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섭 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MB정부도 시도했지만, 무산업계 "제품별 원가 산정 불가능" 난감
  • ▲ 주유소. ⓒ강민석 기자
    ▲ 주유소. ⓒ강민석 기자

    고유가 속에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는 정유사에 대해 석유제품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일고 있다. 업계는 원가 산정이 어렵다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장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정유사의 유통구조 투명화를 위한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일부 개정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정부가 유류세를 조정하면 세율을 적용받는 정유사들이 세율 조정 전후의 석유제품 도매가격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이 의원은 "이번 법안을 통해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정유사들의 원가가 공개되면 소비자 기름값 인하에도 도움이 되고 정유업계 유통구조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법안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법안은 최근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기름값 인하 체감도가 낮아 발의됐다. 이 의원은 "유류세 인하액이 주유소의 판매가격에 잘 적용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유가 부담 완화 취지로 지난 1일부터 유류세 인하 폭을 37%까지 확대했다.

    초호황을 누리고 있는 정유사들 겨냥한 측면도 강하다. 유류세 감면 시 유가 공급의 가격결정력을 가진 정유사가 더 큰 혜택을 가져가는 현 구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정유사는 역대급 '돈 잔치'를 벌이는 사이 우리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유4사의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2분기 기준 SK이노베이션 5065, 에쓰오일 5710, GS칼텍스 3792억 현대오일뱅크 2657억이다.

    정유사 원가 공개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1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꼬집자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이 "휘발유 원가 구조를 뜯어보겠다"며 정유사를 압박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원유를 수입해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과 LPG, 석유화학제품의 원료인 나프타 등을 연쇄적으로 생산하는 국내 정유사 다운스트림이 복잡해서다.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는 명분 아래 시장 논리를 거슬렀다는 비판도 나왔다.

    업계는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장 출고가와 세전가-세후가가 석유공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오피넷에 이미 공개되어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유류세 인하 기간에는 가격 점검 회의를 정기적으로 해오고 있어, 가격 부분은 이미 정부에도 다 오픈이 된 상태"라고 반박했다.

    이어 "석유제품은 연산품이고 개별품목을 가격을 책정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내 정유4사가 들여오는 원유는 각기 관리방법이 달라서 다 똑같이 될 수가 없다"며 "공개되더라도 이는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사안이며 기업 경쟁력을 낮출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유사의 수익 구조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들의 이윤이 국내에 판매해서 얻는 이익도 일부 있지만, 상당 부분은 수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석유제품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81.7% 증가했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도 석유제품 수출은 철강, 자동차 등을 뛰어넘었다. 고유가로 수출가격이 크게 오른 데다 중국-호주 등 주요 생산국들의 정제설비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국내 정유사들의 글로벌 시장 영향력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다른 한 관계자는 "정유사 원가 공개법은 단순히 정유사가 국내 주유소를 통해서 유통하고 그 유통마진을 챙겨먹는다는 잘못된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며 "정유사들이 어떻게 해서 수익을 내고 있는지 정확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