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들 연초부터 내실‧효율‧리스크 관리 강조기업 규모‧신용 따른 대출 양극화 심화할 듯중기, 경기침체‧고환율에 ‘대출한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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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시중은행장들이 연초부터 성장을 위한 영업 강화보다 건전성 관리를 강조하며 담보‧우량차주 중심의 대출 포트폴리오 강화를 예고했다.지난달 계엄사태 이후 이어지는 국내 정치 불안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 다양한 대내외 위기 요인이 중첩되면서 높아진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문제는 최근 시장 여건 상 회사채 발행이 여의치 않은 가운데 은행 대출마저 대기업 등 우량차주에만 집중될 경우 경기침체와 고환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자금사정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옅어진 ‘기업금융 강화’ 기조… 건전성 부메랑 대비6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장들은 최근 신년사와 취임사를 통해 공통적으로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대한 위기감을 드러내며 공격적인 대출자산 확대보다 선별 영업을 통한 안정적 수익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대표적으로 지난해 기업대출 영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올해 자본 효율성을 강조하고 나섰다.정 행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기존 성장 방식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함께 일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며 “자산성장 중심의 영업전략에 더해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통한 질적 성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자본 효율성을 높이는 데 역량을 집중해 비효율적인 사업과 자산은 과감히 정리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 영역에 자원을 집중 투입하겠다”고 밝혔다.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올해 새롭게 부임한 신임 행장들도 ‘리딩뱅크’ ‘순이익 1위’ 등 실적 목표를 내세운 취임 일성 대신 내실을 강조했다.이호성 하나은행장은 취임사에서 3대 핵심 전략 중 하나로 ‘안정적 수익기반 구축을 위한 사업모델 혁신’을 제시하며 수년간 이어온 기업금융 중심의 성장전략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자타공인 기업금융 전문가로 꼽히는 정진완 우리은행장 역시 영업력 강화에 대한 메시지 대신 신뢰‧고객중심‧혁신을 3대 경영키워드로 제시했다.이환주 국민은행장과 강태영 농협은행장도 각각 취임사를 통해 ‘조화와 균형을 통한 성장’ ‘선제적 리스크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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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침체‧고환율에 ‘연체급증’… 중기대출 옥죄기 본격화은행권 신년사에서 기업금융 강화 기조가 옅어짐에 따라 기업 규모와 신용도 등에 따른 대출 양극화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올해 은행들은 대기업 등 우량 자산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하고 건전성 관리에 부담을 주는 중소기업에 대해선 ‘대출 옥죄기’를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지난해 ‘영업 전쟁’으로 불릴 만큼 치열한 기업고객 유치 경쟁을 벌였으나 연말 환율급등에 자본건전성 비상등이 켜지자 급격히 대출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이들 은행은 기업대출 잔액을 8조9726억원이나 축소했다. 지난 2023년 12월 기록했던 감소폭(1조6109억원)의 5배가 넘는 수준이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도 5대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7759억원 순감했다.특히 지난해 기업금융 강화 기조 속에서도 중소기업 대출 증가폭은 예년보다 오히려 축소됐다. 지난해 5대 은행의 중기대출 증가폭은 31조3435억원으로 2023년 32조6718억원, 2022년 44조7351억원보다 작았다.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진 못한 이유는 연체 증가 추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 5대 은행에서 발생한 중소기업 대출 신규연체액(1개월 이상)은 3조1621억원으로 통계 작성 이후 분기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은행들은 고환율·고물가에 앞으로 중소기업의 영업 환경이 더욱 악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무작정 대출을 늘렸다가는 이자 받기는커녕 부실채권 규모만 더 커질 수 있다.금융권 관계자는 “계엄사태 전에도 한국은행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정도로 경기 전망이 암울했다”면서 “상생금융 차원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지만 은행들이 적극적인 영업에 나설 순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