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으로 K-엔비디아 만들자니…자본시장·시장경제 이해 못한 이론철지난 흑묘백묘에 시진핑 공동부유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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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이종현 사진기자
1차 시추에서 아쉽게 실패를 경험한 동해 심해 가스전,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논평했다. "1263억원이 동해 심해에 가라앉았다." 국민 혈세를 성공 가능성 희박한 사업에 낭비했다는 주장이다. 매장 가스의 경제적 가치가 삼성전자 시총 5배에 달할 수 있다는 정부 전망은 깡그리 무시됐다. 정부가 계획한 5차 시추까지 끝난 뒤에는 어떤 저주가 담긴 비난을 쏟아낼지 모를 일이다.그런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K-엔비디아' 발언에는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접근법이라며 칭찬 일색이다. 어느 장단에 박수를 쳐야할지 막막할 지경이다. 국가가 지분 30%를 틀어 쥔 기업을 시총 3조 달러(4375조원)로 평가할 자본시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지점에서는 아연실색할 정도다. 애초 그런 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전세계 내로라하는 투자자들이 하루에도 수만·수십만장의 분석 리포트를 써내며 회사 미래를 평가하는 게 요즘 자본시장이다.다시 에너지 산업으로 돌아가 보자. 에너지는 모든 산업의 기반임에 동시에 국민 삶과 직결된 공공재 성격이 적지 않다. 야당의 억지스런 반대에도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추진될 수 있었던 이유다. 다소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성공의 과실이 국가 전체로 퍼져나갈 재화라면 고려해볼 영역이 될 수 있다.과거 국가 주도로 추진된 포항제철 건립 사업도 철강이란 산업의 쌀을 생산한다는 측면에서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그런 기업조차도 '민영화'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를 받아들인 게 지금의 지배 구조다. 국가가 대주주로서 지분을 지닌 '국유 지배구조'가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생산성이 떨어지는지, 시장경제의 오랜 역사가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2025년 대권을 노리는 이재명 대표는 불쑥 내놓은 'K-엔비디아'에 어떤 비전을 담고 있나.반도체 패권이란 게 국가가 거대 자본을 투자해 두면 저절로 가져갈 수 있는 레거시 산업인가. 안철수 의원 말마따나 엔비디아나 AI가 붕어빵 찍어내는 기계 쯤으로 보는 건 아닌가. 아마 그렇다면 돈을 마구 찍어내는 베네수엘라나 오일머니로 무장한 중동 국가가 이미 반도체 산업도 장악했어야 맞다. 수시로 돌변하는 빅테크들의 역학 관계 속에서 치열한 의사 결정을 해내야 하는 경영 환경을 두고도, 정부가 아무런 간섭 없이 묵묵히 투자자로서의 역할만 다하겠다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아마 조금이라도 손실을 내면 혈세를 낭비했다고 이대표와 민주당부터 힐난하고 경영자를 당장이라도 감옥에 집어 넣으려 할 것이다. 반대로 조금이라도 이익을 내면 배당금을 두배, 세배로 늘려라 닥달을 할 것이다. 이렇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면, 앞으로 50년 동안 민주당 정권에서는 절대로 공기업에 낙하산 인사를 꽂지 않을 것이란 선언이 먼저다. 그렇지 않다면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하나 못 만드는 기술력은 뒤로 하고, 정부 지원 하나로 엔비디아나 TSMC를 뛰어넘겠다고 덤빈 중국의 사회주의적 반도체 굴기와 뭐가 다른가.1000조 국민연금의 모수 개혁조차 손 대지 못하는 게 현실 정치의 한계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대표는 주52시간제 논란에서 이랬다저랬다를 반복하며 이해관계자들을 갸웃거리게 했다. 이런 갈짓자 정책으로 국가 재정을 좌우할 수십~수백조원의 국민 혈세를 투입할 기업을 택하는데 국민 동의를 얻어낼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게 순진무구하다.이 대표의 구상을 보면서 시진핑식(式) 공동부유론을 생각하게 된다. 정초부터 내던진 흑묘백묘론도 '먼저 부자가 돼라'는 선부론을 주창한 덩샤오핑의 사상을 차용한 것이다. 이때까지는 그나마 봐줄 만 했다. 하지만 국가 미래를 통째로 결정짓는 반도체 산업에 국가 소유론을 거론한다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현대판 사회주의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글로벌 생산 관계를 부정하며 공공 소유를 주창한 칼 마르크스가 '수제자'라며 어깨를 두드려줄 정도다. 옛 소련을 무너뜨렸고, 작금의 중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로 조명되는 철 지난 사회주의 망령이 제2의 도약을 준비하는 한국경제에 드리울까 걱정이 앞설 뿐이다.이 대표는 과연 빵집 주인의 이기심을 근본으로 하는 '시장경제'를 얼마나 공부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산유국을 위해 투자한 1200여억원을 혈세 낭비로 깎아내리는 민주당 의원들도 곱씹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