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 탓 비용부담 ↑…월세 낀 임대차비중 48.9%아파트·빌라 월세 동반상승…깡통전세 불안감도 원인
  • ▲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세 매물 정보가 붙어 있다.ⓒ연합뉴스
    ▲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세 매물 정보가 붙어 있다.ⓒ연합뉴스
    한국 고유의 임차계약제도인 전세가 소멸 위기에 놓였다. 최근 몇년간 전셋값이 오를 대로 오른 상황에서 잇따른 금리인상으로 대출이자 부담까지 급증하자 월세 갈아타기가 가속화하고 있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보증금 미반환 사고와 계약종료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전세도 전세 수요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꼽힌다. 

    전세 수요가 줄면서 전셋값 거품이 빠지자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역전세 우려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3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전체 임대차 계약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통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서울에서 월세를 낀 주택 임대차 거래량은 19만3266건(계약일 기준)으로 전체 임대차 거래의 48.9%를 차지했다. 2011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1~9월 기준으로는 가장 높은 수치다.

    월세를 낀 아파트 임대차 거래는 7만33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만6733건)보다 24% 이상 늘었다.

    월세 갈아타기는 아파트뿐만 아니라 다세대나 연립 등 빌라 시장에서도 심화하고 있다. 다세대·연립 월세 거래는 3만5687건으로 2011년 집계 이후 처음 3만건을 돌파했다.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하는 이유로는 금리인상이 꼽힌다. 최근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전세대출 금리가 7%를 돌파하면서 대출이자가 월세 비용을 넘어서는 일이 빈번해졌다. 

    지난 8월 기준 전국 전·월세전환율은 5.8%다. 예컨대 5억원짜리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 5억원의 5.8%(2900만원)를 12개월로 나눈 약 243만원을 월세로 내면 된다.

    반면 5억원을 전세대출로 받으면 연 대출이자는 3500만원, 한달 이자 부담은 292만원으로 월세보다 50만원 가까이 더 비싸다. 

    결과적으로 2년간 보증금이 묶여 있고 전세사기 등에 대한 불안감까지 큰 전세를 비싼 이자를 주면서까지 살 메리트가 사라진 것이다.

    서울 동작구의 B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금리가 오를수록 세입자는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할 수밖에 없고, 집주인 입장에서도 목돈보다는 당장 세금 납부 등에 필요한 현금을 쥐는 것이 유리해 서로 니즈가 맞아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전세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잖다. 특히 소득과 자본이 적은 2030세대에서 대출 미상환이 빈번한 상황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주택금융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전세자금보증 가입자 중 은행에 전세자금을 상환하지 못해 공사가 대위변제한 금액은 172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53.4%인 922억원은 20·30세대 청년 차주가 빌렸던 돈이다.

    빈번한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도 전세 거주를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전국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75.2%로 8월(74.7%)보다 0.5%포인트(p) 높아졌다.

    전세가율은 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비율로, 이 비율이 높아 전세가가 매매가에 육박하거나 추월하면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떼일 위험이 커진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고금리에 따른 대출이자 부담, 높은 전셋값, 깡통전세 문제 등이 맞물리면서 월세화가 가속화하는 추세“라며 ”전세보증금 인상분을 월세로 내는 준전세식 전환이 늘어나는 등 월세 상승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월세도 매달 납부금을 줄이려면 적잖은 보증금이 필요하고, 고정지출에 대한 부담도 여전해 전세 제도 자체가 소멸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 인상 등으로 전세대출 이자와 월세의 차이가 줄어 전세의 월세화가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향후 전세가 완전히 소멸할 정도로 추세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