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피했지만 지루한 수사·법리다툼 이어질듯이재용 부회장, 정상적 해외 교류 등 비즈니스 어려워'글로벌 삼성' 네트워크 구축 여전히 빨간불
  • ▲ 9일 새벽 서울구치소에서 귀가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종현 기자
    ▲ 9일 새벽 서울구치소에서 귀가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종현 기자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긴 했지만, 검찰과의 법리다툼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삼성의 해외 투자와 민간 외교 분야에 대한 먹구름은 여전하다. 특히 이 부회장이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글로벌 곳곳에 갖춰놓은 인맥을 바탕으로 삼성의 주요 현안은 물론이고 국가 차원의 위기상황에 발 벗고 나서왔던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이어질 수사와 재판은 계속해서 삼성의 글로벌 경영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9일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부장판사는 8일부터 이어진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삼성이 기존처럼 이 부회장의 글로벌 인맥을 활용한 비즈니스나 투자에 활발히 나서지 못하는 상황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검찰의 고강도 수사와 첨예한 법리다툼이 계속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그 간 이 부회장이 보여준 글로벌 인맥은 국내 어느 기업 총수도 따라오지 못할 수준으로 다양했다. 인도와 아랍에미리트(UAE), 베트남 등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신흥국 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중국 등 삼성전자가 진출해있는 주요 국가의 정상급 인사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7년 국정농단 사태로 1년 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석방된 해부턴 주로 해외 생산공장을 둘러보며 현지 정상급 인사를 만나는 일에 주력해왔다.

    삼성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의 생산공장이 있는 인도와 베트남에 방문해 현지 인사들과 투자 협약을 맺고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행보가 이어졌다. 2018년 7월에는 인도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초청해 자리를 함께 했고 10월에는 베트남 하노이를 찾아 응우옌 쑤언 푹 총리와 면담했다.

    지난해에도 연초부터 해외사업 점검길에 오른 이 부회장의 민간 외교는 더 탄력을 받았다. 2월 UAE의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왕세자를 만나 5G 통신 사업에 대해 논의하고 왕세자가 방한했을 때 경기도 화성의 삼성 반도체 공장을 직접 소개하며 공고한 글로벌 인맥이 또 한번 드러났다. 국내를 찾은 인도 모디 총리가 이 부회장과의 만남을 직접 원해 성사된 적도 있었다.

    이 부회장은 미국의 부시 전(前) 대통령과의 인연도 각별했다.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설립을 계기로 현재까지도 교류하는 사이로, 부시 대통령의 지난해 국내 방문에서 이 부회장과 만남이 조명받았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일본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 규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마자 이 부회장이 일본으로 급파해 현지 거래선들과 정재계 고위 인사들을 직접 만난 것도 유명한 사례다.

    이 부회장은 삼성은 물론이고 향후 반도체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목잡혀 있는 소재산업에서의 해법을 찾기 위해 기업 총수 중 가장 먼저 현지로 날아가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2차전으로 불릴 정도로 신경전이 거센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불똥이 국내 반도체와 IT산업으로 튀지 않기 위해서도 이 부회장의 역할론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화웨이의 5G 통신장비 문제를 시작으로 미국과 중국 간의 세력다툼이 시작되는 시점에 상황 변화를 면밀히 살펴 삼성이 처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게 최고경영진에게 글로벌 정세를 전하며 전략을 짰다.

    문제는 올해와 같이 글로벌 경영 상황이 녹록지 않은 시점에도 삼성과 이 부회장이 여전히 끝나지 않는 사법 리스크를 짊어지고 글로벌 삼성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점이다. 올해는 미·중·일 3강의 불확실성 외에도 전 세계에 예고없이 불어닥친 '코로나19'로 글로벌 경제 전반이 얼어붙으면서 유례없는 위기 상황이 장기화될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3년 넘게 끌어온 삼성의 사법 리스크가 또 다시 지루하게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불확실성도 여전할 수 밖에 없다는 평가다. 삼성 내부에서도 이 부회장이 경영 현안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모습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신규 투자나 사업 협력관계를 이끌어내 미래를 준비해야하는 골든타임에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