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VC 일진투자파트너스 창투사 지위 포기… 개점휴업 상태주요 경영진 이탈에 계열사 매각사안 겹치며 투자 미뤄져허진규 회장 “초심으로 돌아가 신성장 동력 확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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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진그룹
    일진그룹의 신사업 추진에 빨간불이 켜졌다. 일진머티리얼즈 매각으로 미래 먹거리 육성이 시급하지만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일진투자파트너스도 개점휴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작년 12월 일진그룹의 CVC 일진투자파트너스는 창업투자회사 지위를 포기했다. 설립한 뒤 제대로 된 투자가 이어지지 않으면서 등록 말소를 신청한 것으로 파악된다. 시장 일각에서는 회사 청산이나 폐업 등의 가능성도 점치고 있는 상황이다. 

    출범한 지 1년 8개월 만이다. 일진투자파트너스는 2021년 4월 초 자본금 50억원으로 설립됐다. 그룹 본사인 서울 마포구 도화동 일진빌딩에 둥지를 틀며 본격 영업을 알렸다. 

    CVC 설립 당시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과 둘째 사위인 김윤동 일진자동차 대표가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려 주목을 받았다. 재계에서는 1세대 벤처인으로 평가받는 허 회장이 소재·부품·장비분야를 중심으로 본격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설 것이란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설립 이후 제대로 된 투자가 이어지지 않으면서 결국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게 됐다. 지난해 하반기 처음으로 투자를 단행했지만 투자액은 1억원에 그쳤다. 

    핵심 경영진이 이탈한 데다 일진머티리얼즈, 일진디스플레이 등 핵심 계열사 매각 사안에 밀린 점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경기둔화, 금리인상 등 시장 상황도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투자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초대 대표였던 김철호 전 대표는 CVC가 설립된 2021년 12월 회사 떠나 작년 3월 효성그룹에 합류했다. 그는 현재 효성벤처스 대표로 활발한 투자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일진투자파트너스는 작년 6월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1년간 미투자’를 이유로 시정 명령을 받기도 했다. 1년간 미투자는 투자활동 관련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1항 제4호 위반에 해당한다. 해당 법률에 따르면 창업투자회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1년 이상 관련 규정에 따라 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받게 된다. 

    CVC는 일반적으로 기업이 대주주인 벤처캐피탈(VC)을 말한다. 정부는 대기업집단이 대주주인 VC를 CVC로 보고 있다. 그룹 전체 성장 목표에 맞춰 신기술을 확보하거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를 찾는 등 전략적 역할을 한다. 신사업 선봉장인 셈이다. 

    그 어느 때보다 신사업 발굴이 시급한 일진그룹에 신사업을 발굴하는 CVC도 개점휴업에 들어가면서 미래 먹거리 발굴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롯데그룹에 머티리얼즈를 매각한 일진그룹은 그 어느때보다 신사업 육성 방향을 논의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이다. 현재 하이솔루스(수소모빌리티), 에스앤티(바이오) 등이 머티리얼즈를 이을 신사업으로 꼽히지만 빈자리를 채우기엔 미미한 수준이다. 

    9일 종가기준 일진머티리얼즈의 시가총액은 2조5960억원으로 코스피 112위다. 그러나 일진하이솔루스의 경우 시총 1조1257억원, 코스피 203위로 머티리얼즈의 반에 불과하다. 일진에스앤티의 경우 상장조차 하지 않았다. 

    매출과 영업익으로 따져봐도 마찬가지다. 2021년 말 기준 일진머티리얼즈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6889억원, 699억원이다. 같은기간 일진하이솔루스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1177억원, 98억원을 기록했다. 일진에스앤티는 수년째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2021년 한해에만 64억5000만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특히 허진규 회장이 신년사를 통해 신성장 동력 확보를 주문한 바 있어 향후 일진투자파트너스의 거취가 주목된다.

    허진규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일진그룹은 초심으로 돌아가 인재를 양성하고 신제품을 개발해 그룹 경쟁력을 한층 강화해야겠다. 적극적인 M&A와 신기술 개발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모빌리티, 바이오, 에너지, 원전,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의 분야를 거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