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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단 한차례 실시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되면서, 허술한 대응 체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자연재해로 인해 수능이 연기된 것은 제도 도입 후 24년만에 처음이지만, 수능 출제·검토위원 신분이 사실상 노출됐고 시험 문·답지를 보관하는 장소 중 일부는 폐쇄회로(CC)TV가 없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교육부는 사흘 앞으로 다가온 수능과 관련해 변경된 일정대로 시험을 시행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20일 교육부가 발표한 2018학년도 수능 지원대책을 보면, 지난 15일 지진이 발생한 경북 포항 지역의 수능 시험장 14곳 중 4곳을 대체시험장에서 치르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예비시험장 12곳이 마련했다.
2018학년도 수능 시행 하루 전 발생한 지진으로 교육부는 23일로 시험 일정을 변경하면서 수습에 나섰다. 포항 수능 시험장 안전성 문제 등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지만 정작 단 하루 치러지는 수능에 대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포항 지진 발생 후 교육부는 수능시험비상대책본부장을 부총리로 격상하고 시험장 점검을 진행했다. 하지만 소중히 여기던 수능 문답지를 보관하는 시험지구 가운데 일부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 84개 시험지구 중 11곳은 CCTV가 없었고, 뒤늦게서야 교육부는 시험지 유출 등을 우려해 모든 보관소에 CCTV를 설치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사실상 수능 출제·검토위원 신분도 노출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오르내리고 있다. 현재 수능 제도는 시험 약 한달 전부터 출제·검토위원, 행정요원 등 700여명이 합숙생활에 나선다.
외부통신은 모두 차단된 채 보안서약서를 작성한 이들만 입소가 가능하며 시험 당일에야 퇴소가 결정, 이후 수능과 관련해서는 발설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단 하루 시험을 위해 수백명이 감금된 상황에서, 교수·교사로 구성된 출제·검토위원은 입소 전 주변 지인 등에게 한달가량의 공백을 해외출장 등을 이유로 들며 합숙에 나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지진으로 인해 수능 일정이 연기되면서 이들은 현재 감금 상태를 유지됐고, 복귀 자체가 힘든 상황에서 수능 출제 참여 여부가 사실상 노출됐다는 지적이다.
A입시업체 관계자는 "국어 영역에 출제위원에 참여한 교수가 있다면, 입소 여부가 노출되면 전공을 통해 출제 관련 담당 분야를 알 수 있다. 검토위원 역시 전공에 따라 검토할 수 있는 분야가 정해져, 전공으로 파악이 가능하다. 이에 신분을 노출하지 않은 채 입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수능 연기로 연락이 두절된 교수, 교사는 입소 여부를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대학 관계자는 "전체 교수 중 가운데 특정 교수는 수능 실시 전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학내에서는 짐작할 수 있는 있었던 셈이다. 이번 수능 연기로 복귀가 늦어지는 교수와 약속이 미뤄진 것을 이야기한 이들이 있을 정도다"고 말했다.
B고교 교사는 "장기 출장을 간다고 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으면 수능과 관련해 입소한 것이라고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정 일정에 맞춰서 사라졌다고 돌아오는 것 자체가 눈치 챌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7의 지진으로, 수능 도중 지진 발생 시 행동요령이 담긴 매뉴얼이 마련됐다. 경미한 지진에 놀란 수험생이 시험장을 이탈할 경우 시험포기자로 처리되고 불안감을 호소할 경우 전문상담교사 등이 진정시킨다는 내용이 담겼다. 감독관 지시가 없다면 움직이지 말아야 하고, 불안감 역시 이날 시험을 위해 참아야 하는 셈이다.
교육계 한 관계자는 "수능 당일 지진이 발생할 경우, 시험 도중 건물 구조물 추락 등으로 수험생 다쳐 수능을 못 볼 경우, 이에 대한 구제 방안이 마련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고 힐난했다.
자연재해로 인해 일정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부분도 전무한 상태다. 포항 지진으로 인한 수능 연기는 시험 12시간 전 공지됐다.
지진이 잦은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 수능과 비슷한 대학입시센터시험을 진행한다. 시험 일정은 2차례 나눠 공지, 자연재해로 인해 일정이 연기될 경우를 대비하고 있으며 지난 6월 일본 대입센터가 발표한 일정을 보면 본시험은 내년 1월13~14일, 재시험은 같은달 20~21일로 안내됐다.
C대학 교수는 "일본의 경우 대입시험 일정을 본시험, 재시험으로 나눠 공지한다. 자연재해로 인해 응시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재해로 인해 수능 일정이 갑자기 변경된 상황에서, 교육부의 부실한 대처 상황만 노출된 꼴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CCTV 없는 보관소에 수능 문답지가 보관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렇게 오래 보관할 줄 몰랐더라도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은 것이다. 출제위원이 노출됐다면 어느 유형이 나올지 감을 잡을 수 있으며, 과거 학원가에서 특정 교수가 참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제 경향을 알아보는 상황도 있었다. 피하는 것은 상책이 아니다. 대안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C대학 관계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이해되지만 여러 문제가 노출된 것은 문제가 많다. 교육부가 발빠른 대처가 있어야 하는데, 추후에도 문제가 발생한 뒤 처리한다면 논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