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1480원 돌파…금융위기 이후 최고수준탄핵정국·트럼프관세 등 불확실성 산재…1500원 전망도"외환시장 개입 지양…환율 방어하다 신흥국 외환위기"
  • 국회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자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80원을 뚫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 방침과 트럼프 2기 행정부 현실화에 더해 계엄·탄핵 정국의 불확실성이 맞물려 원화 가치가 폭락하고 있다. 대외 불확실성이 산재한 상황에서 환율이 장기적으로 1500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국내 경제에 부담을 주는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 27일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480원대에 올라섰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고, 더불어민주당이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추진에 나서면서 정국 불확실성이 재차 확대된 영향이다. 

    연준이 올해 마지막 회의에서 '매파적 금리 인하'를 단행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달러 강세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원화 약세는 유독 두드러진다.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 표결까지 앞둬 정치적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정국 불확실성 확대에 따라 원·달러 환율 상단을 1500원대까지 열어둬야 한다고 전망했다.

    29일 한국개발연구원(KDI)가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KDI는 "3~4%의 환율 변동은 통상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바 원 ·달러 환율의 1500원 도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통상적인 환율 변동선을 3∼4%로 본다면 환율은 큰 충격이 없다고 해도 1420∼1539원 수준에서 등락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갈수록 심화하는 국내 정국 혼란이 다른나라 통화 대비 한국 원화 가치를 가파르게 끌어내리고 있다는 평가다. 비상계엄 사태가 있던 지난 3일 이후에만 원화값이 4% 이상 급락했다.

    시장에서는 고환율과 통상환경 변화가 겹치며 한국 경제가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고 우려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1400원대 1차 저지선인 1425원과 2차 저지선인 1450원이 다 뚫린 상황"이라며 "지금 추세대로라면 외환보유액이 4100억달러대 이하로 떨어졌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3000억달러대까지 내려오면 상당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KDI·산업연구원·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국책연구기관들은 대외 불확실성이 산재한 상황에서 환율이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는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KDI는 최근 환율이 국내 경제의 부정적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KDI는 "통상 환율 상승은 수출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그 영향을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KIEP는 달러 강세 등 대외 요인에 의해 주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이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기존 달러화 흐름보다 더 큰 폭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국내 정치적 불안이 원화 약세를 견인해 환율을 더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고환율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경기 전망도 어둡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6일 발표한 업종별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전자·통신(105.3)과 의약품(100)을 제외한 나머지 8개 제조업종은 내년 1월 업황 악화가 전망됐다. 

    과거에 비해 가격보다는 기술 경쟁에 주력하고 있는 추세로 수출기업들의 환차익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산업연구원은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이 10% 하락하면 대규모 기업집단의 영업이익률은 0.29%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김태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대규모기업집단의 수출전략이 점차 가격경쟁에서 기술경쟁으로 변화하면서 원화 가치 하락 시 수출가격 하락으로 매출이 증대하는 매출 효과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가 자율변동 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경제 기초 여건과 괴리된 환율 수준을 유지하면 외환시장이 오히려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게 KDI의 평가다.

    KDI는 다수 신흥국에서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소진하다가 외환위기 발생한 경험이 있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고 짚었다. 

    KIEP는 "대외신인도 관리 강화, 외환 수급 안정, 금융안전망 강화 등 다각적인 대응 노력이 필요하다"며 "통화정책보다는 금융정책·외환시장 개입 등을 통해 우선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