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5월 창립 이래 국내외 수많은 '건설신화'2011년 현대차그룹 편입… 수익성 위주 내실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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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5월25일 창립 70주년을 맞이하는 현대건설 계동사옥 전경. ⓒ 뉴데일리경제
1947년 5월25일 창립한 현대건설은 국내외서 다양한 '건설신화'를 남겼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일념 하나로 불모지나 진배없던 곳을 찾아 건설 족(足)을 새겼다.
일례로 현대건설은 1950년 6·25전쟁 후 폐허나 다름없는 길 위에 도로를 닦아 끊어진 다리를 연결하고 그곳에 건물을 세웠다.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던 경제개발 시기에는 '열사의 땅' 중동으로 건너가 오일달러를 벌어들였다.
현대건설이 70년 간 국내외서 이룬 실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66년 태국 고속도로 공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59개국·총 1227억 달러 규모 821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국내외 사업까지 모두 합치면 3600여개가 훌쩍 넘었다.
그런 현대건설에 제2의 길이 열렸다. 2011년 4월 현대차그룹 일원으로 인수 합병되면서다. 글로벌 경쟁력이 한층 강화된 현대건설은 2011년 연간수주액 100억 달러를 돌파,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또 2013년에는 해외수주 누적액 100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금자탑을 세웠으며, 2016년에는 국내 건설업계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 달성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대한민국 경제발전 기틀을 마련하다
현대건설은 1960년대 토목분야를 주축으로 전기·플랜트·건축 전 분야 시공능력을 고루 갖추며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기틀을 놓았다.
1961년 당시 경제기획원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 이듬해 시행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목표는 '자립적 성장과 공업화 기반조성'이었다. 2차 산업 비중을 최대한 끌어올려 국가산업 균형을 맞추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전력·석탄 등 에너지원을 비롯해 도로·교량·철도·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이 선행돼야 했다. 결국 건설수요 증대를 의미한 것이었다. 이는 획일화된 토목공사를 뛰어넘어 현대건설이 전력·플랜트·건축 등으로 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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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2대 토목공사로 꼽혔던 소양강 다목적댐 전경. ⓒ 현대건설
현대건설이 창립 후 1961년까지 8년여 동안 사업적 기틀을 다졌다면, 그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달렸다.
현대건설은 주력으로 삼았던 토목분야를 주축으로 전기·플랜트·건축 전 분야 시공능력을 고루 확충, 국내 1위 종합건설사로 입지를 굳혔다.
춘천댐·경부고속도로를 지은 현대건설은 1960년대 2대 토목공사로 꼽혔던 소양강 다목적댐 공사를 수주했다. 소양강댐은 규모 뿐 아니라 기술면에서도 우리나라 댐 건설의 한 획을 그었다.
토목·기계설치·건축 공사가 한데 어우러진 소양강댐을 7년 만에 준공한 현대건설은 이후 많은 댐 건설공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현대건설은 이외에도 진해 제4비료공장 건설을 위한 원자재 도입용 항만설치 공사를 수주,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대표 플랜트공사로 꼽히는 단양 시멘트공장과 한국비료 울산공장을 시공하기도 했다.
1966년 4월에 착공해 그해 9월 완공된 한국비료 울산공장은 연산 33만톤 생산량을 자랑하는 당대 세계 최고 규모였다. 단양 시멘트공장 역시 1957년 최초 구상에 들어간 현대건설 자체 시멘트 공장으로, 1964년 연산 3000톤 규모로 완공됐다.
◆'코리아 파워' 업계 최초 해외진출
현대건설은 1966년 업계 최초로 해외건설시장에 진출, 선진 시공기술을 습득하는 한편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진출 물꼬를 텄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내 건설시장 조차 기술비중이 높은 사업은 선진국 힘을 빌렸다. 국내 건설사 대부분이 글로벌 업체와 기술격차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국제입찰에 수반되는 절차를 원활하게 수행할 능력조차 부족했다는 게 업계 증언이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달랐다. 미군 공사를 통해 비교적 높은 수준의 기술을 쌓고 있었다. 여기에 해외공사에 대한 입찰과 계약·기자재조달·공사관리 전반에 걸쳐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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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번째 도전 끝에 수주한 첫 해외사업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현장 모습. ⓒ 현대건설
현대건설은 1965년 태국으로 눈을 돌려 방콕에 지점을 설치, 임직원을 파견해 활발한 수주활동을 펼쳤다. 첫 도전인 푸껫 교량공사에서는 무려 50% 이상 입찰가격차를 보이며 고배를 마셨지만 세 번 째 도전 끝에 총 공사비 522만 달러 규모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따냈다.
