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빌리티-밥캣 체제 그대로분할 통한 1.2조 자금 확보 차질 SMR 등 신사업 투자금 난감에너빌 투자 비중 2.9%→2.6%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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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그룹이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해 온 지배구조 개편안이 끝내 무산됐다. 비상계엄 여파로 두산에너빌리티 주가가 급락, 주주총회에서 합병안 통과가 요원해지며 계획 철회가 불가피했다. 개편 무산으로 두산그룹의 핵심 사업인 원전은 물론 신재생에너지 등 신사업 부문 경쟁력 강화에 차질이 우려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두는 방안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전날 전격 취소했다. 분할합병을 위해 오는 12일 예정했던 에너빌리티, 밥캣, 로보틱스의 임시 주총도 모두 철회했다. 이로써 지난 반년간 공들여온 사업재편 계획은 끝내 물거품이 됐다.

    앞서 지난 7월 두산그룹은 사업 시너지 극대화와 미래 경쟁력 제고를 위해 ‘클린에너지(에너빌리티·퓨얼셀)’, ‘스마트머신(로보틱스·밥캣)’, ‘반도체·첨단소재(테스나)’를 3대 축으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업중 구분 없이 혼재된 사업들을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사업끼리 모아 클러스터화하기 위해서다.

    에너빌리티를 사업회사와 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법인으로 인적분할한 뒤 신설법인 지분을 로보틱스에 넘기는 분할합병안은 그룹 사업재편의 핵심축이었다. 분할합병을 통해 에너빌리티는 본연의 에너지 사업에 집중하고, 밥캣과 로보틱스는 양사 시너지 극대화로 새롭게 도약한다는 포부였다.

    두산그룹의 이러한 사업재편 계획은 오는 12일 주총을 코앞에 두고 좌초됐다. 임시 주총을 9일 앞두고 터진 ‘계엄령 사태’로 대표 원전주인 에너빌리티 주가가 급락했고, 에너빌리티 지분 6.85%를 보유한 국민연금공단이 ‘주가’를 조건으로 사실상 기권 의사를 내비치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자진 철회가 불가피했다.

    두산그룹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와 윤석열 정부의 ‘원전 세일즈’에 힘입어 재건을 본격화했다. 체코 원전 수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해외 원전 수출 기대감에 힘입어 단박에 ‘윤석열 원전 수혜주’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정부가 추진 중인 원전 정책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며 상황이 급변했다.

    대외적 불확실성에다 개편 무산이란 암초로 사업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에너빌리티는 분할합병으로 밥캣 관련 차입금 7177억원, 미지급비용 66억원 등 총 7243억원의 부채를 로보틱스에 넘기고, 비영업용 자산 처분을 통한 4813억원의 현금 확보 등 총 1조2000억원 가량의 재무적 효과를 예상했다. 차입금 감소로 매년 수백억씩 발행하는 금융비용도 아낄 수 있었다.

    에너빌리티는 사업재편 이후 1조원을 원전 사업에 투자할 예정이었다. 체코 원전을 포함해 폴란드, UAE(아랍에미리트), 사우디, 영국 등에서 향후 5년간 총 10기 내외의 원전 수주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 밥캣 분할 외 자금 조달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추가적인 재무 부담 증가가 불가피하고 금융시장마저 불안해 상황이 녹록지 않다.

    에너빌리티의 투자 위축도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 에너빌리티 매출에서 유·무형자산취득액 기준 설비투자비용(CAPEX)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4.9%, 2022년 3.3%, 2023년 2.9%, 올 3분기 누적 2.6% 등 매년 줄고 있다. 지난 2015~2018년 당시 CAPEX 비중이 평균 6.2%를 기록한 점에 비춰 최근 수년간 투자 활동이 위축됐다.

    에너빌리티는 시간을 갖고 추가 투자자금 확보 등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두산그룹이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자로(SMR)와 가스터빈·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로봇 및 첨단기술을 차세대 핵심기술로 삼은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당 분야 우위 선점을 위해 지배구조 개편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는 합병분할 철회 이후 주주서한을 통해 “너무도 갑작스럽고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회사 역시 당장 본건 분할합병 철회와 관련해 대안을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도 “추가 투자자금 확보 방안과 이를 통한 성장 가속화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심중한 검토를 통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