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투자나 M&A 같은 통큰 결단 내릴 수 없는 한계'1인 경영체제' 더욱 공고해지는 효과도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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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롯데 회장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지 100여일이 지나면서 총수 공백의 한계가 드러나는가 하면 1인 경영체제가 더욱 공고해지는 계기가 됐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는 신동빈 회장의 부재로 황각규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비상경영위원회’가 이끌고 있다
롯데 비상경영위원회는 진행 중인 국내외 사업점검과 분위기 안정에 우선순위를 두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하지만 신 회장의 공백을 완벽하게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대규모 투자나 글로벌 인수합병 등의 현안에는 대응이 어렵다는 것.
재계 안팎에서는 롯데가 총수 부재로 그간 계획했던 국내외 사업 일정에 큰 차질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가 미국과 중국, 유럽, 베트남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사업규모는 100억 달러(약 10조7000억원)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2016년에 미국 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하는 것 같은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됐을 당시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롯데의 현재 상황은 1년 전 삼성과 비슷하다. 신동빈 회장의 구속수감 장기화는 몇년 후 롯데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동빈 회장은 그간 구축해온 글로벌 인맥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롯데의 해외사업은 신 회장의 글로벌 인맥이 바탕이 된 경우가 많았다. 롯데가 인도네시아에서 진행 중인 40억 달러(약 4조3000억원) 규모의 나트파 분해 설비 증설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한국-인도네시아 동반자 협의회’ 경제계 의장을 맡고 있는 신 회장은 지난 2016년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만나 현지 투자 강화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반면 총수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신동빈 회장이 얻은 것도 있다. 신 회장의 경영권은 구속수감 중 오히려 공고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일 신동빈 회장을 롯데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했다. 공정위는 한정후견인 개시 결정이 확정된 신격호 명예회장을 대신해 신동빈 회장을 총수로 변경했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지주의 개인 최다 출자자이자 대표이사다. 또한 지주체제 밖 계열사 지배구조에서 최상위에 위치한 호텔롯데의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공정위는 이러한 점을 들어 신격호 명예회장에서 신동빈 회장으로 총수 지정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롯데지주는 이사회를 통해 지난 1일자로 신격호 총괄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고, 롯데는 신동빈 회장의 ‘1인 경영체제’가 더욱 확고해진 것이다.
또한 신 회장은 옥중에서 뉴롯데를 만들기 위한 방향을 재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10월 경영비리 1심 최후진술에서 롯데를 더욱 투명하고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회사로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즉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고, 뉴롯데를 위한 밑그림 구상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은 수감생활 동안 사회에서 접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 많은 얘기를 듣고 삼성을 더욱 가치 있는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진술했다”며 “신동빈 회장도 이 부회장처럼 구치소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롯데에 대한 대외적 이미지를 파악하고 뉴롯데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구상을 짜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최태원 SK 회장이 출소 이후 사회적가치 창출이라는 새로운 경영철학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롯데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의 항소심 일정이 당초 예상보다 길어질 것으로 보여, 경영공백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며 “결과는 법원의 판단이지만 하루 빨리 롯데가 정상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신동빈 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지난 2월 13일 징역 2년6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롯데 경영비리 사건에서는 징역 1년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두 사건의 항소심 재판은 병합됐고, 오늘 마지막 공판준비기일이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