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기업 사망선고처럼 과세"실질부담 세계 최고… 캐나다·영국 보다 253%·191% 높아경영위기 내몰리거나 외국자본에 빼앗겨
  •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등 고 이건희 삼성그룹회장 유족들이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강당에서 열린 영결식을 마친뒤 나서고 있다.ⓒ박성원 사진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등 고 이건희 삼성그룹회장 유족들이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강당에서 열린 영결식을 마친뒤 나서고 있다.ⓒ박성원 사진기자
    기업승계시 적용하는 징벌적 상속세가 주요 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만 적용하는 획일적인 최대주주 할증평가제로 주요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상속세가 부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타계 후 18조2251억원 규모의 주식 상속에 부과되는 세금만 10조6022억원에 달하는데, 똑같은 사례를 미국·영국 등 선진국 과세체계로 계산하면 3조원에서 7조원까지 세부담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5일 발표한 '기업승계시 과도한 상속세 부과의 문제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국가들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은 2위로 나타났다. 하지만 기업승계 시 주식가치에 부과하는 최대주주할증평가(20%)를 적용하면 세율은 60%까지 치솟아 일본을 앞지른다. 상속·증여세 부담도 높은 수준으로 2018년 기준 GDP 대비 상속·증여세수 비중은 OECD 국가들 중 3번째로 높았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미국(40%)이나 독일(30%), 영국(40%) 등 선진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기업승계 시 엄격한 공제항목 제한을 둬 실효세율은 더 높아진다.

    100만달러 이상 상속금액에만 과세하는 미국은 1158만달러(131억원)까지 공제되며, 독일은 인적공제 외에도 특별생계비공제도 받을 수 있다. 영국의 경우 인적공제는 없지만 비상장주식의 경우 100%, 상장주식은 50%까지 공제해준다.

    공제를 포함한 상속세 실효세율을 계산해보면 한국의 상속세 부담은 캐나다 보다 253%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과 비교하면 191% 높은 수준이며 독일과 미국 보다도 각각  94%와 46% 씩 높았다.

    故 이건희 회장의 주식 18조2251억원을 상속할 때 한국은 인적공제 30억원과 신고세액 공제 3%(3275억원)만 공제한뒤 60% 세율을 적용해 10조5905억원을 과세한다. 반면 같은 사례에서 미국은 7조2747억원, 독일 5조4592억원, 영국 3조6399억원 수준이다.

    세계에서 상속세율이 가장 높은 일본의 과세체계를 대입해도 10조96억원으로 한국보다 5809억원 적었다.
  • ▲ OECD 주요국 상속세·소득세 최고세율 및 GDP 대비 상속·증여세 비중.%)ⓒ한국경제연구원
    ▲ OECD 주요국 상속세·소득세 최고세율 및 GDP 대비 상속·증여세 비중.%)ⓒ한국경제연구원
    과도한 상속세는 경영권 승계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여 탄탄한 중견기업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는 사례로 이어지고 있다.

    손톱깎이 생산으로 세계 1위 매출을 기록했던 쓰리세븐(777)은 2008년 150억원 가량의 상속세 납부를 위해 지분을 전량 매각한 후 적자기업으로 전락했다. 세계 1위 콘돔 생산업체 유니더스는 2015년 말 창업주 별세로 아들이 최대주주를 이어받았지만 5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부담하지 못해 2년만에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넘겼다. 밀폐용기로 유명한 락앤락 창업주도 생전 상속세 부담을 고려해 2017년 홍콩계 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하며 기업승계를 포기했다.

    이미 과세된 소득세에 또다시 상속세를 부과한다는 이중과세 문제점도 지적됐다. OECD 국가들의 소득세와 상속세 최고세율 합계를 비교하면 한국은 일본(100%)에 이은 2위(92%)지만, 최대주주할증평가를 적용하면 102%로 1위로 올라서 세부담이 가장 크게 나타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여기에 최근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에서는 소득세 최고세율을 현행 42%에서 45%로 상향키로 해 소득세 부담도 늘어날 전망이다.

    임동원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이미 소득세가 과세된 세후소득이 상속세 과세대상이 된다는 점이 문제"라며 "상속세가 높으면 소득세가 낮아야 하는데 한국은 국제적으로 높은 상속세율을 유지하면서도 소득세율도 계속 올리고 있어 전체적인 세부담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기업승계가 단순한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업의 존속 및 일자리 유지를 통해 국가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수단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가와 국민이 어렵게 키워놓은 기업을 경영위기로 내몰거나 해외 자본에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과도하게 높은 상속세율을 OECD 평균인 25%까지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징벌적 성향이 짙은 최대주주할증과세를 폐지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특히 기업승계에 한정해 상속세 대신 상속받은 자산을 추후 유상으로 처분하면 과세하는 자본이득세를 도입하면 조세형평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1972년 상속세를 폐지한 캐나다는 자본이득세를 도입해 상속에 따른 실질적인 소득에 대해서만 과세하고 있으며 스웨덴도 2005년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소득세 30% 단일과세로 전환했다.

    임 부연구위원은 "과도한 상속세 부담이 기업승계 조세장벽을 발생시키고, 획일적인 최대주주 할증평가는 더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며 "주요 선진국보다 크게 높은 징벌적 상속세는 기업의 사망선고처럼 과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 故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지분 승계시 국가별 상속세 부담액 비교ⓒ한국경제연구원
    ▲ 故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지분 승계시 국가별 상속세 부담액 비교ⓒ한국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