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브랜드 헤리티지 버리고 파격·혁신 택한 리브랜딩 전략으로 화제90년 전통 버린 파격적 변신에 자동차 애호가·소비자들은 날선 비판"브랜드 완전히 새롭게 재정립, 전통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했다"럭셔리 브랜드로서는 이례적으로 사회·정치적 입장 명확히 밝혀… 고객층 확대 전략
  • ▲ 재규어의 신규 레터링. ©재규어
    ▲ 재규어의 신규 레터링. ©재규어
    인도 타타모터스가 소유한 영국 대표 고급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Jaguar)의 리브랜딩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기존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과감히 버리고 파격과 혁신만을 내세운 재규어의 행보를 '실패'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인 가운데, 올해 실망스러운 브랜딩 활동을 펼친 코카콜라(Coca-Cola), 애플(Apple)의 실수와는 다르다는 전문가들의 새로운 분석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재규어는 지난 달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단행했다. 새로운 브랜드 로고 디자인과 레터링은 미니멀리즘을 강조했고, 리브랜딩 발표와 함께 공개된 브랜드 영상은 'Copy Nothing(아무것도 모방하지 말라)' 슬로건을 내세우며 재규어의 새로운 브랜드 전략과 방향성을 확실히 보여줬다.

    광고는 노랑과 빨강, 분홍, 주홍 등 강렬한 원색을 주로 사용했으며, 백인과 동양인, 흑인 등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성별의 모델을 등장시켜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했다. 또한 'create exuberant(생동감을 창조하라), live vivid(생생하게 살아라), delete ordinary(평범함을 지워라), break moulds(틀을 깨라), copy nothing(아무것도 모방하지 말라)' 등의 키워드를 전달하며 리브랜딩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기존 재규어 브랜드의 느낌은 온데간데없을뿐더러, 자동차 브랜드임에도 영상 어디에도 자동차 관련 이미지나 내용은 등장하지 않아 많은 이들의 의문을 자아냈다. 일론 머스크(Elon Musk) 테슬라(Tesla) 최고경영자(CEO)는 해당 영상에 "Do you sell cars?(자동차 파는 거 맞나요?)"라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재규어의 'Cony Nothing' 영상은 소셜미디어에서 1억60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성 면에서는 긍정적이었지만, "90년 전통을 가진 브랜드가 헤리티지를 버리고 워크(woke)로 나아가고 있다"는 날선 평가를 받으며 자동차 애호가들과 인플루언서, 소비자들의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다. '워크'는 영어 동사 'wake(잠에서 깨다)'의 과거형으로, 정치적 올바름(PC)과 진보 어젠다 및 문화를 통칭하는 의미이자 주로 진보 진영을 비꼬는 말로 쓰인다. 
  •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로돈 글로버(Rawdon Glover) 재규어 매니징 디렉터는 "소셜미디어 상의 '격렬한 편협성(a blaze of intolerance)'으로 인해 우리가 의도한 메시지가 사라졌다"며 "(리브랜딩 영상은) '워크'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로돈 매니징 디렉터는 "다른 브랜드들과 똑같이 행동하면 우리는 묻힐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일반적인 자동차 브랜드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우리 브랜드를 완전히 새로운 가격대에서 재정립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했다. 전통적인 자동차 브랜드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산티노 피에트로산티(Santino Pietrosanti) 재규어 UK 디렉터는 이번 리브랜딩에 대해 "우리는 단순히 새로운 자동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전환과 인간의 잠재력과 크리에이티비티를 포용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를 하고자 했다"며 "재규어는 항상 두려움을 모르는 오리지낼리티(originality)를 내세우며 그 어떤 것도 모방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이라고 성명을 통해 전했다. 

    그러면서 "재규어는 성소수자(LGBTQ+) 커뮤니티와 함께하며, 사람들의 개성이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는 공간에서 오리지낼리티와 크리에이티비티가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우리는 우리의 직원들을 소중히 여기며,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대표하는 다양하고 포용적이며 통합적인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헌신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게리 맥거번(Gerry McGovern) 재규어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 CCO) 또한 "(리브랜딩은) 재규어의 본질을 재구성한 결과로, 한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브랜드 가치를 되찾는 동시에 현시점의 오디언스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규어의 리브랜딩은 재규어의 인하우스 디자인팀이 담당했다. 
  • ▲ 재규어 리브랜딩. ©재규어
    ▲ 재규어 리브랜딩. ©재규어
    글로벌 광고 전문지 애드에이지(Ad Age)는 올해 브랜딩 활동에 실패한 대표 브랜드로 코카콜라와 애플, 재규어를 꼽았다. 코카콜라는 광고 캠페인에서 인공지능(AI)을 사용해 사람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영혼 없다"는 비판을 받았고, 애플은 기술이 인간의 크리에이티비티를 짓밝는 듯한 메시지를 담은 '크러쉬(Crush)' 광고로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재규어의 리브랜딩은 코카콜라나 애플이 저지른 실수와는 다르며, 이를 '실패'로 단정짓기엔 아직 이르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번 리브랜딩이 장기적으로 재규어 브랜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리브랜딩의 핵심은, 재규어가 럭셔리 브랜드로서는 이례적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사회·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1922년 설립된 재규어는 럭셔리 브랜드로서 그간 엘리트 집단으로 불리는 소수의 고객층을 타깃으로 브랜딩 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최근 100% 전기차 브랜드로의 전환을 선언하면서 브랜드 정체성은 물론, 고객층에도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규어의 리브랜딩이 전한 메시지는 더욱 다양하고 포괄적인 오디언스를 대상으로 한다. 고객층을 더욱 확대하겠다는 전략이 깔려있는 것이다.

    재규어 리브랜딩의 성패는 앞으로 재규어가 신차를 통해 증명해 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생동감있고 생생하며, 평범하지 않게 기존의 틀을 깬, 그 어떤 것도 모방하지 않은 재규어만의 혁신이 전기차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제시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 ▲ 재규어 전기차 콘셉트 모델 '타입 00'. ©재규어
    ▲ 재규어 전기차 콘셉트 모델 '타입 00'. ©재규어
    한편 리브랜딩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재규어는 최근 새로운 전기차 콘셉트 모델 '타입 00'을 공개했다. 영화 '아이언맨'의 헬멧을 닮은 '타입 00'은 한 번 충전으로 약 770km 주행이 가능하고 급속으로 200분이면 완충할 수 있다. '타입 00'의 판매 가격은 최소 12만 달러(약 1억 7000만원)로 예상되며 2026년쯤 판매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