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위조해 '고객 대출금' 100억 빼돌려2년 전엔 700억 횡령…내부통제 강화 헛구호직원 일탈이라지만 횡령사고 수습 중에도 잇단 사고책무구조도 상 'CEO 책임 강화' 주장에 힘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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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은행 제공.
    관리 책임을 명확히 하는 책무구조도가 다음 달 도입되는 가운데 CEO(최고경영자)와 관련 임원의 연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금융당국의 강력한 내부통제 주문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횡령 등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최근 우리은행 직원이 또 다시 고객 돈에 손을 댔다. 고객 대출금 100억원을 빼돌려 개인 투자에 사용했는데 그나마 결과도 좋지 못해 6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은행에서는 2년 전 700억원 규모의 횡령이 적발된 데 이어 같은 해 7월 가상자산 투자 관련 횡령, 지난해 공과금 횡령 등 금융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직원 일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수시로 횡령사고가 벌어지면 내부통제 시스템에 허점이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 '700억 사고' 우리은행서 또 100억 횡령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경상남도 김해 지점에서 100억원 상당의 고객 대출금이 횡령된 사실을 파악하고 조사에 돌입했다.

    직급이 대리인 해당 직원은 올 초부터 대출 신청서와 입금 관련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대출금을 빼돌린 후 암호화폐(가상자산) 등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손실액은 60억원으로 추정됐다.

    우리은행은 지난 5월 초 여신감리부 모니터링을 통해 해당 대출의 이상 징후를 확인하고 추가횡령을 차단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직원은 소명을 요구받는 과정에서 횡령 사실을 숨기기 어렵다고 판단해 지난 10일 경찰에 자수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현재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철저한 조사를 통해 대출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파악해 유사 사례의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말했다.

    늦게나마 내부통제 시스템이 작동해 더 큰 사고를 막았다는 설명이지만, 애초에 100억원 규모의 횡령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추가 발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우리은행에서 횡령사고가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2년 4월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소속 차장급 직원은 약 700억원가량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이 직원은 무려 8년 동안 8회에 걸쳐 돈을 빼돌렸다.

    또 같은 해 7월에는 가상자산에 투자하기 위해 약 9000만원을 빼돌린 직원이 적발됐고, 지난해에는 한 직원이 고객 공과금 5200만원 가량을 횡령해 본인의 전세 보증금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 ▲ 임종룡(왼쪽 아홉번째)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계열사 대표들이 지난해 10월 20일 우리금융 본사에서 윤리강령 준수 서약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우리금융그룹 제공.
    ▲ 임종룡(왼쪽 아홉번째)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계열사 대표들이 지난해 10월 20일 우리금융 본사에서 윤리강령 준수 서약을 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우리금융그룹 제공.
    ◇ 자정작용 기대 어려워…반복적 사고는 궁극적으로 CEO 책임

    이번 횡령사고는 우리은행이 700억원 규모의 역대급 횡령 사고 이후 내부통제 강화 방안을 내걸고 대외적인 선언에 나서는 등 사태 수습을 진행 중인 가운데 발생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긴장감이 높은 가운데 버젓이 횡령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자정작용이 가능할지 의문이 생기는 탓이다.

    우리금융그룹은 지난해 10월 임종룡 회장과 계열사 CEO들이 참석한 윤리강령 준수 서약식을 진행하고 대대적인 홍보를 한 바 있지만 이를 전후해서도 금융사고가 잇따랐다. 구체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경영진이 최종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내부통제 강화가 구호만 외치는 캠페인성 활동에 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자정작용에 대한 기대가 희미해지면서 다음 달 도입되는 책무구조도에서 CEO의 책임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책무구조도는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에 따라 책무를 구체적으로 배분한 내역을 기재한 문서다. 내부통제에 대한 담당 임원의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예방 효과를 높이려는 취지다. 

    금융지주와 은행은 유예기간 6개월을 포함해 내년 1월 3일까지 책무구조도를 마련해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책무구조도에 이름을 올린 임원은 제대로 된 내부통제를 책임질 의무가 발생하고 부실이 발생한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금융권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복안이지만 CEO의 총괄 관리 의무를 명확히 제시해야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오태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책무구조도 도입의 의의 및 향후과제’ 보고서를 통해  “인식된 위험요인을 바탕으로 CEO가 책임져야 할 시스템적 실패의 의미를 최대한 분명히 정의해야 한다"며 "이해상충 등으로 인해 임원 간 정보공유나 협력이 어려울 수 있는 영역을 중심으로 CEO의 관리책무를 더욱 구체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책무 배분이 너무 파편화되면 임원들의 책임의식이 다시 줄어들 수 있고 사고 발생 시 사실상 모든 임원진에 책임을 물어야 해 당국의 규명 부담도 커질 수 있다는 이유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이 우리은행 횡령 사건의 빈도와 규모를 고려해 책무구조도 도입과는 별개로 경영진에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금융감독원은 은행의 자체 검사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이날 즉각 검사 인력을 우리은행 김해 지점으로 급파해 현장검사에 돌입하기로 했다. 700억원대 횡령 사고로 홍역을 치른 우리은행에서 또 사고가 발생한 만큼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등을 세밀하게 따져본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