뉴데일리경제DB
    ▲ (왼쪽부터)클라우드 마일드, 카스 라이트, 이슬톡톡. ⓒ뉴데일리경제DB


    이성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담배는 '백해무익하다'는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술은 '하루에 한 잔은 건강에 좋다'는 말이 정설처럼 돌만큼 국민 인식이 술에 관대한 편이라 정부가 먼저 나서서 엄격한 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서 "담배는 국제법인 '담배기본규제협약'이 있는만큼 정부도 부담을 안고 있지만 술은 국제법도 없을뿐더러 음주의 유해성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도 담배에 비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술과 담배를 똑같은 잣대로 보고 규제하기에는 아직까지 국민의 정서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주류에 대한 광고 규제나 판매 시간·장소 제한을 둬 술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규제 마련에 앞서 선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