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북경 고속철 '산넘어 산'…北 평균 시속 15~18km 경제성 우려에 가스관 등 패키지 개발론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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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이후 남북 경제협력 재시동에 대해 기대감이 커지면서 북방 물류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했던 한반도 신(新)경제지도 구상에 담긴 남북 철도 연결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교통전문가들은 장밋빛 기대는 금물이라고 조언했다. 신경제지도에서 언급된 서울~베이징 고속철도 구축이나 남·북·러시아 가스관 연결 프로젝트는 큰 그림에서 그려볼 만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했다. 남북 간 사회간접자본(SOC) 등 인프라 여건이 큰 차이를 보이는 데다 정치·정책적 결정과 달리 극복해야 할 기술적 문제도 있다. 한마디로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경협 관심… 정상회담서 철도연결 언급
지난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끌어내며 마무리되자 후속 조치로 경협 재가동 가능성과 북방 물류에 눈과 귀가 쏠린다. 북미 정상회담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등으로 당장 추진하기엔 한계가 있으나 올가을 평양 답방 정상회담 이후 남북 경협 문제가 본격 논의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철도 연결을 이야깃거리로 삼으면서 철도를 통한 북방 물류에 관심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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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브리핑에 따르면 당시 환담에서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북한에) 오시면 걱정스러운 게 우리 교통이 불비하다"며 "평창동계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북측과 철도가 연결되면 남북이 모두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 합의서에 (그런 내용이) 담겼는데 10년 세월에 그리 실천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언급은 지난해 7월 독일 베를린 선언에서 밝힌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과 궤를 같이한다. 당시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이 10·4 정상선언을 함께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며 남북 철도 연결과 남·북·러시아 가스관 연결 등의 사업을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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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신경제지도 재조명… H 경제벨트 구축
문재인 정부가 추진할 경협의 청사진은 'H 경제벨트'로도 불리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 이미 제시됐다는 의견이다.
신경제지도 구상은 남북을 △환서해권 △환동해권 △접경지역 등 3대 경제벨트로 새롭게 잇는 게 뼈대다.
환서해권은 교통·물류·산업벨트다. 수도권과 개성·해주, 평양·남포, 신의주, 중국 환보하이만 경제권(환발해권)을 잇는 개발계획이다. 남한의 첨단산업력과 북한의 노동력, 산업입지를 활용하는 구상이다. 경의선(서울~신의주) 개보수, 서울~평양~신의주~베이징 고속철도 구축 등 철도 연결은 물론 개성공단 2단계 사업, 서해평화경제지대 조성, 인천~개성~해주를 잇는 서해 복합물류 네트워크 구축 등이 포함된다.
환동해권은 동해안을 중심으로 원산·함흥, 단천, 나선, 러시아를 연결하는 에너지·자원·관광벨트다. 동해선 철도 복원과 남·북·러시아 가스관 연결 프로젝트, 단천 자원 개발은 물론 박근혜 정부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하나로 추진하다 북한 핵실험으로 중단된 나진·하산 물류 프로젝트, 금강산 관광 개발 등이 해당한다.
접경지역은 한강 하구부터 비무장지대(DMZ)를 가로지르는 환경·관광벨트다. DMZ 일대 생태·평화안보관광지구 개발, 설악산·금강산·백두산 관광사업축 개발 등이 추진된다.
신경제지도 구상은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 후 내놓은 10·4 선언의 연장선에 있다.
10·4 선언에는 남북철도 연결과 함께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설치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한강하구 공동이용 △개성공업지구 건설 △문산~봉동 철도화물수송 △안변·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등 경협사업이 포함돼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은 10·4 선언에 담긴 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교통전문가 "철도 연결 여러 변수 고려해야"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는 북방경제협력과 연결된다. 핵심사업 중 하나가 바로 철도 연결이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반도 신경제지도 실행을 위한 동해선 철도 복원 토론회에서 "동해선 복원은 신경제지도 구상의 핵심 중 하나"라며 "끊긴 강릉~제진 구간을 우선 연결해 철도물류망 구축 비전을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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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전문가들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경제지도가 밑그림에 해당하는 구상단계여서 남북 간 SOC 차이, 변화하는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다.
