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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1층에 세워진 원통형 로봇 두 대. 배달원이 음식을 갖고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 얼굴이 열린다. 로봇에게 음식을 맡긴 배달원은 바로 건물 밖으로 사라진다. 음식을 받은 로봇은 배달을 위해 스스로 엘리베이터 앞으로 이동한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만 보던 첨단 로봇기술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카페·음식점에서 점원 대신 주문을 받는 키오스크는 흔해진 지 오래. 이젠 음식 배달까지 로봇이 수행하는 시대다.
지난 18일 배달 로봇 ‘딜리타워’의 체험을 위해 배달의민족 본사를 찾았다. 출입문을 들어서자마자 웃는 얼굴의 로봇 두 대가 반갑게 맞이해줬다. 배민은 지난달 30일부터 3주동안 딜리타워 시범운영 기간을 가졌다. 상용화 목표는 내년이다.
딜리는 건물 내 배달을 수행하는 로봇. 배달 기사가 1층에 도착해 딜리에게 음식을 맡기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고객에게 배달을 완료하는 개념이다. 딜리는 고층복합시설과 오피스텔 등을 타깃으로 만들었다.
배달의민족은 커지는 배달 시장에 대응해 딜리를 개발했다. 주문 수는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배달인력의 수급이 어려운 최근의 고민을 반영했다. 실내 배달은 로봇이, 외부 이동은 기사가 맡아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주문을 수행한다는 아이디어다. <영상 참고>
딜리 사용법은 간단하다. 배달기사가 건물 1층에 도착하면 화면을 터치해 로봇을 깨운다. 기사가 받은 보안번호를 로봇에 입력하면, 몸체에 달린 뚜껑이 열린다. 열린 칸에 음식을 넣고 목적 층을 설정한다.
명령을 받은 로봇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이동한다. 더 일찍 도착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자동으로 선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저도 탈게요”라고 말하며 움직인다. 탑승 후엔 자동으로 목적 층이 눌린다. 입력된 명령은 엘리베이터 관제 시스템에 전달되며, 시스템이 딜리를 조정한다.
딜리의 두뇌엔 건물 모든 층의 정보가 입력돼있다. 층별 방 구조와 출입문 위치 등을 인지하고 있어, 명령을 받으면 스스로 경로를 그려 이동한다. 이동 중 사물이나 움직이는 사람을 만나면 자동으로 감지해 방향을 우회하기도 한다.
목적 층에 도착하자 “저 이번에 내려요”라는 안내가 나온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주문자에게 자동으로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으니 “배달 로봇이 도착했습니다. 음식을 수령해 주세요”라고 안내한다. 문 앞에 나가 휴대폰 뒷자리를 눌러 음식을 받았다. 이후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제자리를 찾아간다.
배달의민족은 첨단기술을 외식업에 결합한 ‘푸드테크(food-tech)’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지난 8월엔 로봇이 서빙을 담당하는 식당을 본사 인근에 오픈했다. 매장에선 레일·보행 로봇을 운영 중이며, 로봇 두 대가 점원 1.5~2명 몫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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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 로봇 개발에도 한창이다. 배달의민족은 지난 7월 미국 UCLA 산하 로봇 연구소 ‘로멜라(RoMeLa)’와 함께 요리 로봇 개발을 시작했다. 개발팀은 세계적인 로봇 공학자인 데니스 홍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가 이끈다.
코드명 ‘YORI(요리)’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레스토랑과 가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요리로봇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제조업에 쓰는 공장용 로봇팔과 달리 음식 자르기, 팬 뒤집기 등 섬세한 작업이 가능한 로봇을 구현할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딜리타워 시범 운영을 시작으로 건물 내 식기반납·실외배송·요리로봇 등 다양한 차원의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라며 “딜리타워의 경우 현재 설치가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이 완료됐으며, 최적화 과정을 거쳐 내년 중 상용화 예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