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로… 시행 첫날 28일 손님 반토막 난 곳도 있어김영란법 대비해 3만원 이하 메뉴 선봬… "유지 어려울 것" 지적도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김영란법'이 지난 28일부터 시행됐다.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과 배우자 등 400만명은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이 넘는 금품을 받는 것이 이제 법적으로 금지됐다. 특히 금액 상한선이 가장 적고 미팅을 목적으로 빈번하게 이뤄지는 식사는 김영란법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김영란법 후폭풍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외식업계를 통해 3만원으로 극명하게 갈린 온도차를 직접 느껴봤다. <편집자주>

  • ▲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난 28일 저녁, 광화문 일대 고급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정상윤 기자
    ▲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난 28일 저녁, 광화문 일대 고급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정상윤 기자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난 28일 저녁, 광화문 일대 고급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바로 전날인 27일까지만 해도 꽉 들어차있던 좌석은 28일 이른 저녁 시간에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식당 관계자들은 모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볼멘 소리를 냈다.

    김영란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가을비가 추적 추적 내리던 27일 저녁, 기자가 찾은 광화문 고급 식당가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손님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저녁 코스 요리가 5만~16만원대인 광화문의 한 고급 중식당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예약 현황이 크게 변한게 없어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룸이 아닌 홀에서 식사할 때만 이용 가능한 3만원 짜리 코스 메뉴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기업인과 언론인,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진 한 고급 일식당도 김영란법 시행일부터 홀에서만 이용할 수 있는 3만원짜리 코스 메뉴를 새롭게 만들었다. 간단한 정식으로 구성됐으며 룸 예약시에는 주문이 불가능하다. 근처의 또 다른 고급 일식당도 김영란법에 대비해 2만8000원 코스 메뉴를 도입했다.

  • ▲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난 28일 저녁, 광화문 일대 고급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정상윤 기자
    ▲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난 28일 저녁, 광화문 일대 고급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정상윤 기자


    해초바다요리 전문점인 해우리는 1인 기준 2만9000원인 저녁 특정식 '란이한상'을 판매하기로 했다. 여의도 등 10개 직영매장에서 점별로 하루 5팀에게 한정 판매한다.

    국회의원들이 자주 찾는 청와대 인근 홍어 삼합 음식점도 2만5000원, 3만원 짜리 새로운 메뉴를 내놨고 고급 스테이크 전문점은 점심에 한해 2만9000원 짜리 저렴한 스테이크를 선보였다.

    종로구 통인동에 있는 유명 조개요리 전문점은 점심 코스 요리 4만원, 저녁 코스 요리 6만원에서 내용물을 줄이고 가격을 절반으로 낮춘 3만원으로 조정했다. 소주도 한병에 7000원에서 5000원으로 인하했다.

    김영란법이 정한 음식 가격 상한선인 3만원에 맞추기 위해 양이나 비싼 재료를 줄이고 가격을 내린 나름의 대응책인 셈이다. 그러나 술과 음료는 포함되지 않은 가격이며 오로지 식사만 가능하다.

    비싼 원재료비 때문에 가격 조정을 포기한 음식점도 있다.

    시청에 있는 한 한우구이 전문점은 고기 단가 자체가 비싸기 때문에 식사용 불고기를 제외하고는 3만원 이하 메뉴를 선보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등심 150g에 3만7000원, 안심 150g에 4만1000원으로 김영란법 위반 가격대다.

    언론인과 법조인, 금융권 관계자들이 많이 찾는 마포의 한 간장게장 전문점도 원재료비 때문에 가격 조정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1인분에 3만8000원 단일 메뉴를 판매중이다.

    한우구이 전문점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공무원이나 기업인, 언론인 등만 적용받는 것으로 알고 있어 크게 상관없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고기의 질이 가격과 직결되는데 김영란법 때문에 고기의 질을 낮출수는 없다"고 밝혔다.

    간장게장 전문점 측은 "우리 식당 게장은 일 년에 한 번씩 게를 수급하는데 원자재 가격이 워낙 높아 가격 조정이 어렵다"며 "김영란법 이후에도 예약이 문전성시라 딱히 메뉴변경이나 가격변경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7일까지만 해도 기자가 방문한 대부분의 식당들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 예약 현황이 눈에 띄게 크게 변한게 없다"면서 "김영란법이 생겼다고 해서 메뉴나 가격을 확 바꿀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한 일식점 직원은 "법인카드로 결제하시는 분들 중 오늘 미리 결제를 해놓으시는 분들도 많다"면서 은근슬쩍 손님에게 선결제를 권유하기도 했다.

  • ▲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기 전날인 지난 27일과 시행 첫날인 28일 저녁, 광화문 인근의 한 한우구이 전문점의 대비되는 저녁 풍경. ⓒ김수경 기자
    ▲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기 전날인 지난 27일과 시행 첫날인 28일 저녁, 광화문 인근의 한 한우구이 전문점의 대비되는 저녁 풍경. ⓒ김수경 기자

    그러나 하루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저녁. 다시 찾은 광화문 일대 식당가에 불어닥친 후폭풍은 예상했던 것보다 거셌다.

    직격탄을 맞은 것은 3만원 이하 메뉴를 따로 마련하지 않은 식당들이었다. 손님이 뚝 줄어든 것은 물론 방문한 손님들의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매입액)도 현저히 쪼그라들었다.

    시청에 있는 한우구이 전문점 측은 "평소 대비 방문 고객이 20% 넘게 줄었다"면서 "객단가도 평소엔 1인당 5만~6만원이 평균이었는데 오늘은 고기 추가도 없었고 1인당 3만원에 딱 맞춰서 먹고 술을 마신 고객도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까지만 해도 크게 신경 안썼는데 당장 매출이 확 줄어드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면서 "이렇게까지 손님이 줄어들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당황해했다.


    고급 스테이크 전문점은 "점심때는 고객 수가 평소와 비슷했고 새롭게 선보인 2만9000원 메뉴는 방문 고객 60~70%가 고를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면서 "저녁에는 평소 대비 고객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말했다.


     

  • ▲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난 28일 저녁, 광화문 일대 고급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김수경 기자
    ▲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난 28일 저녁, 광화문 일대 고급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김수경 기자

    홍어 삼합 음식점 관계자는 "한 달 전만 해도 당일 예약은 엄두도 못낼 만큼 바빴지만 김영란법 시행 첫날부터 예약이 반절 이상 줄어든 것 같다"며 "3만원 짜리 저녁 메뉴를 내놓기는 했는데 문어, 홍어 등 국내산 재료에 기본 반찬, 인건비까지 생각하면 계속 가격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전날 방문했던 광화문 내 고급 중식당과 일식당 측은 모두 "회사 방침상 고객 현황에 대해 자세히 밝힐 수 없다"면서 답변을 피했다. 이 식당들은 대부분 룸으로 이뤄져 있어 내부 상황을 확인하기가 어려웠지만 홀에는 절반 이상이 빈 자리로 남아있어 김영란법 후폭풍을 체감할 수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광화문과 시청, 여의도 등 서울 시내 일대 고급 식당가 대부분 1인당 메뉴 가격이 최저 5만원부터 시작한다"면서 "이들 식당은 식재료뿐만 아니라 비싼 건물 임대료, 인건비, 그 외 서비스 등의 비용을 모두 감당해야하기 때문에 3만원 이하 메뉴를 급하게 내놨다 하더라도 이를 오래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장 첫날부터 매출 타격을 입은 식당들이 많아 우려스럽다"면서도 "다만 시행 초기인만큼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할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