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우크라이나 코앞까지 병력 배치작년 러 수주액 17억달러…전년比 15배↑러 프로젝트 차질에 원자재價 급등도 우려
  • ▲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 역 기차에 실린 러시아군 장갑차. ⓒ연합뉴스
    ▲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 역 기차에 실린 러시아군 장갑차. ⓒ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전운이 고조되면서 국내 건설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는 최근 신흥시장으로 떠오를 정도로 업계가 공사 수주에 큰 공을 들이고 있는데 러시아에 대한 서방 제재가 본격화되면 추가 수주는 커녕 최악의 경우 진행중인 프로젝트마저 접어야 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정학적 리스크로 치솟고 있는 원자재가격은 당장 발등의 불이 됐다.

    24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우려속에 우크라이나가 23일(현지시각)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예비군을 소집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긴장이 증폭되고 있다.

    미 국방부는 러시아가 100% 가까운 거의 모든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시켰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도네츠크 공화국(DPR)과 루한스크 공화국(LPR) 지도자들은 21일 러시아와 체결한 우호조약에 근거해 러시아에 병력 지원을 요청하면서 러시아 병력은 우크라이나 코앞까지 오게 됐다.

    러시아가 숨통을 조여오자 우크라이나도 강경 대응에 나서고 서방국가들은 제재를 강화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산업계도 사태 악화에 시장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국의 갈등으로 에너지·원자재 수급에 미칠 악영향과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여부에까지 촉각을 세우며 대응방안 마련에 골몰하는 모양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설사의 러시아 수주액은 모두 17억달러로 1년전 1억1859만달러보다 15배 급증하면서 주요 수주지역으로 급부상했다. 같은기간 우크라이나 수주액도 30만달러에 달한다. 

    현재 러시아에서 국내 건설사가 추진중인 공사는 21개로 12개 업체가 참여했고 우크라이나에서는 6개로 3개 업체가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의 주요 건설사업장은 ▲DL이앤씨의 모스크바 정유공장 현대화 사업(3271억원) ▲현대엔지니어링의 가스처리시설 EPC 프로젝트(1000억원) ▲삼성엔지니어링의 발틱 에탄 크래커 프로젝트의 EP 사업(1조3721억원) 등이다.

    대신 업체들은 현장에 나간 국내 근로자들의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파견된 근로자수가 적고 대부분이 최근 귀국해서다.

    DL이앤씨 관계자는 "모스크바지역에 지사가 있지만 우크라이나 돈바스 등 분쟁지역에 파견된 직원은 없다"며 "최근 러시아에서 수주한 사업이 있지만 아직 현장이 시작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수주 환경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는 적지 않다. 단기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지역에서의 사업이 중단되고, 중장기적으로는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을 포함하는 유라시아지역 수주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금융자산 동결 등 경제제재를 내리면 공사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등의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실제 국내 건설사들은 앞서 이란과 이라크 지역에서 전후 복구사업 등 수주영업을 펼쳤다가 '전쟁 리스크'로 대부분 철수한 상태다.
  • ▲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뉴스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뉴스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해건협 역시 보고서 '우크라이나 사태 동향과 해외 건설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군사 충돌시 한국 건설사의 현지 사업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군사 충돌이 일어나면 미국과 유럽국가들로부터 러시아 철수 압박이 지속할 것"이라며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화할 경우 국내 건설사들이 수행중인 사업과 수주 활동이 중단되는 등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건협은 또 만약 경제제재가 송금 제한까지 했던 대이란 제재 수준이라면 시공중인 공사들도 기자재 수급이나 공사대금 수령이 어려워지고 러시아정부가 발주한 사업을 신규 수주하는 길도 완전히 막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자금조달은 선제적으로 조치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투자하거나 아직 받지 못한 돈은 없어 일단 지켜보고 있다"며 "발틱 콤플렉스(1조6000억원)의 경우 발주처 국적이 중국인 만큼 제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B사의 관계자는 "러시아가 달러 대신 루블화로 공사대금을 치르겠다고 하면 상당한 환차손을 감수해야 한다"며 "현재는 촉각을 세우고 상황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경제제재 수위에 따라 현지 투자환경이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원자재 수급 불안 역시 업계 근심을 키우는 요인중 하나다.

    전쟁 위기가 고조되면서 러시아 생산 비중이 높은 알루미늄(거푸집, 도금강판)과 니켈(철근, 강판) 가격은 최근 각각 t당 3200달러와 2만4000달러를 돌파하면서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시멘트 재료로 쓰이는 유연탄 수입단가는 1년새 162% 급등했다. 여기에 국내 철강사들도 국제유가 등 원재료 가격 인상을 이유로 철근 가격을 잇달아 인상하고 있다.

    C사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인플레이션으로 건설자재 가격이 동시다발적으로 오르고 있다"며 "가격 인상에 더불어 수급 문제가 동시에 불거지면 공사 중단 등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번 우크라이나 리스크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 공사원가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토교통부와 건설업계는 현지에 근무하는 내국인 근로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동시에 국내 업체들의 현지 기업활동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방점을 두고 바뀌는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주기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갈 방침이다.

    국토부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해건협 등과 함께 민관합동 긴급 상황반을 구성하고 23일 첫 회의를 개최했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대응방안 등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국토부 관계자는 "업계와 주기적으로 회의를 진행해 변화하는 정세와 제재 수준에 대한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고 정부의 대응방향 등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