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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이른바 '물컵' 사건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났다.
광고대행사와의 회의 도중 화가 나 던진 물컵이 엄청난 나비효과로 작용해 6개월간 한진그룹을 비롯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기간 동안 11개 권력기관이 총동원돼 자택과 사무실 등을 18번 압수수색했다. 조 회장 일가는 총 14번 포토라인에 섰고, 5번의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모두 기각됐다.
결국 검찰은 지난 15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대해서는 불구속 기소했으며, 조현민 전 전무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했다. 업무방해와 특수폭행에 대해서는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광고 담당 총괄로서 광고대행사 업무를 방해할 이유가 없고, 유리컵을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던져 특수폭행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또 피해자와 합의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점도 반영됐다.
한마디로 한진家 갑질 수사의 시발점이 됐던 물컵 사건은 아무런 법적 처벌을 받을 사안이 아닌게 됐다. 그 돌맹이 하나가 잔잔한 호수의 파장을 일으키며 한진그룹 전체에 쓰나미로 돌와왔지만 말이다.
조현민 전 전무는 올해 36살의 미혼 여성이다. 물컵 사건은 개그 소재로 이용되기도 하고 온라인 상에서 각종 패러디화 됐다. 음성 녹취가 공개되면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불기소 처분으로 혐의를 벗었지만 조 전 전무에게는 잊혀지지 않을 상처로 남을 것이다.
그는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이라는 시리즈 동화책을 다섯권이나 쓴 작가이기도 하다. 동화책을 쓸 정도로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됐던 TV CF 영상의 영국편은 조 전무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프로젝트였다. 때문에 원하는 영상 콘텐츠가 충족되지 않아 화를 심하게 표출했다. 일에 대한 욕심과 열정이 넘쳤던 것이 오히려 갑질이라는 역풍으로 왜곡됐다. 대기업 총수의 딸이 아닌 그냥 일반인이었다면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땅콩 회항에 이어 물컵 사건이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국민들과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갑질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감이 극대화되는 시대적 흐름속에서 조현민 전 전무는 분풀이 대상으로 적합했던 것이다.
검찰과 경찰 등 사법 및 사정기관도 이런 여론을 의식하고 한진家를 집중적으로 수사했다. 이 과정에서 부실하고 무리한 수사가 이어졌다. 정부의 권력기관은 '보여주기', '망신주기' 수사 행태를 지속했다. '끝까지 털어서 먼지 안나오겠어'라는 마인드로 접근했다.
하지만 조 전 전무는 불기소 처분됐다. 비난받고 욕먹을 수 있는 사안이었지,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안이었다는 얘기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의 권력기관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된다는 부분과 여론몰이식 수사는 지양해야 한다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기업 총수의 3·4세들도 성과주의에 너무 얽매여 과도한 몰입을 삼가야 한다.
자기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서야 수천명 수만명의 직원들 생계를 어떻게 책임질 수 있겠는가. 때로는 합리적으로, 때로는 인간적으로, 때로는 냉정하게 기업경영에 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조현민 전 전무를 비롯한 한진家 삼남매의 성숙한 모습도 기대해본다. 직원들로부터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오너 3세가 되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