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주수요 5만가구 '육박'… 전세난 예고재산권 침해·임대차시장 침체 등 역효과 우려"합의 도출 안 돼… 무리한 도입 역풍 맞을 수"
  • ▲ 송파와 강남 지역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 ⓒ연합뉴스
    ▲ 송파와 강남 지역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 ⓒ연합뉴스


    새 정부의 부동산 공약 중 하나인 전월세상한제와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전세난민이 줄어들 수 있지만, 오히려 전셋값 급등을 부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내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유예조치 종료를 앞두고 서울 재건축·재개발이 활발한 상황이라 그 여파가 더 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서민주거안정 공약 중 하나인 전월세상한제는 재계약시 전월세 보증금 인상률을 일정 수준 이하로 묶어두는 제도다. 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은 현재 임대인(집주인)에게 있는 계약갱신 권리를 임차인(세입자)에게도 부여해 세입자가 원하면 기존 임대계약을 한 두 차례 추가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4월 말 기준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4억2439만원으로 2년 전에 비해 25.9%(8743만원) 치솟은 서울처럼 전월셋값 급등으로 전세난민이 늘고, 주거불안이 커지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재산권 침해 논란과 함께 전셋값을 단기 급등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전세계약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한 1989년 당시 전국 주택의 전셋값은 17%나 급등한 바 있다.

    임병준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과거 YS정부에서 전세임대차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면서 집주인들이 2년 치를 한꺼번에 올려받는 현상이 실제 발생했다"며 "경기가 나빠 안 올려도 될 상황인데도 '올릴 수 있을 때 올리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전월세상한제 등이 정책으로 실현될 경우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경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 지역 임대시장은 이미 올 하반기 단기적으로 급등, 전세난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114 집계 결과 올해 서울에서 사업승인 이후 관리처분을 받았거나 앞둔 재건축·재개발 단지는 단독주택 재건축 물량을 제외하고 모두 4만8921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통상 사업승인을 받고 관리처분인가 신청까지 6~8개월이 소요되고, 관리처분인가와 이주까지 다시 3~6개월가량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단지는 올 하반기 이후 순차적으로 이주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

    이 중 전체의 40%를 웃도는 2만462가구(41.8%)가 강남4구에 몰려있어 강남권과 인근 수도권 전세시장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당장 7월부터 6000가구에 육박하는 강동구 둔촌주공의 이주가 본격화된다. 지난 2일 이 아파트에 대한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지면서 거주자들은 인근 지역으로 전세를 알아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 아파트 이주 여파로 강동구 일대는 물론, 송파구와 경기 하남시·남양주시 등 인근 지역의 소형 아파트나 다세대·연립 등의 전셋값이 들썩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인근 A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집주인들은 인근 중형 아파트 전세를 얻을 수 있겠지만, 세입자들은 기존 전세금이 2억원 미만이어서 강동구 내에서 아파트 전세를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강동구 일대 연립·빌라나 하남·남양주 등 수도권 주택으로 움직이는 수요가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둔촌주공 이주가 본격화하기 전인데도 강동구 일대 일부 전셋값은 이미 강세로 돌아섰다. 부동산114 통계를 보면 강동구의 아파트 전셋값은 연초 '고덕 래미안 힐스테이트' 등 대단지 입주로 지난 3월까지 약세를 면치 못했으나, 4월 들어 0.21%로 상승 전환했다.

    인근 B공인중개소 대표는 "새 아파트 입주가 마무리되면서 인근 일반 아파트 전셋값까지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둔촌주공 이주수요가 본격적으로 가세하면 전셋값이 더 가파르게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강북권에서도 재개발 사업 등으로 이주가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강북권은 최근 아파트, 단독·다가구, 다세대·연립 등 전체 주택의 전셋값 상승 폭이 강남권보다 큰 상황이어서 앞으로 재개발 등 이주로 인해 전세시장이 더 불안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KB국민은행 시세 조사 결과 지난달 기준 강북권 14개구 아파트 전셋값은 2년 전에 비해 27.7% 오르면서 같은 기간 강남권 11개구 상승폭인 25.1%을 웃돌았다. 이 기간 연립주택 평균 전셋값도 강남에서 16.2% 오르는 동안 강북에서는 22.5% 뛰었다.

    강북권에서는 서대문구의 경우 사업승인과 관리처분 단계에 있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5440가구에 이르고 △동대문구 4552가구 △성북구 4151가구 △은평구 2920가구 △양천구 2064가구 △동작구 2003가구 등 이주 대기 물량이 많다.

    박환용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전월세상한제 등은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오히려 취약계층을 곤경에 빠뜨리는 정책이 될 수 있다"며 "특히 전세가율이 높은 강북권이나 빌라를 임대해 살고 있는 세입자들에게는 타격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공약 이행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여전히 임대인에 대한 혜택 등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은데다 기존 전월세 수요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임대차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월세상한제과 계약갱신청구권은 MB정부와 이전 정부 때에도 야당 주도로 도입이 추진됐으나, 정부와 여당의 반대에 부딪쳐 거듭 좌절됐다. 하지만 당론으로 도입을 추진 중인 더물어민주당을 비롯해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주요 야당들도 도입 필요성에 찬성 입장을 밝힌 만큼 오는 9월 열리는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