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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조교를 근로자로 볼 수 있을까. 해묵은 논쟁이 대학가를 달구고 있다. 그동안 대학들은 장학금 지급 등을 이유로 조교에 대해 사실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아왔다. 하지만 최근 노동청이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일대 혼란에 빠졌다.
지난달 10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한태식 동국대 총장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의견을 달아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 당시 동국대 대학원 총학생회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행정조교 400여명이 △근로계약서 미작성 △연차유급 휴가 미부여 △주휴수당 미지급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른 법정 퇴직금 미지급 등의 불이익을 받았다며 학교법인 동국대와 총장 등을 고발했다.
올 1월부터 10개월 가량 조사를 벌인 노동청은 대학원생 조교의 노동성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동국대 측은 부랴부랴 관련 규정을 만들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4대 보험 가입과 퇴직금을 지급하느라 부산을 떨어야 했다.
문제는 이같은 일이 동국대 한군데에만 그치지 않는다는데 있다. 현재 대학가 조교 수가 수만명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모든 대학들이 제2, 제3의 동국대가 될 수 있다.대학들이 관련 규정을 만들려면 사전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가 협의를 거쳐 지침을 내려줘야 하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일의 순서가 바뀌어 애꿎은 대학과 총장만 선 처벌하는 꼴이 되고 있다. 눈치를 보던 다른 대학들은 행정조교를 근로자로 간주하는 새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대학원생 연구환경에 대한 실태조사에서, 등록금 조달 방법에 대해 응답자 중 절반에 가까운 47.8%는 장학금을 꼽았다.
대학가에서는 행정조교는 임금이 아닌 장학금 형태로 지급하는 곳이 대부분인 상태다.
임금 수령보다는 학위 취득에 대한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동국대에 대한 판단이 등장하면서 규정 정비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만약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연속 고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A대학 관계자는 "대학원생 조교에 대해 계약서는 작성하고 있다. 다만 임금이 아닌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있으며 동국대 사례가 대학가에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규정 마련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또다른 대학 측은 "현재 대학원상 조교에 대한 근로자 인정 사항을 논의하고 있다. 급여 체계 등을 바꾸고 있으며 동국대 상황이 시금석이 됐다. 대학 예산은 2월까지다. 임단협(임금단체협약)은 3월부터 개시되거나 적용된다. 재정적 여유가 어느정도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부분을 파악하는 등 행정적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B대학은 "전일제 근무가 아닌 하루 1~2시간, 3~4시간 근무하는 조교들에 대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행정조교 중 전일제 근무자는 다른 대학과 같은 환경으로 처우가 개선될 지 여부는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내년 새 학기 개강 전 대학들은 관련 규정을 새로 만들더라도 장학금 지원 방식에서 임금 지급 형태로 전환할 경우에 대한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한다.
장학금을 임금 지급으로 전환 시, 장학금 수혜율은 낮아지고 예산은 한정되어 있기에 조교 선발 규모는 줄어들 수 있다.
C대학 측은 "대학원생 조교에 대한 규정을 당장 바꿀 수도 있다. 다만 호봉 책정, 최저임금제 등을 적용할 수 있지만 노동자로서 대우해야 하는 상황으로 모든 것을 전환해야 한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올해 2학기가 마무리되면 대학별로 대학원생 조교 처우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교육계 관계자는 "대학 행정조교 체제는 장학금을 지원받고 행정 업무를 돕는 형태였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하는 상황이다. 전국적으로 수만명의 조교가 행정업무를 돕고 있는 가운데 만약 한 명이라도 장학금이 아닌 인건비 형태의 지급을 요구하다가, 학교를 고발한다면 동국대와 같은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부가 대학들과 함께 관련 제도 및 시스템을 시급히 정비해야 대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