국내서 단 한 번도 고속도로 공사를 수행해 본 적 없는 현대건설이 서독·일본 등 내로라하는 29개 글로벌 건설사들을 제치고 경쟁서 승리한 것이다.
현대건설은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통해 금전으론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이익을 거뒀다. 현대건설이란 이름을 해외시장에 알리는 계기가 됐을 뿐 아니라 국내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수주할 수 있는 입지를 마련한 것.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이른바 '베트남 특수'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제1차 석유파동으로 국내경기는 극도로 침체됐다. 정부조차 중동에 건설인력을 보내서라도 오일달러를 벌어오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이 보다 한 발짝 더 빨랐다. 정부의 중동진출 정책이 수립되기 전인 1975년 1월 이란에 지점을 설치, 건설공사 공개입찰에 도전했다. 중동 첫 번째 공사는 이란 반다르압바스 동원훈련조선소 공사였다. 비록 작은 규모였지만 중동에 진출한 최초 공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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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최대 역작으로 불리는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전경. ⓒ 현대건설
이후 현대건설은 1976년 '20세기 최대 역작'이라고 불리는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 글로벌 건설시장에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주베일 산업항 공사에 들어간 모든 자재는 국내서 제작해 해상으로 운송했으며, 수심 30m 파도를 헤치며 500톤짜리 철조 구조물을 한계 오차 내로 설치해 발주처로부터 무한 신뢰를 얻었다.
2005년 완공한 16억 달러 규모 사우스파 4·5단계는 완공기준 국내 건설사 해외플랜트 수주사상 단일 규모로 최대였으며, 2011년 말 완공한 카타르 천연가스 액화정제시설(GTL)은 국내 건설사 최초 GTL 공사였다.
◆대한민국 경제성장에 한축을 이끌다
현대건설은 국가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주도하며 국내 고속도로 시대를 활짝 열었다. 현대건설이 수행한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는 당시 우리나라 건설사 중 유일한 고속도로 건설 경험이었다.
1960년대 후반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중심사업은 전국 도속도로 구축이었다. 현대건설이 주도한 경부고속도로는 당시 포화상태에 있던 경부선 철도 부담을 해소하는 동시에 수송능력을 획기적으로 증대한 사업으로 꼽힌다.
현대건설의 아이디어로 진행된 서산간척사업은 우리 국토를 확장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현대건설이 서산간척사업을 검토한 것은 중동 건설 붐이 절정에 달한 1977년 무렵이었다. 세계서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에서 땅은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이었다.
현대건설 측은 "당대에 아무리 많은 비용이 소요되더라도 한번 개척한 땅은 그대로 남아 국토가 되고 영원한 생산 원천이 된다"며 "이러한 의지로 여의도 30배, 남한면적 1%에 해당하는 국토를 새롭게 만들게 됐다"고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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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사업이었던 경부고속도로 전경. ⓒ 현대건설
물론 난관도 있었다. 물살이 너무 빨라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정주영 명예회장이 일단 대형유조선으로 물 흐름을 막아 흙이나 버력으로 물을 막아보자는 독특한 방법을 제안했다.
현대건설은 해체 후 고철로 사용하기 위해 울산에 정박해놨던 22만6000톤급 유조선을 공사에 이용하기로 했다. 현대건설은 당초 계획대로 유조선으로 물 흐름을 막은 후 13일 동안 흙과 버력을 쏟아 부어 총 6.5㎞에 이르는 방조제를 완벽하게 축조했다.
훗날 '유조선 공법'은 '정주영 공법'으로 불리게 됐으며, 현대건설은 이 공법을 통해 280억원에 달하는 공사비를 절감하고, 공사기간도 무려 36개월이나 단축했다.
이외에도 현대건설은 제3차 국토 종합개발 계획 가동과 함께 △서해안개발 △신공항건설 △고속철도건설 등 대형 국책사업을 수행했다.
◆현대차그룹 편입… 내실경영 정착
2011년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현대건설은 내실을 다지기 시작했다. 건설업계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왔던 외형성장 중심주의서 벗어나 철저한 수익성 중심 전략을 세웠다.
이와 함께 전사적 원가절감을 병행, 내부 체질개선에 힘썼다. 이로써 현대건설은 2016년 업계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하게 됐다.
이와 별도로 현대건설은 신흥 해외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중남미(카라카스·산티아고) △유럽(이스탄불) △CIS(타슈켄트) △이란(테헤란) 등 6곳에 지사를 설립했다.
현대건설 측은 "성장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갖춘 핵심상품과 신성장동력사업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진정한 '엔지니어링 기반 글로벌 건설리더'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이러한 노력을 기반으로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존경받는 기업이 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