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조직적 차원에서 일관된 가계부채 정책 추진할 컨트롤타워 실종우왕좌왕 정책금융, 디딤돌‧전세 대출 놓고 국토부 vs 금융위 엇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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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이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단행했음에도 전 금융권이 일제히 대출 금리를 높이고 있다. 금융소비자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대출요건을 알아보느라 어지러울 지경이다. 대출시장이 이 같은 혼돈에 빠진 것은 가계대출 관리를 외치면서 정작 직접 규제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금융당국의 탓이 크다. 최근 전세대출과 정책대출에 대한 규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도 지나치게 외풍을 의식하고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지 못하면서 오락가락 행태를 보였다. 정책 번복이 거듭되다 보니 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진 모양새다. 일부 수요자들 사이에선 어차피 내년이 되면 다시 대출 여건이 좋아질 거란 기대까지 나온다. 금융당국의 대출정책 혼란상과 원인, 파장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국토교통부와 금융당국이 올 들어 가계부채 급증을 놓고 ‘네 탓 공방’을 반복하고 있다. 부처 간 충돌은 디딤돌대출 축소 번복에 이어 전세대출로 확산하고 있다. 

    ‘가계빚 관리’와 ‘주거 안정’ 중 우선 순위를 두고 대출 정책이 따로 놀면서 대출수요자와 시장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부처이기주의 팽배… 금융위, 가계부채 주도권 쟁탈전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토부 산하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전날 예정된 최대 7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 작업을 전격 중단했다. 이는 가계부채 관리를 담당하는 금융당국이 재검토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HUG는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통해 전세대출과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업무를 위한 자본확충을 계획했지만 금융당국은 HUG의 자본확충이 자칫 전세대출을 확대하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며 재검토를 요청했다. 

    국토부와 금융위는 앞서 디딤돌·버팀목 정책대출 공급을 놓고도 충돌했다. 국토부는 디딤돌 대출 한도를 축소하는 정책을 공지 없이 실시했다가 잠정 유예했다. 반면 비슷한 성격의 신생아특례대출은 대상을 확대키로 해 수요자의 혼란이 커진 상황이다. 섣부른 규제와 번복이 반복되며 금융소비자의 불안과 집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정책금융 공급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정책금융 공급 중단은 없을 거라며 정면 배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처 간 엇박자 속에 가계대출은 속절없이 불어났다. 같은 정책대출인데 국토부의 디딤돌·버팀목은 올 9월까지 30조원 늘었으나 금융위의 보금자리론은 16조원 감소하는 기현상도 나타났다.

    가계대출을 놓고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이 오락가락 메시지를 내놓은 점도 시장 혼선에 기름을 부었다. 

    올해 들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가계빚 관리를 위해 은행권 전반에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상을 유도했다.

    그러나 금감원의 관치(官治) 금리 기조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은행들 배만 불린다는 비판이 나오자 금융위가 제동을 걸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취임한 직후인 8월 금융위는 시장금리 통제를 풀고 대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강화로 가계대출 관리 대응을 유도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계부채 관리 책임을 진 금융위가 정책 추진에 있어 한때 주도권을 뺏겼고 재정, 금융, 주택에 대한 정부 정책의 컨트롤타워도 사실상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가계빚 관리 vs 저출생 극복’ 우선 순위 다투는 부처

    정부와 금융당국이 대출을 줄이려고 시도할 때마다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이유는 저출생 극복과 가계빚 관리라는 딜레마 때문이다. 

    저출산시대 결혼과 출생을 장려하려면 대출 지원책이 필요하지만 가계부채와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대출을 조여야 하는 상황이다. 

    상충하는 정책으로 인한 혼란을 막으려면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는 보다 정교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부처이기주의가 팽배한 상황을 개선하려면 국무총리가 나서서 부처 간 입장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책금융 공급을 점진적으로 줄이는 연착륙 방안을 추진하고, 직접적인 대출지원이 아닌 보증서대출 위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 교수는 “정책금융 기조를 바꿔야 한다면 유예기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줄여나가야 시장 혼란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책금융 대출을 주택도시기금 업무를 하는 수탁은행이 집행하는 직접적 지원방식이 아니라 대출 한도 내에서 정부가 부분 보증을 서 금리를 낮출 수 있도록 유도해 소비자들이 대출을 희망하는 시점에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게끔 해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