환동해권 구상에 포함된 동해북부선의 경우 교통전문가들도 우선 추진할 사업으로 꼽는다. 익명을 요구한 교통전문가는 "경원선은 군사적 측면이 있어 어려울 듯하다"며 "동해북부선은 (관계 개선이 이뤄지면) 재추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동해북부선은 2000년 남북 장관급회담 이후 금강산~제진 구간이 연결돼 2007년 시험운행까지 했지만,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결실을 보지 못했다.
다만 교통전문가들은 "철도 하나만 얘기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변해 의류·봉제 등 부피 큰 수출품은 적고 반도체 등 경박단소(輕薄短小) 제품은 많아 철도로 보낼 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 교통전문가는 "과거 DJ 정부에서 경의선으로 철도물류를 활용했으나 공장에서 목적지까지 육상과 철도운송을 3~4번 거치면서 경제성이 낮다고 판단됐다"고 지적했다.
신경제지도에서 경제성을 높이려고 제시하는 게 러시아 가스관 연결이다. 맹성규 전 국토교통부 제2차관은 지난달 12일 기자들과 만나 "동해북부선을 연결하면서 러시아 가스관을 남한으로 끌어오는 사업을 병행할 수 있다"며 "가스관을 폭 60m의 철도용지 아래로 지나가게 하면 토지점용료를 아낄 수 있다"고 소개했다.
교통전문가들은 패키지형 철도개발에는 동의한다. 다만 녹록지 않다는 견해다. 우선 철도 운송과정에서 마찰·정전기 등으로 폭발 위험이 있을 수 있다. 동해안에 폭 50~60m를 확보할 수 있는 넓은 곳이 많지 않다는 것도 현실적인 제약요인으로 꼽힌다.
한 교통전문가는 "무엇보다 가스는 중장기 수급계획이 있다"면서 "LNG(액화천연가스)선을 이용하거나 미국산 셰일가스 수입 확대 등 운송수단별 경제성과 시장 상황 변화를 따져봐야 한다"고 짚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기술적인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도로·철도의 원활한 운행을 위한 곡선부 기울기, 차량의 곡선 반경 등은 가스관에 맞추기 어렵다"며 "병행 건설은 말도 안 된다는 게 기술자들 견해"라고 전했다. 이어 "정책적 판단으로는 땅을 팔 때 같이 하면 경제적이고 좋겠지만, 기술적인 부분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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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서해권의 서울~평양~베이징 고속철도 구축도 현재로선 뜬구름 잡기에 불과해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교통전문가는 "고속철 사업은 먼저 긴급복구를 통해 기차가 다닐 수 있게 한 뒤 현지 사정에 맞게 복선전철화 등을 추진하고서 가능하다"며 "대선 때 제시된 신경제지도는 보기 좋게 그림만 그려놓은 수준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알려진 바로는 북한 열차의 평균 시속은 15~18㎞다. 제일 빠른 평양~신의주~북경 열차가 시속 46㎞ 수준이다. 교통전문가는 "마라톤선수 황영조가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42.195㎞를 시속 20㎞쯤으로 달렸다"며 "달구지 다니는 길에 고속전철 연결할 순 없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철도망이 남한보다 길고 산악지형이 많아 힘이 좋은 전철화 비율이 80%를 넘는다"면서 "정작 문제는 전력이다. 북한은 전기가 부족해 열차가 못 가는 거다. 또 우리나라 고속철 공급 전압은 2만5000볼트(V)지만, 북한은 3만V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럽연합(EU)도 프랑스 고속철 테제베(TGV)가 독일까지 직접 못 간다"며 "남·북·중은 신호·통신 등 철도시스템이 다르다. 서울~베이징 고속철 구축은 3국 간 풀어야 할 게 복잡한 엄청난 문제"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환서해권 교통벨트도 경제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일 해저터널이 기술적으로는 실현 가능해도 인천~동경 항공료가 싼 건 15만원짜리도 있는데 굳이 운임 50만원짜리 교통편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교통전문가는 "호남고속철도 이용이 많지 않다. 경제 활성화가 안 됐는데 평양, 중국 심양으로 출장 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중국이 북한에 통 크게 뭘 해준다 해도 현재로선 경제성이 없다. 자유로운 인적·물적 교류가 추진되기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