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연내 입법화"이자채권 면제, 담보비율 제한 등 전문가 "기존 법 개정하면 될 일… 입법 만능 우려"
  • ▲ 서울 종로구의 한 외벽에 카드대출 안내 광고가 붙어 있다. 
 ⓒ박지수 기자
    ▲ 서울 종로구의 한 외벽에 카드대출 안내 광고가 붙어 있다. ⓒ박지수 기자
    연체율 상승에 따라 채무자보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벌써부터 과잉보호 논란이 일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안(채무자보호법)을 연내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와 논의 중이다. 해당 법률은 그간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에 세 차례 상정됐으나, 다른 안건에 밀려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채무자보호법은 앞서 이전 정부에서 '소비자신용법'이라는 이름으로 입법이 추진됐지만, 법제처 심사가 길어지면서 무산된 바 있다.  

    이에 금융위는 지난해 12월 유사한 내용을 담은 법안을 재차 발의했고 국회에 반년째 계류 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리 인상에 따라 부실채권 급증, 연체율 상승 등을 미리 고려해 지난해 말부터 국회에 제출했지만, 논의가 늦어지고 있다"며 "올 하반기 안에 해당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 채무자보호법… 연체부담↓ 채무자 보호↑ 

    채무자보호법에는 취약차주의 연체부담을 크게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상 '전체 채무'에 부과했던 연체이자를 '지연된 이자'로 한정하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월 20만 원의 이자를 납입하는 조건으로 은행에 2000만 원을 빌린 뒤 두 달치 이자 40만 원을 연체한 경우 현재는 2000만 원 전체에 대한 연체이자를 부담해야 하지만, 채무자보호법이 시행되면 두 달 치 이자 40만 원에 대한 연체이자만 지불하면 된다.

    또 채무자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금융기관이 연체채권을 대부업체 등 추심업체에 매각하거나 주택을 경매에 넘기는 경우, 채무자에게 채무조정 신청 기회 등을 미리 통지해야 한다. 

    채무자가 채무조정에 응할 경우, 해당 기간 금융기관은 채권 매각이나 주택 경매 등을 통한 추심이 불가능하다. 추심업자가 채무자에게 채무 이행을 독촉하는 연락 횟수도 제한하는 규정을 추가하는 등 추심 행위에 대한 법적 가이드라인도 대폭 강화된다.

    그러나 해당 법안이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분석이다. 가장 문제되는 조항은 '제9조 장래 이자채권 면제'와 '제28조 담보조달비율 제한'이다. 

    ◆이자채권 전액 면제… 헌법재판소 해석과 상충

    '이자채권 면제'는 은행, 대부업자 등 '금전의 대부를 업(業)으로 하는 자'가 개인에 대한 대출채권을 양도하기 전 장래에 발생할 이자채권을 면제하고 있다. 보통 금융기관에서 연체가 6개월 정도 지속되는 경우 대출 채권을 매각하는데, 해당 조항에 따르면 고의로 연체했을 때 오히려 이자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금융기관은 해당 손해를 이자율이나 각종 수수료 재조정을 통해 일반 고객으로부터 보충할 수 있기 때문에 소수의 연체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해 다수의 성실 채무자가 금전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헌법재판소는 앞서 민법 제379조의 법정이율 관련 위헌소원에 대한 결정에서 법정이자는 채무자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합헌'으로 판단한 바 있다.(헌법재판소 2017. 5. 25. 선고 2015헌바421 결정)

    당시 이자를 '금전 보유에 대한 이익'으로 정의했는데, 제정안은 단지 채권의 회수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이자채권 전체를 면제하면서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이자의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채권보유자의 과도한 재산 증식을 막겠다는 입법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이자채권 전부를 면제하도록 규정하면서 채권 보유자의 금전 보유의 이익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잉 입법이라는 주장이다.

    상법 제 54조는 연 6%의 이자를 인정하고 민법 제 379조는 연 5%의 이자를 법률로써 보장해 금전소비대차의 거래 질서를 수호하고 있다. 또 정부가 지난 2020년 12월 발의한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서도 상사채권에 대해 연 6% 이자율을 보장하는 등 기존 법률 및 계류 중인 타 법안과도 상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전문 변호사는 "재산권 및 직업 수행의 자유가 침해되면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성이 존재한다"면서 "타 법률에서 인정하는 최소한의 이자율을 새로운 법률의 입법으로 소멸시키는 것은 재산권 침해 및 법적 안정성 훼손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담보조달비율 75% 제한… 과한 '영업규제'

    '제28조 담보조달비율 제한'은 채무자를 보호하는 법안에서 뜬금없이 영업행위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담보조달비율은 대부업자가 대출 채권을 사오기 위해 차입을 제한하는 규정으로 '부동산의 LTV'와 유사하다.

    대부업체들이 채권 매입 자금을 마련할 때 담보로 조달할 수 있는 비율을 현재보다 5%포인트 낮춘 75% 이내로 규정하면서 매입채권추심업권의 총자산 한도 비율은 약 4배가 된다. 채권매입추심업자는 연체채권 매입에 따른 자기자본, 즉 자기 돈이 많이 투입되기 때문에 비용이 더 크게 소요된다.

    이는 ▲상호저축은행 14.2배 ▲여신전문금융회사 10배 ▲상호금융(신협)은 20배 등 타 업권 대비 지난친 영업규제라는 지적이다.

    대출금을 과도하게 차입해 조달하면 과잉추심 등의 유인이 증가한다는 견해를 바탕으로 도입된 항목인데,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대부업권의 민원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채권 매입액에 자기자본 비율이 올라갈수록 개인 돈을 많이 들인 업자들의 추심 강도가 높아질 수 있고 이는 채무자 보호 측면에서 법안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대부업체 관계자는 "대출채권은 무담보 채권, 담보가 있는 채권, 채무자가 파산한 조정채권 등 다양하고 종류에 따라 회수율도 다른데 일률적으로 75%의 LTV를 설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토로했다.

    금융 전문 변호사는 "채무자보호법은 '금융판 임대차보호법'으로 채권자와 일반 채무자의 희생을 전제로 채무자를 과잉 보호하는 법안이다"면서 "금융위는 과거 '소비자신용법'을 이름만 바꿔서 추진하고 있는데 이전 정부에서 제안한 법률이라 그런지 국회 여야 의원 모두 꼼꼼한 검토를 할 동기가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필요성과 타당성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데 이루어졌는지 의문이다"며 "금융소비자보호법을 개정하는 방법도 있는데 새로운 법안을 제정하는 것은 입법 만능주의에 불과하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