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권 요직 거친 인사들 선임·재신임 이어져삼성물산 'DJ정권'·GS건설 'MB정부' 출신 다수
  • ▲ 지난 24일 열린 삼성물산 주주총회 현장. ⓒ성재용 기자
    ▲ 지난 24일 열린 삼성물산 주주총회 현장. ⓒ성재용 기자


    대형건설사들이 올해 선택한 사외이사 상당수가 관료출신 전문직 종사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경기 침체 등으로 건설업계 경영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회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유력인사'나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 선임에 나선 것이다.

    특히나 조기대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정치적 변화도 엿보인다. 사외이사로 영입되는 일부 고위관료 출신 인물들 면면이 그러하다. 내실과 안정화를 동시에 꾀하려는 건설사들 복안으로 풀이된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주주총회를 진행한 대우건설은 윤광림 에이치산업 대표이사·최규윤 전 금융감독원 국장·이혁 리앤리 대표변호사 3인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이로써 지난해 8월 선임된 우주하 전 코스콤 대표를 포함해 사외이사 75%가 관료출신으로 채워졌다. 우주하 이사 임기는 2019년 8월23일까지다.

    신규선임된 사외이사 중 유일하게 관료출신이 아닌 윤광림 대표는 1984년 신한은행 입사, 2002년 부행장이 됐다. 이후 신한은행 계열인 제주은행장을 거쳐 미래2저축은행장을 역임했다. 서울송도병원 고문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최규운 전 국장은 금감원 공시감독국 국장을 지낸 뒤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본부 본부장 및 파생상품서비스 본부장 등을 역임한 관료출신이다. 2013년부터는 신한금융투자 상근 감사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법조계 출신인 이혁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20기로, 창원지검 진주지청장과 법무부 감찰담당관, 수원지검·인천지검 제1차장검사,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등을 지내고 2015년 2월 퇴임했다. 현재 메리츠금융지주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대우건설은 또 산업은행 측에서 선임하는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에 송순선 대우건설 수석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이에 앞서 상장 대형사 가운데 가장 먼저 주총을 진행한 현대건설은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신현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서치호 건국대 건축공학부 교수를 재선임했다.

    신현윤 교수와 서치호 교수는 각각 법률과 건축 전문가로, 이사회 활동 중에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11년부터 현대건설 사외이사를 맡고 있어 이번 임기(3년)을 다 채울 경우 총 9년을 재직하게 된다.

    현대건설은 또 이사 수를 종전 '6명 이상'에서 상장사 표준 장관을 반영해 '3명 이상 9명 이하'로 수정했다.

    이어 '주총데이'로 불렸던 24일 주총을 진행한 삼성물산·대림산업·GS건설·현대산업개발 등도 이날 이사진을 신규선임하거나 재선임했다.

    삼성물산은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와 권재철 한국고용복지센터 이사장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장달중 명예교수는 현 정관에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겸 외교부 정책 자문위원을 지내고 있는 학계 원로다. 앞서 DJ정부에서 국방부 정책 자문위원을, 참여정부에서는 통일부 정책평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림산업 사외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권재철 이사장은 DJ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복지노동행정관을, 참여정부에서는 청와대 노동비서관을 거쳐 옛 노동부 한국고용정보원 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유력 차기 대권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호흡을 맞춰본 경험이 있는 셈이다. 권 이사장은 2011년 '대통령과 노동'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삼성물산 사외이사진은 최근 홍기택 전 KDB산업은행 회장 부인인 전성빈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가 빠지면서 5명으로 재편됐다.

    같은 날 대림산업은 이준용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해욱 대표이사 부회장과 김재율 석유화학부 사장을 이사로 재선임했다. 사외이사에는 금감원 분쟁조정실과 회계감독국, 법무실에서 경험이 있는 이충훈 법무법인 씨엠 대표변호사를 신규 선임했다.

    당초 대림산업은 MB정부에서 청와대 해외언론홍보 비서관, 제2부속실장 등을 지낸 조현진 국민대 교양대학 특임교수를 신규 선임할 예정이었으나, 조현진 특임교수는 지난 22일 일신상의 이유로 후보에서 사퇴했다. 조 특임교수는 친이계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GS건설은 주총에서 허창수 GS그룹 회장을 사내이사로, 허태수 GS홈쇼핑 대표이사를 기타 비상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사외이사와 관련된 안건 상정은 없었다. 현재 GS건설 사외이사는 김종은·진병화·주인기·권도엽 등으로, 이 가운데 진병화 이사는 MB정부 당시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권도엽 이사도 MB정부에서 국토해양부 장관을 지낸 바 있다. 허명수 GS건설 부회장은 이번에도 등기임원 복귀가 이뤄지지 않았다.

    현대산업개발은 법조인과 회계·세무 전문가 비중이 높았던 사외이사진에 변화를 줬다. 김대철 경영관리부문 사장이 사내이사로 선임됐고, 최규연 자본시장연구원 고문을 신규 선임했다.

    최규연 고문은 MB정부 조달청장과 현 정권 상호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을 지냈다. 업계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이 공공사업에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또 참여정부 당시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용덕 초빙교수를 재선임했다. 김용덕 교수는 문재인 전 대표의 자문단인 '10년의 힘'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관료 출신 원로다.

    사외이사는 기업 경영진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경영진의 독단 경영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회계나 법무에 전분적인 조언을 할 수 있는 전문직종 관계자나 학계 인사가 주로 선임된다.

    기업들이 관료출신 사외이사를 선호하는 것은 그들의 전문성과 함께 어느 정도 '방패용'으로써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위 관료 출신일수록 대관 업무 등에 입김을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CEO스코어가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30대 그룹 계열사 중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175개사를 대상으로 관료 출신 선임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전체 사외이사 611명 가운데 관료 출신은 42.9%(262명)으로,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3분기 말에는 195개사 637명의 사외이사 중 관료 출신이 41.1%(262명)로 1.8%p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