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주주 코레일은 핫바지… 'SR 간섭말라' 지침까지 내려
  • ▲ 이승호 SR 사장 취임식.ⓒ연합뉴스
    ▲ 이승호 SR 사장 취임식.ⓒ연합뉴스

    ②개통 100일 만에 국피아(국토부+마피아) 낙하산처 된 SR

    최근 수서발 고속철(SRT)을 운영하는 ㈜에스알(SR)이 낙하산 논란에 휩싸이면서 SR이 국토교통부 산하의 주식회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결과적으로 국토부는 빈틈을 잘 공략했다. 신의 한 수는 민영화 논란을 의식해 SR을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자회사 형식으로 출범한 것이다. 최소한의 공공성 확보 등으로 명분을 쌓으면서 국토부가 SR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토대를 쌓았다.

    ◇명퇴 후 보름 만에 낙하산

    29일 SR에 따르면 이승호 대표이사가 이날로 취임한 지 보름을 넘겼다. 이 대표이사는 지난 14일 취임했다.

    이 대표이사는 국토부 관료 출신이다. 지난달 27일 교통물류실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대표이사는 내년이 정년이다. 명예퇴직한 셈이다.

    국토부는 인사적체가 심한 부처다. 이 대표이사의 명퇴 결정은 후배를 위한 선배의 용퇴일까.

    이 대표이사는 명퇴 후 16일 만에 SR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전에 국토부와 조율이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낙하산 논란이 일어난 배경이다.

    국토부 내부에서는 "(이 대표이사가) 국토부에서 할 만큼 다 해보고, 정년 앞둔 시점에 좋은 데로 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낙하산 논란에는 관심이 없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알아서 인사적체에 숨통을 터줬다는 견해다. 다른 고위 공직자에게 '때 되면 알아서 떠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졌다며 명퇴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는 눈치마저 보인다.

    이런 인식은 SR이 국토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듯한 착시효과 때문이다.

    SR은 국토부 산하기관이 아니다. 지분구조는 코레일 41%, 사학연금 31.5%, 중소기업은행 15%, 산업은행 12.5% 등이다. 최대 주주인 코레일의 자회사로 분류된다. 국토부 흔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 ▲ 국토부.ⓒ연합뉴스
    ▲ 국토부.ⓒ연합뉴스

    ◇코레일 허수아비 세워 실속은 국토부가

    속내를 들여다보면 SR은 국토부가 실질적으로 장악한 회사나 진배없다. 국토부 낙하산 인사에 최적화돼 있다는 견해다.

    우선 SR은 코레일이 최대 주주지만, 주식회사여서 공직자 재취업 심사 대상 기관에 포함되지 않았다.

    특히 SR 정관에는 대표이사 추천권을 코레일만 행사하도록 못 박고 있다. 정관을 바꾸지 않는 한 코레일이 최대주주가 아니어도 추천권을 독점하는 것이다.

    SRT 개통의 의미가 고속철 경쟁시대가 열렸다는 점인데 경쟁사가 상대 경쟁사의 사장을 추천하는 촌극이 연출되는 셈이다.

    문제는 코레일이 국토부 산하기관으로 관리·감독 기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국토부는 한 발 더 나가 코레일의 SR에 대한 간섭에 족쇄까지 채웠다.

    2014년 국토부가 코레일에 보낸 '수서고속철 회사에 대한 출자회사 관리지침' 문건에는 건전한 경쟁 관계 형성을 위해 코레일의 출자회사 관리지침을 SR에 대해선 적용하지 말라고 돼 있다. 자회사인 SR에 대해 지도·감독권을 행사하지 말라는 의미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코레일을 허수아비로 내세워 배후에서 국토부가 SR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구조"라며 "SR도 이를 알기에 같은 낙하산이면 코레일보다 힘 있는 국토부 고위직이 대표이사로 오기를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처지에선 철도 민영화 논란이 불거지자 SR을 코레일의 자회사 형식으로 출범한 게 묘수가 됐다.
    건설교통부 광역교통기획관, 국토부 교통물류실장 등 교통 관련 요직을 거친 이 대표이사가 낙하산 인사로 집중 조명을 받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는 견해다.

    이 대표이사는 2008년 9월부터 2011년 2월까지 국토해양부 철도정책관을 지냈다. 정부는 같은 해 수도권 고속선 민영화를 발표했다. 사실상 철도 민영화의 밑그림을 그렸던 당사자가 SR 개통 100일 즈음에 직접 낙하산 수혜를 본 것이다.

    ◇철도산업 불공정 경쟁 심화로 공공성 훼손 우려

    국토부와 코레일, SR의 불편한 삼각구도는 앞으로 철도산업이 경쟁과 양극화를 이유로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부는 2013년 6월 내놓은 철도산업발전방안을 통해 코레일을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여객, 화물, 차량, 유지보수 등 기능별로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지난달 발표한 제3차 철도산업발전 기본계획(2016~2020년)에서도 이런 원칙을 제시하며 코레일과 철도 운영에 변화를 예고했다.

    국토부는 먼저 화물운송 부문에 메스를 댈 것으로 보인다. 코레일은 산하에 코레일로지스㈜라는 물류기업을 두고 있다. 하지만 화물운송 주선업무만 볼 뿐 실질적인 화물운송은 여전히 코레일이 맡는다.

    국토부 구상은 코레일의 화물운송 업무를 떼어 새로 설립하는 자회사에 넘기는 것이다.

    전문 자회사 설립을 우려하는 시각은 시장경쟁을 이유로 수익성을 중시하다 보면 공공 서비스를 축소할 공산이 커지기 때문이다.

    SR과의 출혈경쟁과 함께 재정 당국이 경영 혁신을 이유로 조직 다이어트를 주문하자 코레일이 벽지노선 운행열차의 절반 축소 카드를 꺼내 든 게 좋은 예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민자사업으로 철도사업을 추진하다가도 적자가 예상되거나 수익성이 낮아 사업대상자가 사업을 포기하면 코레일에 운영을 맡기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적자가 발생하는 일반철도 노선에 대해선 뒷짐만 진 채 불공정한 경쟁을 강요하고 낙하산으로 혜택만 누리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