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喜壽) 맞은 의사의 사명감… 연구는 계속된다피부과 입국 50년, 모든 것이 변했어도 초심은 그대로피부미용 이전 난치성 만성질환의 보루로 남아야 건선 명의가 아들과 함께 근무 중인 '인샤인피부과의원'
  • 윤재일 인샤인피부과의원 원장. ⓒ정상윤 기자
    ▲ 윤재일 인샤인피부과의원 원장. ⓒ정상윤 기자
    [편집자주] 더 가까운 곳에서 환자를 마주하는 동네 의사를 만납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건강 문제도 바닥을 단단하게 다져야 큰일이 생겨도 버티는 힘이 생깁니다. 대형병원을 찾기 전 주변에서 당신을 돌봐주는 의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진정성을 갖고 환자를 대하는 이들을 선정해 '우리동네名醫'로 부르려 합니다. 

    전국 대학병원 교수 중에서 윤재일 피부과 전문의는 대기 환자가 가장 많았다. 불모지였던 난치성 만성 피부질환인 건선을 택했고 1982년 서울대병원에서 건선클리닉을 열어 치료체계를 구축해 나갔다. 이후 국내를 넘어 세계적 권위자로 등극했다. 길었던 전성기는 무척이나 바빴다. 

    이제 은퇴한 지 10년이 넘어 희수(喜壽)를 맞은 노(老) 의사가 됐지만 아들인 윤성환 원장이 강남 역삼동에 개원한 인샤인피부과의원에서 여전히 월, 목 진료를 하고 있다. 체력적 부담 탓에 환자를 매일 보는 것은 어려워도 본인을 찾는 이들에게 답을 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은 견고하다. 

    그는 과거의 명성만을 기억하며 '라떼'를 반복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진료실에 최신의 자료가 업데이트된다는 것이 증거였다. 윤재일 원장의 열정은 논문을 들여다보는 눈빛에서 되살아난다.

    "이 책을 보셨나요? 3차 개정판이 나왔어요. 그동안 바뀐 건선 치료법을 전부 아우르려고 했지요. 과거와 달리 환자들은 많은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얻고 있지만 지침이 될만한 기준을 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죠." 

    그가 건넨 책은 '윤재일 박사의 건선 클리닉 개정 3판'이었다. 지난 1998년 제1판을 출간했고 2004년 개정판에 이어 2012년 개정 2판을 냈다. 그 후 10년 만인 지난해에 그동안 개발된 새로운 치료와 관리법 등을 추가한 개정판을 낸 것이다. 

    "건강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10년 뒤인 80대 중반이 되는 해에 4차 개정판을 내는 것이 목표예요. 그때까지 환자들과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많은 얘기를 들어주는 의사로 계속 남아있고 싶습니다." 

    이는 건선 환자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예전 한 일간지에서 전국 30여 개 대학병원의 진료 대기 현황을 분석했을 때 그만이 유일하게 '1년 이상'이 걸렸었다. 많은 수의 환자들이 진료를 빨리 보고 싶다고 호소했지만 당시엔 물리적으로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들과 함께 개원가 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이 부채 의식을 해결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맘이 놓인다는 그다.

    윤 원장은 환자들을 계속 돌보면서 환자들을 위한 지침서 추가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으며 임상증상을 토대로 건선의 치료지침에 대한 연구도 멈추지 않고 있다. 2012년 서울의대 은퇴 이후 매년 한 편 이상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 윤재일 원장이 그를 대표하는 치료법 중 하나인 광선치료기기 가동을 준비 중이다. ⓒ정상윤 기자
    ▲ 윤재일 원장이 그를 대표하는 치료법 중 하나인 광선치료기기 가동을 준비 중이다. ⓒ정상윤 기자
    ◆ 피부과 입국 50년, 초심은 그대로 

    그가 서울대병원 피부과에 입국한 지 50년이 흘렀다. 1973년 피부과 레지던트 1년 차 윤재일은 백발이 성성한 개원가 원장으로 2023년을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가치관은 그대로다. 

    "요즘은 피부과의 인기가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라고 해서 하늘을 찌르지만 제가 막 피부과 의사로 걸음을 떼던 시기엔 그렇지 않았어요. 난치성 질환을 주로 봐야 해서 기피하는 경향도 있었죠. 그런데 그게 오히려 좋았어요. 할 일이 많을 거라고 확신했었죠."

    그가 서울대병원 주임교수직을 수행했던 90년대나 돼서야 피부과의 인기가 올라갔고 점차 피부 미용 시장의 확장으로 현재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건선과 같은 난치성 만성질환은 존재하고 이를 책임질 피부과 의사들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첫 입원환자는 물론 당시 열악했던 진료지침이나 쓸 수 있는 약제의 한계도 기억이 납니다. 이를 위해 건선에 광선치료를 집중해야 했고 '광의학' 교과서를 펴낸 것은 구체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였죠." 

    실제 윤 원장은 서울대병원 건선클리닉에서 국내 최초로 임상시험을 통해 발표한 비타민 D연고, 311mm 단일파장광치료법을 시작했다. 이후 나온 면역억제제인 사이클로스포린을 비롯해 스텔라라 등 생물학제제 연구에 참여했고 건선 치료의 필수 옵션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지금도 환자를 돌보고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는 50년 전 초심에서 비롯된다. 난치성 질환을 책임져야 하는 피부과 전문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