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눈물에도 교언영색으로 빠져나갈 궁리만사재 출연 규모 미정·국회 불출석 등 진정성 없어대대적 언론 광고 수억원 집행 … 피해자 염장 지르나
  • ▲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MBK파트너스
    ▲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MBK파트너스
    ‘타조 효과’라는 말이 있다. 적이나 사냥꾼이나 돌진해오는데 도망갈 생각은 않고 머리를 모래에 파묻는 타조의 모습에서 유래된 표현이다. 위기가 닥쳤는데도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회피하거나 외면하려는 행태를 비판할 때 주로 쓰인다. 최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홈플러스를 위해 사재(私財) 출연 의사를 밝힌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

    홈플러스가 이달 4일 갑작스럽게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한 이후 파문이 가라앉기는커녕,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홈플러스에 제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들과 영세업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고, 기업어음(CP)과 전단채를 산 투자자들은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하자, MBK파트너스는 입장문을 내고 김병주 회장이 홈플러스 회생절차와 관련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한 영세 소상공인들의 재정 지원에 신속히 나서겠다고 밝혔다. 

    환호는 잠시, 김 회장은 '사재 출연 약속', 그 이상의 것을 내놓지 않았다. 얼마나, 어떤 것을, 어떻게 내놓을지에 대해 MBK는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이런 것을 두고 교언영색이라고 하던가. 법정관리 신청 직전 벌어진 채권 판매 논란과 부실 경영, 소상공인 피해 논란이 확산되며 ‘사면초가’에 놓이자, 사회적 비난을 모면하고자 김 회장의 사재 출연 발표를 한 것이란 시각이 외려 설득력을 얻는다.  

    오죽하면 홈플러스 노동자들이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회장은 홈플러스 사태가 심각해지고 국회의 출석 요구, 국세청 세무조사, 노조 반발 등 사회적 압박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사재 출연이라는 조치를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을까. 고려아연 분쟁 등 향후 진행될 사업에 불똥이 튀길까봐 여론 달래기용으로 사재 출연을 발표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오는 28일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가 예정돼있기도 하다. 

    실제 김 회장은 광고문을 내놓은 이후 추가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재 출연 규모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의 전반적인 재무 구조 개선과 유동성 안정화를 위해 필요한 최소 자금으로 1조원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1월 말 기준 영업활동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순운전자본이 –8753억원인데다 단기 채무 상환을 위한 추가 유동성 공급 등이 더해진 금액이다. 영업 경쟁력을 회복하고 중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투자까지 포함하면 필요한 금액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18일 예정된 국회 정무위원회 홈플러스 관련 현안 질의에 증인으로 채택됐음에도 불구, 그는 17일부터 19일까지 중국 상하이와 홍콩으로 출장 간다는 점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사유서에는 “MBK의 투자가 완료된 개별 회사(홈플러스)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기재됐다. 

    김병주 회장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사재 출연을 입에 올리면서도 뒤로는 여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17일자 조간 신문 1면에 일제히 광고를 내보냈다. 사모펀드가 언론에 광고를 내보내는 것은 극히 이례적으로, 사회적 비판에 대한 부담감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날 광고의 제목은 예상됐던 것과 달리 '사과' 대신 "주주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이었다. 광고의 첫 줄에 "사과 드린다"는 문구가 포함됐지만, 그들은 사회적 책임을 헤드라인으로 삼았다. 일부 신문은 광고 바로 윗단에 MBK의 사재 출연 소식을 전했다. '짜고치는 고스톱' 처럼. 

    MBK는 최근 김광일 부회장과 윤종하 부회장이 직접 언론사를 돌며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으로 알려진다. 바로 이어 한 개 당 수 천만원씩 하는 신문 1면을 도배했다. 조간 신문 전체로 하면 수 억원을 훌쩍 넘는다. 

    MBK는 사재 출연 규모도 확정되지 않은 '공수표'에 소상공인들이 납짝 엎드려 '땡큐'를 외칠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그들의 기업어음(CP)과 전단채를 수천억씩 매입한 투자자들의 눈물은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 이날 언론에 뿌린 광고에 들인 돈을 차라리 소상공인들 지원에 쓰고 투자자 구제에 썼다면, 단 한 명의 피눈물이라도 닦아줄 수 있을 것이다.  

    김병주 회장은 모래에 머리를 박고 있는 타조처럼 상황을 외면하고 여론전을 펼칠 것이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와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MBK파트너스는 이미 금융투자업계와 자본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신문에 그럴 듯하게 광고하고, 적당히 사재출연의 모습을 띠면 위기를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투자와 인수합병(M&A)의 진정성 퇴색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사모 펀드 전체에 먹칠을 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금융감독 당국과 사법 당국도 법정관리 신청 과정에서 혹여 부실이 사모펀드 전체로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꼬리 자르기'를 한 것은 없는지, 이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 현상이 벌어진 것은 없는지 철저히 들여다봐야 한다.