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세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투자자 자금 해외 이탈 우려 높아져사후 규제에 사전 검토 미흡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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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해외주식형 토탈리턴(TR)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을 사실상 금지하면서 자산운용업계에 혼란이 일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금지 조치가 투자자 자금 이탈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운용업계의 상품 혁신성과 ETF 시장 성장도 저해할 수 있어 국내 자본시장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22일 한국거래소, 코스콤 등에 따르면 21일 기준 국내 상장된 7개 해외주식형 TR ETF의 순자산총액 규모는 6조2528억원으로 지난 16일(6조1802억원)보다 1.18% 늘어났다.

    상품별로 살펴보면 ▲KODEX 미국나스닥100TR(+2.42%·432억원) ▲KODEX 미국S&P500TR(+0.42%·152억원) ▲TIGER 미국S&P500TR(H)(+2.75%·98억원) ▲TIGER 미국나스닥100TR(H)(+1.66%·38억원) ▲TIGER 미국나스닥100TR채권혼합Fn(+0.62%·9억8434만원)은 증가한 반면 ‘RISE 미국고정배당우선증권 TR’과 ‘SOL 미국배당다우존스TR’은 각각 0.95%(-1억7652만원), 0.56%(-1억9934만원)씩 감소했다.

    이는 오는 7월부터 해외주식형 TR ETF 운용이 금지되기 전 복리 효과와 절세 효과를 누리기 위한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유입된 것으로 풀이된다.

    TR형 상품은 투자자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대신 그 재원을 자동으로 재투자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배당금을 자동 투자해 장기 투자 시 ‘복리 효과’가 커지고 금융상품을 매도하기 전까지 15.4%에 달하는 배당소득세를 내지 않아 ‘과세이연 효과’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지난 16일 세법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통해 해외주식형 TR ETF에 대한 분배유보 범위를 조정하기로 했다. 이자·배당소득 발생 시 매년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원칙에 TR ETF의 운용 방식은 맞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폐지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바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TR ETF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운용 방식이 바뀌는 것”이라며 “소득세를 떼고 재투자하는 식으로 변경되는 것으로 상품 운용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자산운용업계는 난색을 표했다. 그간 해외주식형 TR ETF 판매를 위해 복리 효과와 과세이연 등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왔지만, 프라이스리턴(PR)형과의 차별점이 사라져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전부터 세법 예외 규정을 과도하게 해석했다고 판단했다면 관련 상품들이 출시되기 전 세밀한 검토를 통해 막았어야 했다”며 “이미 수년전부터 판매된 해외주식형 TR ETF를 아무런 정책적 대안·지원 없이 사후 규제를 통해 금지하면서 운용사·투자자 피해가 불가피해졌다”고 지적했다.

    다만, 기재부는 국내 주식형 TR ETF의 경우 이자·배당 분배의 유보를 허용해 수익을 매년 분배할 수도, 이연을 선택할 수도 있게 했다. 국내 ETF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고 한국 증시 활성화를 지원한다는 목적이다.

    반면 시장에서는 해외주식형 TR ETF 금지 조치가 오히려 국내 자본시장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먼저 자산운용업계의 성장이 더뎌질 수 있다. 국내 ETF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자산운용사들은 타사와의 차별성을 갖기 위해 새로운 유형의 상품을 개발·공급해왔지만, 정부의 급작스러운 사후 규제가 지속된다면 한정된 상품 파이에서의 운용사 간 경쟁이 심화할 것이란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투자업계는 규제산업인 만큼 운용사들은 신규 사업이나 상품 개발 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면서도 굉장히 보수적으로 접근하는데, 정부의 규제로 피해가 발생한다면 향후 신성장 동력이 약화하고 혁신적 상품 개발에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며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ETF 시장에서의 존재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타 상품들과의 차별성이 사라지면서 투자처를 옮기려는 수요가 증가할 수 있고 특히 이미 환율 변동 리스크를 지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경우 이자소득세·배당소득세 리스크까지 가중된다면 국내 시장을 떠날 가능성이 있다.

    투자자들도 해외주식형 TR ETF 금지에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TR ETF의 복리 효과와 절세 효과 등이 소멸한 데다 동일 종목을 자동으로 재투자하는 방식에서 수동 재투자로 변경됨에 따라 불편함도 발생하게 돼서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측면에서 한순간에 TR ETF의 베네핏이 사라지고 투자 방식도 바뀌게 된 것”이라며 “최근 해외주식 투자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고 운용 규모도 6조원이 넘는 만큼 많은 투자자의 불만이 생겨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해외주식형 TR ETF를 운용 중인 자산운용사들은 향후 운용 방법 변경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이다. 이들 중 운용 규모가 가장 큰 삼성자산운용은 이날 TR형 해외 ETF 2종을 분기 단위 분배금 지급형으로 조기 전환키로 했다.

    이번 결정으로 ‘KODEX 미국S&P500TR’과 ‘KODEX 미국나스닥100TR’은 오는 24일 상품명에서 ‘TR’ 표기를 삭제하고 올해 4월 말 기준으로 첫 분기 분배를 진행해 5월 2영업일인 7일 분배금을 지급한다. 이후 해당 상품들은 1·4·7·10월 말일을 기준으로 분기 분배를 실시한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기재부의 입법 예고안에 맞춰 기존 배당금 자동 재투자 방식의 해외 ETF 2종을 가장 일반적인 구조인 분기 단위 분배형 방식으로 전환한다”며 “상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기존 상품의 TR 표기를 삭제하더라도 동일 유형 상품 중 가장 낮은 총보수 0.0099%는 그대로 유지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