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시공사간 '진흙탕싸움'…공기연장·분담금가중 우려전문성·자금력 갖춘 신탁방식…속도 높이고 투명성 제고증액요구 빗발치자 서울 6개조합 신탁사대상 사업설명회
  • ▲ 정비사업 조합과 시공사간 갈등으로 6개월간 공사가 중단됐던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221016 ⓒ연합뉴스
    ▲ 정비사업 조합과 시공사간 갈등으로 6개월간 공사가 중단됐던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221016 ⓒ연합뉴스
    "오랫동안 재개발추진이 중단돼 왔던 만큼 하루라도 빨리 지체없이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다 보니 신탁방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조합방식으로는 조합장을 뽑는데 적어도 6개월이 걸리고 내분이라도 생기면 그만큼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많아 20년 넘게 추진위상태에 있는 곳들도 있죠. 시간이 곧 비용이고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조합원 분담으로 이어지니까 전문가가 이끄는 신탁방식이 낫다는 판단에 '신통기획' 사업지가 되자마자 신탁사와 접촉했습니다.(강대선 창신10구역 재개발 추진위원장)" 

    부동산경기가 꺾이고 재건축·재개발사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신탁방식 정비사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조합방식 사업지에서 △공사비인상 △공사중단 △추가분담금 등 이슈가 잇따르자 시공사와 협상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안정적인 자금력 확보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한 서울 도봉구 창동 '창동상아1차'는 8일 KB부동산신탁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신탁방식 재개발을 위한 사업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지난해 1월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 조건부 재건축(D등급) 판정을 받은지 약 5개월만이다.

    창동상아1차 재건축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재건축 안전진단 최종통과 통보를 받자마자 사업시행자 지정동의서 징구절차에 들어갔다"며 "이르면 상반기중 정비구역지정이 완료된후 KB신탁과 정식 사업시행자 계약을 맺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민간 재건축·재개발사업은 크게 조합·신탁 방식으로 나뉜다. 조합방식은 토지·주택 등 소유자들이 조합을 꾸려 자금조달부터 △시공사선정 △인허가 △분양 등 모든과정을 직접 시행하는 반면 신탁방식은 신탁사가 수수료를 받고 토지·주택 등 소유자를 대신해 사업을 진행한다. 다만 총분양가 최대 4%에 달하는 신탁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이미 사업이 진전된 단지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공작아파트'는 지난해 11월 여의도내 재건축사업 최초로 정비계획결정 및 정비구역지정 고시를 받은데 이어 지난달 KB신탁을 사업시행자로 정했다.

    신탁방식을 선택하는 재건축 추진단지들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노원구 '상계한신3차' △종로구 '창신10구역' △금천구 '남서울 럭키' △강서구 '마곡 신안빌라' △동작구 '상도14구역' △양천구 '신월시영' 등 서울시내 정비사업 추진단지들이 최근 한달간 신탁사를 상대로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14단지' 재건축 추진위는 지난달말 우선협상대상 신탁사선정 입찰공고를 내기도 했다.

    신탁방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선 조합내 비리나 갈등으로 사업이 지체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사업속도가 늦어질수록 비용부담이 커져 다소 비용은 들더라도 전문가가 관리해주는 신탁방식이 유리하다는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

    또한 최근 건설사가 자재비 상승 등으로 공사비인상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가운데 전문성이 부족한 조합이 공사비 관련 협상을 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검증을 의뢰한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 서초구 방배동 신성빌라를 재건축하는 '방배 센트레빌 프리제' 경우 공사비 증액 문제로 한달 가까이 공사를 중단하기도 했다. 양측은 2020년 11월 3.3㎡당 공사비 약 712만원에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시공사인 동부건설이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면서 이견이 발생해 올 1월초부터 약 한달간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공사는 2월1일부터 재개된 상태다. 

    서초동 신동아 재건축조합도 2017년 8월 시공사선정 당시 DL이앤씨와 3.3㎡당 공사비를 474만원으로 정했으나 이번에 시공사 측에서 3.3㎡당 750만~780만원대로 올려 달라고 요구하면서 고심에 빠졌다.

    서울시내 한 재건축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재건축에 동의한 주민 80%가 신탁방식 재건축에 찬성했다"며 "소유자들 연령대가 어려지면서 수수료를 지불하더라도 전문적이고 투명하게 사업진행이 가능한 신탁방식을 선호하는 비율이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둔촌주공 등 조합문제로 사업이 늦어진 곳들이 반면교사가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신탁사가 관리하는 정비사업장에서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도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건설사 입장에서는 불리하지만 조합원 입장에서는 신탁방식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분양시장 침체와 PF대출 금리인상으로 사업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신탁사가 사업을 맡으면 유동성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 신탁사 자체자금 또는 신용보강을 통해 원활한 자금조달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코람코자산신탁 관계자는 "대주단 등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비전문적인 조합보다 신탁사가 사업성을 담보하는 단지에 사업비대출을 해줄 수밖에 없다"며 "그동안 신탁방식 사업에 대해 논의하던 노후단지들도 최근 들어 적극적인 태도로 협상에 나서는 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토지신탁 관계자는 "강남권 정비사업에서 공사비 증액 등 이슈가 늘어나면서 대안으로 신탁방식을 찾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며 "조합방식이 주를 이루던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