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파 뒤늦게 반영… 주가 급락HBM 등 고성능 칩 수요 위축 우려인간형 AI, 고사양 칩 필수… "장기적 기회"
  •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중국의 스타트업 딥시크(Deep Seek)가 던진 인공지능(AI) 모델로 SK하이닉스 된서리를 맞고 있다. 고성능 칩이 아님에도 생성형 AI를 구현할 수 있게 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수요도 줄어들 것이란 분석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딥시크도 결국은 엔비디아의 고객사인점, 인간 수준의 AI인 범용인공지능(AGI)에 도달하려면 고사양의 칩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들어 오히려 SK하이닉스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19만92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전 거래일 대비 9.86% 하락한 수준이다. 이날 SK하이닉스 주가는 설 연휴의 딥시크 충격파가 뒤늦게 반영되며 개장 직후 11% 이상 하락한 19만원 후반까지 급락했다. 이후 20만원선을 회복하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20만원 아래에서 거래를 마쳤다. 

    SK하이닉스의 주가 급락은 설 연휴 전 세계를 달군 딥시크의 영향이다.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사양 칩으로 챗GPT 수준의 생성형 AI를 구현하면서 엔비디아의 고사양 AI 가속기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딥시크가 선보인 R1에는 엔비디아가 미국의 중국 수출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출시한 저사양 ‘H800’이 탑재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현재 주요 AI 기업에서 사용하는 ‘H100’의 절반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그리고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HBM을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 작년 4분기 기준 SK하이닉스가 HBM에서 올린 매출은 5조8510억원으로 전체 D램 매출의 40% 수준이다.

    즉, 딥시크 R1의 여파로 SK하이닉스의 엔비디아향 HBM 공급이 줄고, 매출과 실적 등에 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가 퍼지며 주가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HBM 계약이 연간 단위로 이뤄지는 특성을 고려할 때 수요 변화가 2026년 이후 더 뚜렷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한국 메모리 반도체 공급 업체의 밸류에이션에 단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도 “가성비가 더 좋은 중국 모델 출현이 엔비디아칩 같은 고가 모델 수요를 위축시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국내 관련주들도 단기 하락이 불가피하다”며 “이번 일로 미·중 간 기술 경쟁과 미국의 중국 견제 조치가 더 거세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딥시크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엔비디아의 H800에는 SK하이닉스의 3세대(HBM2E) 또는 4세대(HBM3) 제품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SK하이닉스의 최신 HBM 제품인 5세대 HBM와 비교하면 2세대 쯤 뒤처진 제품이다. 결국, 딥시크도 엔비디아의 독점공급사인 SK하이닉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동시에 저사양 칩으로 인한 AI 기술의 대중화가 이뤄진다면 후발 주자들도 SK하이닉스의 잠재적인 고객이 될 수 있다. 고성능 칩에서 차별화된 기술력을 갖춘 만큼 저사양 칩의 경쟁력도 선제 확보한 상태다. 

    아울러 AI 시장이 더욱 커지면서 고도화된 AI 서비스를 위한 고사양 칩 수요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분 기업들은 ‘AGI’로 불리는 인간 수준의 AI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영역을 동시에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저사양 칩을 사용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실제 량웬펑 딥시크 설립자 또한 “미국과 중국의 컴퓨팅 격차는 반도체 수출 통제로 더욱 확대됐고 이는 딥시크의 주요 제약조건으로 남아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고성능 AI 가속기에 대한 투자가 지속되며 엔비디아는 물론 SK하이닉스의 HBM 수요 또한 견조할 것이란 관측이다. 

    황병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궁극적으로 AI 시장 내 주요 기업들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AGI의 구현에 있다”면서 “프론티어 모델 고도화와 AGI 단계 조기 돌입에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칩이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씨티은행은 “딥시크의 성과가 고급 AI 가속기를 쓰지 않고 이뤄졌다는 주장엔 의문이 있다”면서 “미국이 더 진보된 칩에 접근할 수 있는 건 장점이다. 더 매력적인 테라플롭스(TFLPOs·초당 조단위 연산)당 비용을 제공하는 고급 GPU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작다”고 전했다. 

    투자은행 오펜하이머의 애널리스트 에드워드 양 또한 AI 경쟁을 옛 소련의 우주 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와 비교하면서 “우주 경쟁이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며 “경쟁 증가가 지출 감소로 이어지는 경우 드물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