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지속, 대산공장 화재 등 악재 불구 연임배터리 분리막, 모빌리티 소재 등 신사업 추진 본격화그룹 임원 대규모 교체 등 '독한 인사' 폭풍 속 '화학통' 전문성 인정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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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의 화학 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김교현 BU장이 유임됐다. 코로나19와 대산공장 화재 등 악재로 답보 상태에 놓인 롯데케미칼을 본궤도로 올려놓는 중임을 부여받았다.
연내 재가동 예정인 대산공장의 정상화와 배터리 분리막을 비롯한 모빌리티向 신사업 진출 등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27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롯데그룹은 롯데지주를 비롯해 유통 식품 화학 호텔 부문 35개 계열사의 2021년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는 예년보다 약 한 달 앞당겨 실시됐다 코로나19 등 대내외 환경이 매우 불확실해진 가운데 내년도 경영계획을 조기 수립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다.화학 부문 인사에서는 롯데케미칼 대표를 맡고 있는 김교현 사장이 재신임됐다. 상반기 코로나19와 대산공장 화재 여파로 혹독한 시기를 보내며 김 사장의 거취에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더욱이 롯데는 올해 정기 임원인사에서 대규모 교체 등 '독한 인사'를 예고한 바 있다.롯데케미칼이 마주한 현안들을 안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그룹 내 '화학통'인 김 사장의 전문성 등을 따져 재신임을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내실 안정은 물론, 외형 성장 등 역할을 더 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실제 롯데케미칼은 올해 초 대산공장 화재사고 및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수요 감소로 큰 악재를 맞았다.1분기 58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전년대비 적자전환했으며 2분기에는 329억원, 3분기에는 1938억원의 흑자를 냈지만, 지난해 연간 실적 1조1072억원의 절반도 기록하지 못한 상황이다.그동안 롯데케미칼은 본업인 범용제품을 중심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전략을 주로 구사해왔다. 코로나19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락하자 범용 제품군 가격이 미끄러졌고, 롯데케미칼의 실적 역시 곤두박질쳤다.이 같은 상황에서 롯데케미칼은 사업구조 한계를 극복하면서 동시에 경영환경을 조기 안정화해야 하는 과제들을 안고 있다.이를 위해 롯데케미칼은 신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기차 배터리 소재로 쓰이는 분리막이다. 분리막은 양극재와 음극재, 전해질 등 배터리 4대 핵심소재 중 하나다.분리막 소재로는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에틸렌(PE) 등 절연 성능이 뛰어난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이 쓰이는데, 롯데케미칼은 PE를 주력 제품으로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스페셜티 중심으로 화학사업을 확장하려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기조에도 부합하는 것으로 파악된다.앞서 롯데케미칼은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현재 분리막 판매량은 연 4000t, 매출액 100억원 정도지만 2025년까지 10만t, 2000억원을 목표로 한다"며 "분리막 생산을 위해 추가적인 설비 보완을 진행 중으로, 내년 상반기 안에 보완작업을 마치면 시장에 정상적으로 공급하는데 지장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위기 속에서 기회를 모색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일본의 배터리 소재 회사인 히타치케미칼 인수전에 참여했지만, 고배를 마신 뒤 5월 히타치케미칼을 인수한 일본 쇼와덴코의 지분 4.69%를 매입했다.9월에는 배터리 핵심소재 동박을 생산하는 두산솔루스 인수를 위한 펀드에 3000억원 규모를 투자했다. 배터리 소재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히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쇼와덴코와 두산솔루스에 지분을 투자하고 몇년간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며 "확신이 생길 때 인수 등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최근 신동빈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단독 회동하면서 모빌리티 부문에서의 새로운 협력 모델이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신 회장은 25일 롯데케미칼 첨단소재 의왕사업장에서 정의선 회장을 만났다.롯데케미칼 첨단소재 부문은 고부가합성수지(ABS), 스티로폼(EPS) 등 스티렌계 수지와 폴리카보네이트(PC), 고기능 엔지니어링플라스틱(EP) 등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 제품은 자동차 내·외장재로 쓰이고 있어 현대차와 향후 협업할 가능성이 있다. 강도는 높으면서 철강보다 가벼운 만큼 친환경차에 활용될 여지가 크다는 관측이다.특히나 롯데그룹은 국내 5대 그룹 중 유일하게 배터리 산업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현대차그룹은 가격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배터리 자체 생산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김 사장은 이달 초 화학 산업의 날 행사에서 "모빌리티 산업에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고 있고 투자도 이어질 것"이라면서 사업 확장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롯데케미칼의 매출을 책임지고 있는 대산공장 정상화도 앞두고 있다. 3월 나프타분해설비(NCC)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약 2000억원의 손실을 봤다.롯데케미칼은 연내 재가동되면 내년부터 기저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설비가 가동되면 강점인 크래커 통합 효과가 창출되는 것은 물론, 에틸렌 마진폭도 확대될 것이 유력하다. 대산고장 NCC에서 생산되는 에틸렌(연 110만t)은 롯데케미칼 전체 에틸렌 생산량의 20%를 넘는다.조형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대산공장 가동 재개에 따른 기회손실 소멸과 올레핀, LC타이탄 등의 시황 회복 영향으로 전 사업 부문에서 가파른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친환경 소재 사업도 영역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화학 산업의 날 행사에서 김 사장은 "화장품 및 식품용기 등으로 쓰이는 회수용 PP에 대해 최근 미국 식품의약처(FDA) 승인을 받았다"며 "아모레퍼시픽 등 화장품 업체에 공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앞서 롯데케미칼은 9월 국내 최초로 이 같은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재생 PP 소재는 소비자가 사용한 화장품 용기를 수거한 후 재사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리사이클 원료로 만들어진다.이처럼 재도약을 앞둔 롯데케미칼을 아우르기 위해서는 화학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두루 갖춘 김 사장의 역할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사장은 1984년 롯데케미칼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해 사장까지 오른 정통 '화학맨'이다.말레이시아 화학사인 LC타이탄 인수와 실적 개선으로 2014년 타이탄 대표에 올랐고, 이후 2017년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2018년 롯데그룹 화학 부문 BU장, 올해 초에는 통합 롯데케미칼 대표 자리까지 맡으면서 그룹 내 화학 분야의 최고경영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