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경영권 장악 시 사업 안정성 우려 확산"기존 사업 불확실성·기술 해외 유출 우려"당국도 제동…이복현 금감원장 "금융자본, 산업자본 지배 부작용 고민"
  • ▲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 뉴데일리 DB
    ▲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 뉴데일리 DB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참전한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로 글로벌 비철금속 시장에서 20년 넘게 시장 지배자적 위상을 누려온 고려아연 사업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MBK 측은 고려아연의 핵심기술을 유출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자회사 및 계열사 매각과 분리 매각, 중국 등 해외 업체와의 기술공유 및 기술연수 등으로 핵심 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로도 번지는 모습이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올 3분기 3조2066억원의 매출과 149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0% 가까이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6.5% 줄었다. 고려아연의 올해 3분기 연결기준 누계 매출액은 8조6401억원, 영업이익은 603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8.5%와 30.6% 증가했다. 

    고려아연과 영풍은 전세계 아연 생산량 1200만톤 중 10%를 책임지는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기업이다. 아연·연·동·은 등 기초 원자재를 반도체, 자동차, 조선, 전자·전기, 철강 등 주요 산업에 공급한다. 개별로 보면 고려아연이 64만톤, 영풍 36만톤, 썬메탈 20만톤 등이다.

    재계 28위 영풍그룹의 시작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년 후인 1949년부터 시작된다. 황해도 사리원 태생인 장병희 창업주와 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영풍기업사'를 세운다.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철강과 비철의 '소재 자립'을 지시했는데, 이때 영풍은 제련소를 짓기로 한다. 이때 만들어진 제련소가 1970년 국내 최초 아연 생산시설인 석포제련소다.

    1974년 탄생한 고려아연은 국익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회사다. 1973년 박정희 정부가 중화학공업과 기초소재산업을 육성하고자 울산광역시 온산읍에 대규모 비철금속 공업단지를 조성하고 기업들에 적극적인 투자를 주문했다. 이 단지에 제2제련소를 지어 생산능력을 높이고자 했던 영풍의 사업계획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지금의 고려아연 온산제련소가 탄생했다.

    고려아연과 영풍은 박정희 정부 시절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한 축을 담당했던 회사로 현재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사모펀드의 고려아연 인수, 기업가치 경쟁력 악화 우려

    업계에선 사모펀드인 MBK의 고려아연 인수가 국가 기간산업을 흔들리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 인수 후 기업가치를 높여 더 높은 가격에 매각하는 게 사모펀드의 주된 목적인 만큼 MBK가 기업 인수 후 무리하게 투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해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다수의 비철 제련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전략 자산으로, 기술의 해외 유출은 기간산업 경쟁력을 약화하고 국가 경제에도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최근 상황을 고려하면 국가적 기술 보호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 시 사실상 국내 아연 공급망은 독점 체제가 된다는 것도 우려의 지점이다. 경영권을 넘겨받은 MBK가 갑작스레 생산 물량을 줄이거나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견제할 수단이 사라진다. 향후 MBK가 엑시트(투자 회수)할 때 국외 자본이 경영권을 인수할 경우에는 국내 아연 공급망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특히 MBK에 일부 중국 자본이 참여하고 있어 핵심 기술산업의 해외매각 우려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MBK는 "고려아연의 해외 기술 유출은 없다"고 밝혔지만 분리매각이나 쪼개팔기, 자회사 및 계열사 매각 등 해외 매각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국익을 염두에 두고 탄생한 고려아연은 글로벌 비철금속 시장에서 절대적 지위를 갖고 있는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기업"이라면서 "단기간에 수익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아연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공급망 자체의 가격 인상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 합병은 법적으로 막을 순 없지만 모든 곳에 사모펀드가 자본주의만을 외치며 수익만을 좇는 일이 발생할 경우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국도 제동…"금융자본, 산업자본 지배 부작용 우려"

    금융당국도 사모펀드의 산업계 영향력 확대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12일 금융감독원은 PEF 운용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소집해 금융자본의 산업지배 관점에서 바람직한 역할과 책임에 관해 논의했다.

    함용일 부원장은 "PEF산업이 성장하면서 비교적 단기수익 창출이 목표인 PEF가 자칫 기업의 장기 성장 동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감독의 사각지대에서 대규모 타인 자금을 운용하는 과정에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고 지적했다.

    함 원장은 "최근 일부 PEF의 경영권 분쟁 참여, 소액주주와의 이해 상충 등 운용행위 역시 시장참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짚었다.

    앞서 지난달 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고려아연의 M&A를 시도 중인 MBK파트너스와 관련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지 2주 만이다. 

    당시 이 원장은 "과거에는 당국이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면 이제는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에 대한 부작용을 고민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원장은 "특정 산업군은 기간을 20~30년으로 길게 봐야 하는데 5년, 10년 이내에 사업을 정리해야 하는 형태의 구조를 가진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게 됐을 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주가치 훼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화두로 삼아서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