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 명가로 자리매김 '호기내과' 교수 타이틀 떼고 동네병원으로 향한 이유갈 곳 없는 환자들 포기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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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더 가까운 곳에서 환자를 마주하는 동네 의사를 만납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건강 문제도 바닥을 단단하게 다져야 큰일이 생겨도 버티는 힘이 생깁니다. 대형병원을 찾기 전 주변에서 당신을 돌봐주는 의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진정성을 갖고 환자를 대하는 이들을 선정해 '우리동네名醫'로 부르려 합니다.83년 역사의 서울백병원이 누적된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지난 8월 말 문을 닫았다. 공식 절차는 밟았으나 환자를 향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수년에서 수십 년까지 병원에 다닌 환자들은 갈 곳을 잃었다.서울백병원장 출신이자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코로나19 등 호흡기 전문가로 분류되는 염호기 교수는 고민에 휩싸였다. 폐원을 막아야 환자를 계속 볼 수 있기에 병원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후배 의사들은 그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켜세웠지만 무너진 댐을 막을 수 없었다."전공의 시절부터 따지면 35년을 근무했으니 제 삶의 전부였던 곳이죠. 그 공간을 잃는다는 허탈감도 있었지만, 지난여름 내내 환자들 얼굴을 보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이분들에게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안내하는 것이 참 괴로운 일이었습니다."고뇌는 깊어졌지만 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그를 원하는 곳이 많았다. 교수로서 영예로운 은퇴도 가능했고 다른 병원에서 와달라는 요청도 숱하게 받았다. 공공기관장으로도 언급이 됐었다. 환갑을 넘은 나이에 오히려 더 좋은 조건이 붙었다.그러나 그의 선택은 예상과는 다른 정반대로 향했다. 늘그막에 동네의원 원장으로 개원을 결정한 것이다. 교수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의사로 제2의 인생을 택했다."감투는 벗는 결정은 어렵지 않았어요. 뉴스로 폐원 소식을 접한 환자가 건넨 장문의 감사 편지, 고령 환자가 흘린 아쉬움의 눈물은 내가 편한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위한 의사로 남아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한 근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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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백병원 폐원 동시에 인근서 '호기내과' 개원그는 결국 일을 벌인다. 서울백병원 폐원 결정과 동시에 급하게 병원을 차려 환자를 직접 돌보기로 했다. 기존 환자들이 헤매지 않도록 을지로-명동을 벗어나지 않는 지역으로 한정했고 초고속으로 병원을 개원한다.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다.서울백병원에서 도보로 약 7분거리, 명동성당 인근 '호기내과'는 서울백병원 환자 공백을 대처하려고 만들어졌다. 염호기 원장의 호기를 따서 만들었지만 호(흡)기를 예상하는 언어적 유희도 함께 담겼다. 끝까지 환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지의 산물이기도 하다.인터뷰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환자는 밀려들었다. 한 고령의 천식 환자는 "이제 끝까지 날 책임져달라"고 했고 염 원장은 "당연히 그래야죠"라고 다짐했다. 문답은 짧았지만 환자와 의사와의 인연은 신뢰 관계로 수십 년간 이어졌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호기내과는 기존 환자들이 전국에서 올라오는 구조이기에 동네의원이지만 예약도 받고 있으며 검사부터 진단, 치료까지 한 번에 가능한 호흡기 진료체계를 갖췄다. 환자 동선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최적의 진료를 제공한다."천식과 COPD 환자들은 계속 관리가 필요하기에 대학병원서 근무하면서도 환자중심 의료체계에 대한 고민을 중점적으로 했고 이를 개원해서도 적용하려고 했습니다. 원칙을 준용하며 환자만족도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진료를 볼 겁니다."대학병원장 출신의 교수이자 각종 의료 관련 단체의 수장을 맡았던 그가 모든 타이틀을 내려놓고 개원가 원장으로 돌아섰다. 혹자는 무리한 결정이었다고 하지만 그는 이 선택에 후회가 없다고 한다."인생에서 후회가 생기는 것은 올바른 판단임을 알면서도 포기하는 것입니다. 다소 어렵더라도 환자를 위한 길이었음을 확신하기에 의사로서의 인생을 이곳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기존 호흡기 질환자 진료와 코로나19 백신접종률 지표를 뒤적이며 진료실에서 고민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은 우리동네名醫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