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박제된 '참의사' 리스트 … 참혹한 수준 폐쇄적 집단서 '부역자 꼬리표' 붙이기전공의는 자식과 같다던 선배 의사들, 눈·귀 닫고 모르쇠병원 떠나면 명단서 빠지는 조건 … 의료대란 부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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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대교수들은 전공의가 자식이라며 감쌌다. "아들(이탈 전공의)이 일진(정부)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됐다. 어미·아비(의대교수·선배의사)가 나서 일진 부모(대통령)를 만나야 한다"는 문장이 대표적이다. 이 표현에서 아들은 특정 인물이었으나 이탈 전공의 전체로 간주해보자. 

    아들은 일진에 당해 화가 난다며 자퇴한 후 알바를 구했다. 분명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 분노가 수업을 듣고 있는 모범생(남은 전공의)을 향한 학교폭력으로 이어졌다. 주동자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가담한 정황이 있었다. 어미·아비는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혼을 내기는커녕 눈치만 보고 있다. 

    의료대란 초기 논란이 된 문장을 현 상황에 빗댄 것으로 의대교수를 비롯한 선배 의사들의 취하고 있는 태도다. 열악한 상황에 남아 환자를 돌보는 소수는 제3자로 여겼고 의대증원 투쟁으로 현장을 떠난 다수는 자식으로 봤다. 

    이러한 환경은 마녀사냥을 하기 수월한 조건을 만들어줬다. 다수는 현장에서 근무 중인 소수를 '참의사'라고 비꼬며 이들의 개인정보를 온라인에 박제했다. 주소만 알면 일반인도 접속이 가능한 아카이브(기록 저장소) 형태의 블랙리스트 파장이 커졌다. 
  • ▲ 응급실 근무 의사 명단을 '응급실 부역'으로 공개한 후  '감사한 의사'로 비꼬고 있다. ⓒ온라인 아카이브 캡쳐
    ▲ 응급실 근무 의사 명단을 '응급실 부역'으로 공개한 후 '감사한 의사'로 비꼬고 있다. ⓒ온라인 아카이브 캡쳐
    추석 응급대란을 막기 위해 근무할 전공의, 군의관 등의 명단을 추려 '부역자' 꼬리표를 붙여 비난한 것은 물론 현장에 있는 전공의들의 신상, 가을턴 모집에 복귀한 인원들의 신상이 공개됐다. 

    동료의 제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민감한 내용들로 이메일과 출신 학교는 기본이며 휴대폰 번호에 지병, 외모 및 인성 평가, 연애사까지 총망라했다. 다만 운영자가 누구인지는 베일에 가려졌다. 이전에도 의사만 접속하는 사이트, 텔레그램 등에서 동일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사실상 블랙리스트가 아닌 '데스노트'다. 적힌 대상은 살아남지 못하도록 치욕을 준다. 전공의 중 누구라도 복귀 시엔 처단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현장에서 빠져나오면 이름을 지워준다는 조건도 달렸다.

    이는 폐쇄적 의사집단에서 왕따 조장을 넘어 환자 죽음을 방조하기 위해 자행된 행위다. 스토킹법 위반 등을 포함해 법리를 따져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만 남은 전공의들이 안정적 환경 속에서 근무가 가능해진다.

    집단이탈이 환자 피해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왜 나갔는지 억울한 심정을 아냐"며 울분을 토했던 선배 의사들이 이제는 눈과 귀를 닫고 모른 체 하고 있다. 붕괴 중인 의료체계를 버텨주는 남은 전공의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블랙리스트 작성·유포로 인해 의료계 갈등이 불거지고 국민들께 우려를 끼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면서도 "개인 간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양쪽 모두를 피해자로 만드는 파렴치한 수사가 벌어지고 있다"고 회피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응급실 파행은 의대증원 강행에 따른 정부 책임이 크다는 여론이 형성됐지만, 정작 응급실 근무를 못 하게 압박하는 데스노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상황은 반전됐다.

    한 환자단체는 추후 진료받지 않기 위한 선택권을 달라며 각 수련병원별 이탈 전공의 명단을 보건복지부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남은 전공의와 응급실 대란을 막기 위해 투입된 이들의 신상정보가 외부로 유출됐고 의사사회 내부에서 환자를 살린다고 부역자 낙인이 찍혔다. 이들에 대한 보호망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한국의료는 끝난다. 

    의협을 비롯해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 등 교수 단체 역시 의대증원 저지와 사직 전공의 보호만을 위한 주장을 펼칠 것이 아니라 남은 전공의를 지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도 남은 전공의들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도록 속도를 내야 한다. 동시에 철저한 수사로 재발 방지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