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4남 2녀 중 장남으로 경남 진양서 태어나1950년 락히화학 합류, 경영자 '태도-역할' 수업 받아와1989년 그룹 부회장 승진 이후 본격적인 경영활동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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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회장은 생전에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마다하고 소탈하고 겸손하게 살아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인간적으로는 작은 것이라도 자신이 약속한 것은 꼭 지키려 했고 대기업 총수이지만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탈한 인물로 평가 받았다.구본무 회장은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지난 1945년 경상남도 진양군 지수면에서 구자경 명예회장(93세)과 하정임 여사(’08년 작고) 사이에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어린 시절 구 회장은 당시 소학교 교사였던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에게서 엄격한 규율과 예의범절, 가족간의 화합과 형제간의 우애 등을 배웠다.이후 1950년 부친이 조부이자 LG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부름을 받고 락희화학에 합류, 어려서부터 경영자로서의 태도나 역할에 대해 두 어른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구 회장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공장 구경을 갔을 때 땀 흘리며 비누와 '동동구리무'를 만들던 직원들이 생각난다"며 "할아버지는 사업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으로 현재 LG의 사업틀을 구축했고 부친은 그 사업 기반을 굳게 다지셨다"고 회고한 바 있다.구 회장은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재학 중 육군 현역으로 입대해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애쉬랜드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구 회장은 1975년 럭키(현 LG화학)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해 첫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영업, 심사, 수출, 기획 업무 등을 거치면서 20여 년간 차곡차곡 실무경험을 쌓았다.오너 일가라 하더라도 철저한 경영수업을 통해 실무 능력을 검증 받는 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LG가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구 회장은 취임 당시 오너가 경영자로서 탄탄히 기초를 다져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구 회장은 1989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룹 차원의 경영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부회장으로서 그의 역할은 중요 정책을 수립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회장을 보좌하고 각 사의 경영현황을 파악하고 지원하는 것이었다.그는 부회장 시절 그룹 기술자문위원회 위원장과 해외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도 맡아 그룹의 전략적 과제인 '기술개발력 제고'와 '국제화 추진'을 적극 주도했다.세계적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회사의 비전을 달성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 고객 가치 창출에 필요한 핵심기술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고 여기에 경영자원을 집중시키는 역할이었다.이런 경험은 LG그룹의 글로벌화는 물론 '영속기업 LG'의 기반을 탄탄히 마련한 계기가 됐다.구 회장은 매출액을 회장 취임 당시 30조원 규모(1994년 말)에서 GS, LS 등을 계열분리하고도 160조원 규모(2017년 말)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다섯 배 이상 성장시켰다. 이 가운데 해외매출은 10조원에서 110조원대로 열 배 이상 비약적으로 신장시켰다.재계 관계자는 "구 회장은 미래를 위한 도전정신으로 전자·화학·통신 산업을 육성했고, 정도경영을 통해 고객에 신뢰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경제계는 구 회장의 타계를 가슴 깊이 애도하며 한국경제의 번영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구본무 LG 회장 프로필]▲생년월일 : 1945년 2월 10일▲학력-1972년 美 애슐랜드(Ashland) 대학교 경영학 학사-1974년 美 클리블랜드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주요 경력-1975년 LG화학 심사과장-1977년 LG화학 수출관리부장-1979년 LG화학 유지총괄본부장-1980년 LG전자 기획심사본부장-1981년 LG전자 이사-1983년 LG전자 일본 동경주재 이사-1984년 LG전자 일본 동경주재 상무-1985년 LG회장실 전무-1986년 LG회장실 부사장-1989년 LG 부회장-1995년 LG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